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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Dec 09. 2024

이탈리아에서 본 <룸 넥스트 도어>

한 달이 넘게 안개가 가득 낀 으슬으슬 추운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벽난로에 불을 때기 시작한 지도 한참이 되었다. 쌓아둔 장작이 얼마 남지 않은 걸 보니 말이다.


이번 주말엔 어디 따스한 곳에나 다녀올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어디가 좋을까?


이탈리아 전역이 눈비 소식이다. 비나 눈이 오지 않는 조금은 따스한 곳으로 가자니 차로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프랑스 니스까지 가야 할 형국이다. 고작 네 시간 운전으로 영하 1도에서 영상 15도인 곳으로 갈 수 있다니 호강이 아닌가? 10여 년 전에 갔던 해변가 꽃시장이며 마크 샤갈 미술관도 여유 있게 다시 둘러보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군침만 삼켰던 생굴이며 해산물도 실컷 맛보고 오는 건?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졌다.


아니면 차라리 주말 눈소식이 가득한 발레 다오스타 주 Valle d’Aosta의 코녜 Cogne에 갈까? 하얗게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서 복잡한 머리도 식히고, 아무 생각 없이 뜨거운 사우나를 즐기는 것도 좋을 터였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잠깐 쉬며 이탈리아 일기예보 지도를 보며 한가한 고민을 하던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한국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것 같네. 대통령이란 사람이 방금 계엄령을 선포했어.”

“네? 계엄이요?”


농담인 줄 알았다. 계엄령 발표와 해지, 그리고 탄핵 부결과 특검 무산까지. 모두 거짓말인 것만 같다. 며칠 동안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처럼 줄곧 휴대폰 영상과 기사만 바라보았다.


희망이 허탈과 분노로 바뀌어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떠나자고 마음먹었던 주말, 토요일 아침이 되어도 도무지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하루 종일 아픈 사람처럼 누워 한국 소식만 보고 있던 차,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어디 간다더니 왜 아직 집이야? 너 지난주에 토리노까지 가서 보자던 그 영화, 그거 알바에서 오늘 개봉하네. 한국 뉴스에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잠깐 머리나 식히고 오자.”


아무 의욕도 없이 폐인 같이 누워있던 나는 영화 하나에 홀려 날이 어두워서야 집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탈리아 신문 <라 스탐빠 La Stampa> 12월 4일에 ‘한국의 셀프 쿠데타’ 기사가 1면에 실린 모습이다.

이탈리아 인들은 유럽인들 치고 영어에 참 서툴다. 티브이나  영화 탓도 있으리라. 모든 외화들은 원어에 자막이 붙어 나오는 게 아니라, 이탈리아 말로 더빙이 입혀져 나오니 말이다.

<The Room Next Door>. 한국에서는 영어 원작 제목에서 ‘The’라는 관사만 빼고 영어의 발음  그대로를 한국어로 옮겨 적어 <룸 넥스트 도어>로 개봉되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라 스탄짜 아깐또 La Stanza Accanto>라는 이탈리아 어 제목으로 번역되어 개봉되었다.


우연히 1분 남짓한 예고편을 통해 이 영화를 알게 되었다. 매혹적인 두 여배우 틸다 스윌튼과 줄리안 무어, 초록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편안함. 감독이 영화 <그녀에게>의 페드로 알모도바르란 건 나중에 보았다. 그랬구나.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 내 앞에 줄을 서 있던 중년의 여인 두 명의 대화가 들렸다. “아주 슬픈 영화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은 거야.”


남의 슬픈 사연에 눈물을 흘릴 기대를 잔뜩 했던 두 중년의 여인들과는 달리, 내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름답기만 했다.


전체 뼈대는 ‘옛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짧은 동행’라는 다소 무겁고 충격적인 이야기다. 영화의 장면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점점 마사의 죽음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어느 장면 하나 눈부시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정신적 평화를 원해.”라던 주인공 마사. 며칠 동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사에 분노하고 슬퍼하던 내게 이 영화는 짧고 평화로운 여행이 되기에 충분했다.


극소수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심문을 하던 경찰을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평생 엄마를 미워했던 마사의 딸까지 마사가 머물렀던 방에서 잠을 청하고, 마사가 마지막으로 해바라기를 하며 삶을 마감한 초록색 의자에 누워본다. 이미 생을 마감한 마사의 자리에서 그녀를 이해하기라도 하는 .  

마치 이탈리아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라는 표현을 ‘다른 사람들의 신발 안에 (발을) 넣어보기’ (Mettersi nelle scarpe degli altri)라고 하듯이.


영화 도입부 무렵, 잉그리드가 레즈비언인 한 젊은 팬에게 사인을 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팬은 잉그리드에게 이렇게 한 마디 적어주기를 부탁한다. ‘Non succederà più!’ 영어의 원작 대사나 한국어 번역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대사를 한국어로 옮기자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야.’이다.


누군가가 내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Non succederà MAI più!” 다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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