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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24. 2021

세 번의 교통사고와 한 번의 장례식

죽음 앞에서. 

실비오의 장례식     


“이 사진 좀 봐, 참 잘 생겼지? 이렇게 한 손에는 언제나 담배를 쥐고 있었지. 벌써 40년을 알고 지냈어. 우린 5년 동안 사귀고 그 후 결혼을 했어.” 실비오는 55살입니다. 40년째 함께 알고 지냈다면, 실비오는 예쁜 부인을 15살에 만나 쭉 생을 함께한 셈입니다. 

Hell’s Angel 오토바이 모임에서 그와 안면을 텄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흰 가죽 잠바를 고집해서 멀리서도 잘 보이던 실비오. 큰 체구에도 흰 옷은 그에게 참 잘 어울렸습니다. “아니, 다들 검은 가죽 쟈켓을 입는데, 왜 너는 흰 옷을 고집하는 거야?” “흰 옷을 입어야 멀리서도 내 부인이 날 찾을 거 아니야?” 실비오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실비오가 하얀 옷을 입어서였을까요? 잠깐 다녀오겠다는 신랑이 오지 않자, 실비오를 찾아 나선 부인은 정말로 그를 바로 찾았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차 속에 눈을 뜨고 앉아있던 실비오. 이미 숨은 끊어진 후였습니다. 차 사고였습니다.      

그렇게 흰 옷을 좋아하던 실비오였지만, 관 손에 두 손을 포개고 얌전히 누운 그는 검은 수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포동포동한 얼굴에 인자한 미소. 다른 것이 있다면 이마와 볼에는 커다란 검은 멍이 들어 있다는 거였죠. 마치 잠이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망인은 한 손으로는 포개진 지아비의 손을 꼭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얇은 면포를 거두어 연신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곧 뚜껑이 닫힐 관 속에 얌전히 누운 그. 미망인은 곧 떠날 지아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무엇인가 계속 속삭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숨소리,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찾으려는 듯 말입니다.     

평소 고인의 쾌활한 성격은 조문객들에게서 바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모임의 상징인 날개가 디자인 된 검은 가죽 잠바에 온통 문신이 가득한 조문객들이 빈소 앞을 지켰습니다.        

죽음 앞에서 쉽게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큰 슬픔 앞에 저는 선뜻 다가서지 못 했습니다. 그 때, 검은 생머리의 미망인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오토바이 축제 때 니가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봤어.” 살짝 웃으며 저를 꼭 안아 주었죠. 미친 듯이 춤을 추던 제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가 “어머, 죄송해요.”하고 사과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곧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어. 잘 생기지 않았어?” “그러게요. 흰 옷이 참 잘 어울려요.”       

“커브길을 못 보고 직진을 했다지 않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구. 아등바등 살 일이 아니야. 하루하루 즐겁고 감사하게 지내야하지 않겠어?” 하나같이 거구의 날개 달린 블랙 엔젤들이 옹기종기 볕 아래 모여 서서 관이 나오길 기다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천천히 출발했습니다. 사빌리아노 병원 정문을 나서는 영구차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정문을 나서자마자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죠. 수십 대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들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고인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쾌활했던 친구를 배웅하는 마지막 인사도 유쾌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풍채가 좋은 실비오의 큰 아들이 연신 눈물을 닦으면서도 찾아온 방문객들을 향해 연신 감사의 미소를 지었던 것 처럼요.  


오늘은 참 이상한 날입니다. 하루 종일 죽음을, 그리고 삶을 떠올리게 하는 화두들이 제게 물음표를 던집니다. 

친구 아버지의 8주년 기일을 맞아 친구와 납골당 청소를 하고 잔꽃망울이 가득한 화사한 하얀 국화 화분을 놓았습니다.  

사빌리아노로 향하는 한 시간 여 안에 세 건의 교통사고를 목격했습니다. 첫 번째 사고에선 갓길에 누운 사람을 보기도 했지요.

실비오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곧 11월 1일.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성인의 날Giorno dei Santi, 곧 모든 죽은 이의 날Giorno dei morti 이 옵니다. 삶에서 탄생과 죽음보다 큰 사건이 있을까요?     

죽음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 새삼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어쩜 저는 그렇게 작은 문제 앞에서도 그렇게 휘청거리고 괴로워했을까요? 제 슬픔과 상처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다른 사람에게 생채기를 낼 때도 있었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일 따위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한다면, 얼마나 스스로 제 삶을 하찮게 여기는 일이 될까요?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조문객 하나하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다하고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던 실비오 가족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군요. 오늘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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