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로우킥
My Fucking Lovely Restaurant
언젠가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몇 년간의 경험, ‘My Fucking Lovely Restaurant’
감히 ‘my’라는 소유격을 맨 앞에 씁니다. 제 소유의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저는 제가 맡은 파트, 생파스타 만드는 일을 미치도록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하는 그 일이 저를 욕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Fuck!하고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죠. 왜냐구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몇 달 전, 여름의 끝무렵입니다. 4년 만에 새 여자 친구와 함께 독일 친구 사이먼이 캠핑카를 몰고 다시 그린자네 카불 고성을 찾았습니다. 아페리티보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언젠가 ‘마이 퍼킹 러블리 레스토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사이먼은 웃으며 꼭 읽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너무 거짓말을 오래 했나봅니다. 내가 뱉은 말이 거짓말이 되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부끄럽지만 써나가렵니다. 아주 오래 전 읽은 책 제목처럼, 누가 그랬던가요. ‘인생, 쪽 팔려도 Go!’ 라고.
거침없이 로우킥
아직도 그린자네 카불 고성 레스토랑 화장실에 가면 저의 거침없는 로우킥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제게 그런 ‘욱!’ 하는 성질이 있는 줄은 2017년 봄 전까지는 미처 내 스스로도 알지 못 했죠.
“어? 이상한데? 정말 이게 레시피의 다야?” “응.”
레시피가 이상해서 거듭 물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여러 번 그 레시피가 맞다고 하더군요. 이상한 레시피 때문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태리 식 부드러운 계란찜이라고 하면 될까요? 셰프는 제게 flan 플랑 미장 플라스를 주문했습니다. 저는 가브리가 건넨 이상한 레시피를 따라 플랑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곧 주방장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뭐야? 넌 요리 학교에서 뭘 배운 거야? 가브리! 저 앤 로봇처럼 시키는 것만 할 줄 아는 애니까 잘 감시하라구!” “셰프! 전 가브리가 주는 레시피대로 했을 뿐이라구요. 레시피가 이상해서 몇 번을 물었어요.” 계란 몇 개를 더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셰프는 화가 나서 흥분해서는 길길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한 실수도 내 자리 위에 올려놓곤 하던 가브리였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잘못된 레시피를 내게 건냈다고 실토할 일이 만무했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설명 따위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설명하러 들수록, 저는 더 무능한 거짓말쟁이가 될 뿐이었죠. 억울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쉼호흡을 했습니다. 급히 따라 내려온 동료 하나. “괜찮아?” 아..... 겨우 진정되었던 마음이 괜찮냐는 동료의 말에 다시 폭발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구!”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요리사용 신발 앞굽에 강철이 들어 있다는 걸요. 거침 없는 로우킥은 죄 없는 원목 쓰레기통에 내다 박혔습니다. 한참 어리지만 저보다 주방 경험이 훨씬 많은 동료는 그저 말없이 구멍난 쓰레기통 방향을 벽쪽으로 돌려 붙였습니다.
잠시 주방을 떠난 이 순간. 가만히 눈을 감고 쉼호흡을 해 본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지원 씨, 저 한국 주방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평소 과묵한 지원 씨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습니다. “아니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한국 주방은 안 되겠군요. 저처럼 말대꾸 잘하는 부하 직원은 한국에선 어렵다는군요. 넘어진 김에 쉬어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