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 일지 1
‘윙~윙~삐~~~삐삐삐!!!!’
작은 금속 나비 떼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귓가에서 펄럭거립니다. 분명한 금속음입니다.
“하아~ 하아~ ”
잠을 잘 무렵이면 한겨울에 우물에 빠져 죽은 한 맺힌 여귀가 귀에서 한숨을 쉬어댑니다.
목요일 오후 4시경부터니 벌써 5일쨉니다. 손가락으로 귓불을 만지면 마치 고깃덩이를 만지는 기분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반 귀머거리가 된 지 5일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0월 27일. 관심 있는 행사가 토리노에서 있었습니다. 6시 반 시작이니, 주차하고 걸어가는 시간까지 치자면..... 4시 조금 넘어서는 출발 해야 합니다. 환절기라 그런가요...... 요즘 부쩍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기분입니다. 급히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이 빠질까 찬바람으로 머리카락을 말립니다. ‘어? 귀에 물이 들어갔나?’ 오른쪽 귀가 조금 멍한 느낌입니다. 요즘은 Paolo conte의 CD가 부쩍 좋아집니다. 툭툭 뱉어 대는 파올로 콘테의 무심한 읊조림이 운전 중의 졸음을 날립니다. 오늘따라 그의 목소리가 웅웅 거립니다. 볼륨을 높입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같이 가기로 한 지인이 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옵니다. “아니, 집에서 나와서 걷다가 보니 고춧가루를 잊어서 다시 들어갔다 나왔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전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갔나 봐요. 뭔가 웅웅 거리네요.”
토리노의 포카챠 가게에서 진행되는 풀비오 마리노 Fulvio Marino의 제빵 책 <Dalla terra al pane> 행사. 몇 년 전 생파스타 가게에서 진행된 쥬세페 쿨리키아 Giuseppe Culicchia 쥬세페 쿨리키아의 <아뇰로띠 Agnolotti>처럼 장소와 주제의 합이 흥미로웠습니다.
6시 반 시작 예정이었던 책 행사는 역시 이탈리아답게 7시가 되어도 시작될 줄을 모릅니다. 포카챠 가게 안은 미어터집니다. 입구 앞에 급히 작은 의자 두 개가 놓였습니다. 책의 저자 풀비오와 인터뷰 진행자가 마이크도 없이 앉았습니다. 작은 골목은 아줌마 팬들로 미어터집니다. 얼떨결에 지인과 나는 두 번째 줄 풀비오 뒤통수 쪽에 자리를 잡고 어정쩡하게 섰습니다.
‘아이 참, 마이크도 없이. 하나도 들리지가 않네......’
“안 들려요? 가까이 서 봐요.” 지인이 반발짝을 움직여 길을 트려 합니다.
“아니에요. 전혀 안 들리네요.”
멀지 않은 거린데,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울기 직전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좁은 골목을 꽉 채운 사람들 소리가 내게는 동굴 속에서 울리는 웅웅 거림으로만 와닿습니다.
짧은 질의응답이 끝나고 도망치듯 행사장을 빠져나옵니다.
내 귀는 정녕 죽은 것일까요?
“맘마 미아! 아이쿠! 염증이 심하네.”
“이 쪽 귀는 다행히 멀쩡하구먼.”
“어...... 왼쪽 귀에서도 고개를 돌리면 작은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나는데요?”
“어허...... 그렇네. 이 귀에도 좀 염증이 있어요. 걱정 마슈, 내가 처방하는 약 삼일만 쓰면 씻은 듯이 싹 나을 테니.”
나이 지긋한 하얀 머리 의사가 걱정하지 말라니 정말 걱정이 가라앉는 듯합니다. 2분 진료에 한국 돈으로 7-8만 원을 내고 병원 문을 나섭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차도가 전혀 없습니다. 주치의에게 다시 전화를 겁니다. “아니, 내가 응급실 가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 보낸 처방전 보니 전문의도 아니더구만!” 이탈리아 연휴 기간이라 이비인후과 전문의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응급실에 가면 12시간 대기는 기본입니다. 12시간 대기해도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응급실에 없다면요? 어쩐다...... 우선 이비인후과 전문의 Gatti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진료 예약을 했습니다. 가장 빠른 일자가 11월 4일 목요일 오후이니.....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할 진데 발병 일주일 만에야 전문의를 만날 수 있게 되겠습니다.
“Dottore Gatti? 가띠 선생님? 내 지인인데?”
역시 병은 소문을 내야 하나 봅니다. 알바 병원에서는 11월 4일, 카날레 병원에서는 11월 18일에야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던 그 가띠 선생님! 친구 도움으로 황송하게도 일요일 의사 선생님 자택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정말 무서웠어요, 선생님. 한국에서는 ‘돌발성 난청’이라고 응급 질환으로 분류되더라구요. 시간만 가고, 정말 불안했습니다.”
“걱정 말아요. 스테로이드 처방은 두고 봅시다. 우선 스테로이드 성분보다 약한 대체 의약품을 처방해 줄 테니 꾸준히 복용하고 목요일에 다시 봐요.”
정말 걱정 말 일일 까만은, 일단 걱정이란 놈은 곱게 접어 주머니 속에 깊이 넣었습니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건 전혀 없으니까요. 귀가 두 쪽 다 멀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요?
‘귀야, 귀야, 니들이 두 개라서 정말 고마워. 귀가 하나였으면 어쩔 뻔했니?’ 까짓 거, 정말 계속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면 될 일이 아닌가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귀가 두 개인 게 아니었습니다. 한 귀가 고장 나면 다른 귀로 잘 들으라고 귀가 두 개였나 봅니다.
매 순간 불안함이 엄습합니다. 하루는 친구가 뒤에서 '안녕' 하는데, 장을 본 봉투를 양 손에 들고 제자리에서 360도 한 바퀴를 빙 돌았습니다. 한쪽 귀만 들리고, 다른 쪽 귀에서는 있지도 않은 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리니 방향 감각마저 희미해집니다.
저, 정말 괜찮은 걸까요? 긴 비행시간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에서 치료를 받는 편이 훨씬 빠를 것 같습니다.
이명은 관심을 끄는 것이 답이라고 해서, 귀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오, 이런, 비틀즈의 Come together를 듣는데, 이번엔 오른쪽 귓속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은 종을 흔들어 대는군요.
‘이명’은 남의 이야긴 줄 알았는데...... 10만 명 중 5~10명 꼴로 발병한다는 ‘돌발성 난청’, 경과를 보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