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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Nov 02. 2021

발톱아, 힘 내~

'조갑 박리증' 셀프 치료기

하마터면 '발톱이 사라진 이야기'를 쓸 뻔했습니다.


7년간의 마음고생이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요. 아직 모르시는 분 들, 억울하지 않도록 바로 썰을 풉니다.


바야흐로 바야흐로, 30년도 훨씬 전으로 돌아갑니다. 동생은 내향성 발톱입니다. 엄지발가락 양끝이 곱게 자라지 않고 살을 파고들어 고름을 만들었습니다. 동생의 엄지는 언제나 빨갛게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발톱 끝이 창처럼 여린 속살을 찔러대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어느 날 동생은 결국 발톱을 뽑았습니다. 엄지발가락은 마치 관에서 바로 나온 미라의 것인 양, 하얀 붕대로 둘둘 감겨 있었죠. 붕대를 풀자 뭉툭하게 변한 동생의 엄지발가락은 시무룩해 보였습니다. 


아...... 그런데, 이 발톱 이야기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내향성 발톱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습니다. '차라리 무좀이라면' 원인이나 치료법이라도 속 시원히 알지 하던 지인도 떠오릅니다.


두둥! 뭔 일? 어느 날부터 왼쪽 엄지발톱이 누렇게 뜨기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발톱 끄트머리부터 시나브로, 그러니까 그야말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누렇게 누렇게 지평을 넓혀 나가더군요. 이놈의 발톱병이 끈기 있게 계속 나쁜 방향으로 진행되더이다. 누렇게 색만 변하는 게 아니라, 엄지발가락 살로부터 분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 미관상 보기가 나빴습니다.


여름이 되고, 샌들은 신어야 하겠고. 누렇게 뜬 발톱이 보기가 싫으니 진한 색 매니큐어를 발랐습니다. 왼쪽 엄지발톱에만 색을 칠하자니 이상하고, 양쪽 엄지에만 포인트를 주기도 그렇고...... 에잇! 까짓 거 10 발톱 모두 색을 입혀버렸습니다. 


그렇게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이 발톱 색 입히기 놀이가 7년째입니다. 샌들 철마다 매니큐어칠을 해대니, 멀쩡한 다른 발톱들은 숨 못 쉬겠다고 허옇게 소리를 질러 댑니다. 


처음엔 아주 조금 들뜨던 발톱이 7년째가 되자 반 이상 누렇게 되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매니큐어를 지우는데, 들뜬 발톱을 보다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안 되겠습니다. 정보를 찾습니다.


'색이 변하고 들뜬 발톱' 검색을 합니다.


아! 이것인가요? 이것이 병명 같습니다.


"조갑 박리증"

조갑 박리증은 손발톱의 끝부분이나 옆 부분이 자연적 또는 물리적인 요인에 의해 밑바닥에서 분리돼 들뜨는 현상이다.

심한 경우 손발톱이 완전히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손발톱이 완전히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구요?????? 세상에!!!!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다시 급 검색에 들어갑니다.


조갑 박리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손발톱을 길러 들뜬 부위를 잘라내는 게 가장 확실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어맛! 들뜬 부위를 잘라내라구? 어머나, 이 일을 어쩌나? 왼쪽 엄지발톱이 대각선 모양으로 휙 하고 들떠 버렸는데, 그렇다면 아주 작은 삼각형 모양의 발톱만 남게 되겠는데......'


또다시 폭풍 검색을 시작합니다.


아! 이것인가? 한 블로거가 쓴 '4년간의 조갑 박리증 셀프 치료 극복기 ㅠㅠ'!!!!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특히 '셀프 치료'라는 말에 눈이 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혼자 치료할 수 있다면야! 피에몬테 사람들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마늘! 마늘을 짓이겨 붙이라는 치료법만 아니라면..... 저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휴..... 다행입니다. 마늘의 '마'자도 치료법에 들어가지 않는군요.


헉! 제 엄지발톱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분은 손톱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반토막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더군요. 손톱이면 보이는 부위고, 움직이다 보면 자극도 많이 받았을 텐데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까요?


차 떼고 포 떼고 바로 치료법!


바포럽 VapoRup!!! 제게는 듣보잡이었습니다. '바포럽이 무엇인고?'

"아! 나 이 약 알아. 어릴 때 엄마가 기침이 나면 목 아래 가슴 부위에 자기 전에 발라 주셨어." 친구 말로 바포럽은 이탈리아에서 감기 연고로 유명하다고 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이탈리아에서 구할 수 있다는 말이군.' 다행이었습니다.


약국으로 달려갔습니다. "Per caso, avete questa medicina? Si chiama VapoRup. " 휴대폰으로 화면 캡처한 바포럽 연고 사진을 내보였습니다. "Certo! solo un minuto." 1분도 아니고 10초 만에 약사가 바포럽을 찾아 내밀었습니다.


두근두근..... 경건한 마음으로 발을 깨끗하게 씻고, 발톱깎이로 들뜬 발톱을 잘라 냈습니다. 반 넘게 발톱을 잘라 내려니 눈을 질끈 감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어차피 들든 발톱이라 고통은 없었습니다. 다만 뭉툭해진 발톱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졌습니다. 


'걱정 말라, 제군! 모 아니면 도다!'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면봉으로 연고를 꼼꼼하게 발톱이 '있던'자리와 새 발톱이 '자라날'자리에 정성스럽게 발랐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후...... 


"심~ 봤 ~다!!!!"


꼬물꼬물 발톱이 생기를 되찾습니다. 7년 동안 숨겨왔던 누~렇게 들떴던 발톱을 한 방에 미련 없이 잘라내고, 화~한 냄새가 강렬한 바포럽 연고를 꾸준히 발랐습니다. 어머낫! 발톱이 더 이상 들뜨지를 않아요!!!!


이렇게 쉬운 거였습니까? 


발톱아! 힘내라! 응원한다~ 사. 랑. 한. 다. 내. 발. 톱!

발톱 군~~~ 힘 내~~~


미원도 다시 한번,  내 발톱아. 내 너를 그동안 숨겨만 왔구나. 


혹! 행여나, 저처럼 들뜬 손발톱으로 고통받는 그대들이 있다면. 친구나 연인도 변하면 자르는 게 약일 수 있듯이..... 변한 부분 훅 미련 없이 잘라 내시고, 보습에 탁월한 이 감기 연고를 듬뿍 발라 보시기를. 새 손발톱이 사랑스레 자라날 겝니당~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발기 부전 개선 효과로 유명해진 비아그라, 소아마비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주름살 제거제로 각광받은 보톡스. 이 '좋은 부작용(Good Side Effect)'리스트에 바포럽 연고를 더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바포럽! 기침감기 연고로 개발되었지만 조갑 박리증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 내일 신문 기사에 날 법합니다.


저는 바포럽 회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내. 돈. 내. 산. 그러나 감사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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