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0일 포도순 따기
어제 오후부터 밤이 새도록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하늘이 살짝 개이는 듯 했습니다. 모자가 달린 방수 잠바를 입고 일단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정말로 일기예보대로 하루 종일 비가 온다면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어야 하니까요. 나탈리아 긴즈부르그의 카로 미켈레를 들어며 길을 걸었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포도나무들은 더 싱싱해 보였습니다. 새파란 포도나무 꽃봉오리들도 이젠 제법 튼실해졌습니다. 길을 걷고 걸어 그린자네 카불 쪽으로 커브를 틀려던 차,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슈.”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되요?”
“두 개도 하슈.”
“지금 무슨 일 하시는 거에요?”
“포도 순을 따는 거라우.”
“왜요?”
“여기 이 포도 꽃송이 보이죠? 이걸 잘 키우려면 잎이 꽃봉오리를 가리면 안 돼요.”
“아, 그럼 해를 더 잘 받게 되겠네요?”
“그렇지, 그렇지. 오늘이 5월 10일이죠 한 열흘이나 12일 정도 있으면 꽃이 필거에요. 그러니 꽃이 피기 전에 영양분이 꽃으로 가도록 지금 이렇게 순을 따줘야 해요.”
“그런데, 오늘 마솔리노 와이너리서는 벌써 포도꽃이 핀 사진을 올렸던데요?”
“마솔리노. 거기는 세라룽가 알바 있는 데잖아요. 거긴 여기랑은 이야기가 다르지.”
“그럼 거긴 꽃이 오늘 피고, 여기 이 꽃봉오리들은 열흘이나 있으면 핀다고 하셨으니, 여기가 한 열흘 정도 느린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할아버지, 이 포도 나무도 네비올로에요?”
“그렇다우. 네비올로 디 알바가 될 수 있지.”
“나무가 한 20년은 되어 보이는 데요?”
“20년 까지는 안 되고, 2001년에 심었으니 19년째요.”
“오! 그럼 이 네비올로도 바롤로가 될 수 있는 거에요?”
“아니라오. 여기는 아무리 잘 키워도 바롤로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어? 제가 잘못 본 건가요? 책에서 봤는데 디아노 달바도 바롤로를 키울 수 있는 코무네에 들어가던데요?”
“아, 그건, 이쪽 말고, 저기 저 폰타나 프레다 있는 쪽 근처 디아노 달바 쪽을 허가를 줬어요”.
“아~ 그렇군요. 책에서는 그런 말이 없어서 저는 디아노 달바 모든 지역이 바롤로를 만들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지금 아가씨가 서 있는 그 길 아래랑 위가 코무네가 달라요.”
“네, 밑이 그린자네 카불이고 그 위가 디아노 알바죠?”
“그렇지, 그렇지. 잘 아는 구만.”
“이 길 밑에서 키운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은 바롤로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겠네요?”
“그래요, 맞아요.”
“저, 그런데 순을 따시는 원칙이 있어요?”
“자, 지금 이 꽃봉오리가 보이죠? 이 꽃봉오리 있는 가지가 중심 가지에요. 꽃봉오리 곁에 일찍 난 큰 잎은 남기고. 꽃봉오리랑 그 큰 잎사귀 사이로 올라오는 새순을 잘라줘야 해요.”
“아~ 영양분이 꽃송이로 가게요?”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내 포도밭에선 이걸 5월 10일이면 해야 되요. 첫 꽃이 피기 전에. 이렇게 순따기를 첫 꽃이 피기 전에 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잘 없다우.”
“우와! 할아버지는 언제부터 포도 농사를 지으셨는데 그렇게 잘 아세요?”
“나? 하하하. 태어날 때부터라우.”
“우와! 그럼 평생 농사를 지으신 거에요?”
“그랬다우. 아주 옛날부터 포도 농사를 짓는 동네 어르신들께 포도 농사를 배웠어요.”
“우와! 그럼 그 옛날에도 구욧 방식이 있었어요?”
“구욧은 프랑스 어 아니유? 여기선 그렇게 안 불러요. 이름만 그렇지 이렇게 한 줄로 세워서 농사짓는 건 여기 전통 방식이에요.”
“아...... 전, 프랑스 이름이라 프랑스에서 들어온 방식인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포도주를 직접 만드세요, 아니면 포도를 파세요?”
“아, 내가 이렇게 포도 농사를 짓는데 남한테 포도주를 사야겠어요?”
“하하, 그렇네요.”
“가족들, 친척들 용으로는 내가 포도주를 빚어요.”
“우와, 그럼 1년에 얼마나 되나요?”
“다미자노 한 통이 50리터에요. 그 다미자노를 16개 정도? 어떨 땐 20개도 하고.”
(800~1000리터를 가족용으로 만든다면, 한 병 유입량은 750ml. 매일 점심 저녁 식사 때마다 와인을 1~2잔 마신다면, 1인당 많이 마시면 하루에 반 병을 소비한다. 보통 사순절 40일 동안을 와인을 마시지 않으니...... 365일에서 40일을 빼면 325일이 남고..... 6.5인이 사순절을 제외하고 매일 반병씩 마실 양을 가족용으로 만드시는 셈이다. )
“할아버지,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보슈.”
“이 포도나무 한 그루면 포도주가 몇 병 나와요?”
“세 병 나온다우.”
“세 병밖에 안 나와요?”
“밖에라니. 품질 유지를 하려면 한 그루에 3키로 정도만 열리게 키우도록 법에서 정하고 있어요. 3키로 포도로 세 병이니, 포도 1키로로 포도주 750그람을 만든다는 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우리 가족 먹는 용도로는 1키로로 700그람을 만들어요. 750까지 안 가고.”
“나는 이게 내 밭이에요. 난 잠은 밤에만 자요. 언제나 포도밭에 붙어서 일을 하죠. 이게 내 포도밭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에요. 옛날에는 일하는 시간이 있나. 가족들이 다 함께 언제나 포도밭에서 일을 했죠. 요즘은 그게 되나. 사람 붙여서 일하면 한 달 지나면 1500유로는 달라고 하니. 아이쿠...... 여기서 나는 포도 팔아서 몇 사람 그거 주려면...... 안 되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포도밭에 손을 적게 들이고 일을 하는 거지. 다 둘러봐요 어디 이런 진정 가위로 지금 이렇게 순 따주는 사람이 있나.”
(설명을 하시면서 연신 높이 자란 순들을 지지대 삼아 만든 철사에 돌돌 말아 꼬아 주셨다.)
“지금 순을 따는데, 다 따면 안 되요. 너무 다 따버리면 영양분이 다 키로만 가서 키만 커서는 지지대를 넘어서 다 넘어져 버려요. 위에는 포도가 안 열리잖아요? 키만 커 버리면 소용이 없지.”
“정말 그렇겠네요. 영양분이 골고루 가게 분배를 잘 해줘야 겠네요.”
“그렇지, 맞아요. 좋은 품질의 포도주를 만들려면 포도에 정성을 들여야 해요.”
“그렇겠네요. 포도가 별론데 포도주가 좋을 순 없겠네요.”
“그럼, 그래서 포도 농사엔 손이 많이 가요. 그런데, 이탈리아는 인건비가 비싸잖아요? 시간당 10유로 주고 사람을 써서 일하면, 세세한 일은 그냥 무시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인건비는 시간 당 10유론데, 수확한 포도는 1키로에 5~6유로 하니...... 그런데 나는 내 밭에서 내가 일을 하니 돈 생각 안 하고 일하는 거에요.”
(사람만 사서 관리하는 밭에서 키운 포도보다 직접 포도밭 주인이 관리하는 포도로 만든 와인이 훨씬 몸에 좋을 거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 혼자서 다 포도밭 관리를 하세요?”
“그럼, 그럼요. 가끔 내 딸 이바나가 도와줘요. 지금은 아그리투리즈모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았으니 날 도와줄 수 있지.”
“포도나무를 몇 그루나 가지고 계세요?”
“몇 그루? 내가 가진 포도밭이 2.7헥타르 되요.”
“우와! 그럼 그 2.7헥타르 밭을 혼자 다 관리하시는 거에요?”
“그럼, 혼자 다 하지.”
“대단하신데요?”
“대단하긴 뭘. 잠은 밤에만 자면 되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땐 할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지. 우리랑 함께 사셨거든. 할아버지 기억은 없어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30살 되던 때가지 아주 정정하게 사셨어요. 96세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원 한 번 가보신 적이 없어요. 마지막 6개월만 침상에 계셨지, 언제나 나와 포도밭에서 함께 일하셨어요. 지금 우리 어머니처럼.”
“어머니가 도움을 주시는 군요. 나머지 포도는 어디에 파세요?”
“떼라 디 비노에 판다우.”
“한 해 포도 생산량은 얼마나 되요?”
“3000뀐딸레 정도라우.”
“어? 그런데, 이 포도나무는 왜 이렇게 높이 키우셨어요?”
“아, 그건 여기 이 전봇대가 난 보기가 싫어서. 여기 이렇게 높이 심으니 나중에 순이 막 자라면 밑으로 떨어지잖아요? 그게 참 보기가 좋아요.”
“그렇겠네요, 막 폭포처럼 가지들이 주렁주렁 하겠네요.”
“그럼 그럼, 이건 특히나 화이트 포도 품종이라 높이 키워야 해요.”
“어? 그나저나 이 나무는 왜 이렇게 꽃이 많아요? 일부러 이렇게 키우신 거에요?”
“아, 그건 네비올로가 아니고, 다른 백포도주 품종인데, 야생이에요. 여기 있는 다른 네비올로처럼 접붙이기를 안 했어요. 아주 주렁주렁 열리지. 그런데 포도에서 아주 과즙이 많이 나는 것 말고는 큰 특징이 없어요. 가장 큰 장점은 포도가 많이 열리는 거 정도지.”
“아...... 접붙이기를 안 하는 포도 품종도 있군요. 저는 그 큰 전염병 이후로 꼭 접붙이기를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아가씨는 포도 농사에 관심이 많아요?”
“네, 저는 저기 보이는 그린자네 성에서 일하는 데요. 얼마 전 소믈리에 코스를 시작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수업이 모두 연기 됐어요. 그래서 이렇게 포도밭 산책을 할 때마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할아버지처럼 일하시는 분들께 여쭤본답니다.”
“저기서 일하면 내 딸을 알 수도 있을까? 이리나라고 하는데. 이 근처에서 아그리투리즈모를 하고 있어요. 가끔 와서 날 도와준다우.‘
“아..... 그렇군요. 다음에 한 번 따님 아그리투리즈모도 방문하고 싶어요.”
“연락해 봐요, 다음에 코로나 다 지나고 나면.”
“네, 할아버지, 실례가 아니면 저 할아버지 순 따시는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되요?”
“그럼, 아가씨가 레스토랑에서 일한다고 했으니 나 밥 먹으라고 초대해요. 내 사진 찍게 해 줄테니.”
“하하하, 그럼요. 저 저기 보이는 성 안에서 일하니 식사 하시러 오세요. 참, 성함을 알아야 식사 초대를 할 텐데요.”
“내 이름은 삼촌한테 받았어요. 1945년 이탈리아에 혁명이 일어났어요. 삼촌은 혁명 운동을 하러 다니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런데 그 때 내가 태어나지 않았겠수? 그래서 내가 삼촌 이름을 받아서 카를로가 됐어요.”
“아, 그렇군요. 카를로 할아버지. :)”
“다행히 그 삼촌이 돌아와서 저기 보이는 저 집 있죠? 돌아와서는 저 집에 살았어요. 90넘어서까지 잘 살았어요. 나중에 삼촌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숙모한테 그 집을 샀어요. 지금은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삼촌도, 숙모도 저기 보이는 저 공동묘지에 잠들어 계세요. 여기서 이렇게 보이니 좋잖아요?”
“오! 그래요? 전 공동묘지 산책 가는 거 좋아해서 몇 번 저기 갔었어요.”
“하하하, 그래요? 난 여기서 보면 됐지 거기까지 가는 거 안 좋아해요. 거기 가면 보슈, 올리베로 가족들이 다 한 곳에 잠들어 있어요.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거지.”
“아...... 그렇군요. 다음에 산책할 때 찾아볼게요. 참, 할아버지 이메일 있어요? 사진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내 딸 이리나한테 보내요.”
“아, 그 아그리투리즈모 이름 찾으면 이메일 있겠네요. 그럴게요.”
“그렇구만. 그럼 다음에 일 도와주러 와요.”
“오! 진짜요? 그럼요.”
“자, 난 이제 점심 먹으러 가요.”
“그럼 저도 산책 마저 끝내러 갈게요. 감사 합니다, 할아버지.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잘 가요. 차오 차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