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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12. 2022

한여름의 보이스 피싱

A fishing boy

제목만 보고 누군가를 속여 돈을 빼내는 전화 사기 ‘보이스 피싱 (voice fishing)’ 이야기로 생각하고 클릭하신 분 들은 그야말로 제목에 낚이신 겁니다. 저는 오늘 ‘소년의 낚시(boy’s fishing)‘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 일요일, 발레 다오스타(Valle d’Aosta)와 이브레아(Ivrea) 근처 발 끼우젤라(Val Chiusella)에 있는 메울리아노 호수(Lago di Meugliano)에 다녀왔습니다. 딱 일 년만이었어요. 제가 사는 로에로(Meugliano) 지역에서는 자동차로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정말 가고 싶었던 란탄(Rantan) 예약에 성공해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죠. 


란탄은 원 테이블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열두 명의 모든 손님이 도착하면 다 함께 식사를 시작합니다. 시간 엄수는 필수였죠. 허겁지겁 도착하면 어떤 점심도 맛있을 리가 없지요.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발 끼우젤라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메울리나오 호수에 들렀습니다.


메울리아노 호수는 이상하리만큼 언제나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 곳입니다. 호수를 둘러싼 짙은 솔숲 향기 덕분인지 저도 모르게 깊이 호흡하게 되더군요. 햇살이 따가운 날이었지만, 호수 주위 둘레길을 병풍처럼 둘러싼 나무 그늘 덕분에 호수 주위를 한 바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호수 둘레길 마지막 구간,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곳에서 샛노란 티셔츠를 입은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늘도 없는 곳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끊임없이 끊임없이 낚싯대를 호수를 향해 던져댔습니다. 열한두 살쯤 되었을까요? 그 나이 또래에게서 흔히 보이는 치기, 장난기, 보여주기 식의 허세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밥을 먹듯이, 명상을 하듯이, 해일 주어진 일을 해내듯이 무심하게 툭툭 낚싯대를 던졌습니다. ‘어린아이 혼자 이 땡볕에서?’하고 생각하던 찰나, 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어진 손주를 기다려 주시는 소년의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호수 둘레길 두 번의 왕복 산책이 끝날 때까지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소출이 없어도 자신이 정한 일을 끊임없이 묵묵히 반복하고, 또 다른 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뒤에서 그저 바라봐 주는 일. ‘그저 한가한 일요일의 짧은 낚시가 아니라 저렇게 인생 전반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해내고야 말겠구나.’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목적을 정하고, 숨이 차도록 달리고, 결과에 연연하거나, 또 다른 누군가는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조언하고 격려하고 다그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나 봅니다. 


그저 말 없는 노인과 그의 손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소년의 낚싯대를 따라 저의 마음이 홀린 듯, 낚여버린 일요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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