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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13. 2022

하늘 문이 열리는 날, 백중

“할배, 죽을라믄 이번 달에 죽으소. 곧 백중 아이오, 지금 빨리 죽으믄 백중에 하늘 문이 열리고 천당 간다 안 하오. 그래 오래 살아가 부끄럽도 안 하오? 죽을라믄 곱게 빨리 죽을 요량을 하소이.”


“미쳤다. 죽을라믄 니나 죽어라. 천당 그래 좋으믄 니가 먼저 가라매, 나는 여가 좋다.”


오래 사는 걸 부끄럽다고, 왜 어서 안 죽냐고 탄복하고 할아버지를 구박하시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장수의 꿈을 품고 규칙적으로 생활하시고 소식을 실천하셨죠. 부처님 오신 날이면 장수를 위해 거북이를 연못가에 풀어 주시기도 하셨어요. 정말로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할아버지는 아흔이 훌쩍 넘게 장수하셨답니다.


뜨거운 여름, 백중날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부쩍 자주 꺼내세요.


“며칠 전엔 이모랑 범어사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백중날 절에 못 간 게 내내 마음에 걸리더니, 이모랑 다녀오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오늘은 망자들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는 백중이고, 며칠 후에 또 절에서 크게 기도를 올리거든. 그때 스님이 기도를 올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이름 올린 망자들 이름을 하나하나 다 불러 주신다.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어머니와  끝나고  시간이나 지났을까요? 뇌경색으로 오래 병원에 계시던 친구 아버님의 부고를 전해 들었습니다. ...... 오늘이 하늘 문이 열리는 날이라더니......  


저는 이런 큰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 어린애처럼 느껴져요. 속절없이 나이만 들었지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한국이 아니라 몸이 이렇게 멀리 있어, 장례식에 갈 수도 없고, 전화를 하자니 경황이 없을 텐데 위로가 아니라 방해만 될 것 같고, 어찌하나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한 친구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도 서울에 있어 장례식 참석은 못 하고 마음만 보냈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지만, 이런 때 보면 20년 넘게 안부를 묻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전화도 방해가 될 테고, 문자를 보내기도 그렇고, 고민하다 마음이 담긴 작은 손편지를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다른 친구가 알려준 계좌 번호로 부조금도 송금할 수 있었어요. 이럴 땐 정말 이번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인터넷 뱅킹을 다시 신청하고 들어온 게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친구야, 어제 소식 들었어. 나는 나이만 먹었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전혀 몰라. 전화를 하려다 방해가 될까 봐, 앞뒤도 없이 이렇게 손편지만 쓴다. 우리 부모님은 헤어지시긴 했지만, 한 분도 여의지를 않았으니 아버지 잃은 네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순 없을 거야. 한없이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아버님을 뒀던 너, 그리고 그런 너를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 주셨을 아버님이 떠오른다. 아버님은 너 때문에 참 행복하고 뿌듯하셨을 거야.

어머니 많이 안아 드리렴. 밥 잘 먹고, 잠 잘고. 다시 만났을 때 널 아주 꼭 안아 줄게.

친구야, 아버님 가시는 오늘이 하늘 문이 열리는 백중이래.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틀 전 이곳은 별이 무더기로 떨어지는 산 로렌조였는데, 한국은 오늘이 백중이군요. 백중날이 음력 7월 15일이니 양력으로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쯤 떨어지는 경우가 많겠군요.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이름 붙여졌다는 백중. 죽은 혼을 위로하기 위해 술 음식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을 하는 망혼일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특별히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먼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의식을 한 후, 청정해진 마음으로 밥과 찬, 5가지 과일, 향촉과 의복으로 공양하고 기도를 올렸대요.  


날이 더워서 그런 걸까요? 요즘 이곳에서도 주변에서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이야기, 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들을 부쩍 자주 듣습니다.


오늘, 정말로 하늘의 문이 열려서, 친구 아버님도, 모든 돌아가신 분들도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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