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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14. 2022

아! 복숭아가 온다! 베뻬 복숭아!

좋은 이웃은,  향기롭게 잘 익은 복숭아

 ‘좋은 이웃’하면 누가 떠오르세요? 저는 베뻬 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베뻬 할아버지 하면 복숭아지요.  


빨갛고 커다란 체리가 익어가는 오뉴월, 새콤한 자두가 익어가는 칠월 초도 아닙니다. 베뻬 할아버지의 특별한 복숭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말, 팔월 초는 되어야 맛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베뻬 할아버지는 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만 따시니까요.


베베 할아버지는 바로 앞집에 사세요. 한여름, 아침 대여섯 시만 되면 베뻬 할아버지 개가 짖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가 트랙터를 타고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립니다. 컹컹 짖어대는 개는 아마도 왜 자기는 데리고 가지 않냐는 거지요. 하지만 베뻬 할아버지가 개를 데리고 복숭아 밭에 갈 순 없어요. 해가 이글이글 뜨겁게 땅을 데우기 전에 재빨리 잘 익은 복숭아를 골라 따야 하거든요. 


베뻬 할아버지가 천천히 트랙터를 타고 집을 나서면, 저는 발코니에 나가 손을 흔들며 “베뻬!”하고 소리칩니다. 일찍 일어나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는 날이면 바로 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방긋 인사를 나누지요. 


베뻬 할아버지는 제 이름 ‘지윤’을 잘 발음하지 못하세요. 엄마가 어릴 적 애칭으로 부르시던 ‘준, 쭌’을 가르쳐 드렸더니, “유!” 하고 반갑게 툭 하고 할아버지 식의 제 이름으로 인사를 하시지요. 


베뻬 할아버지는 오르소(Orso)에요. 이곳 피에몬테(Piemonte) 사람들은 믿음직하고 속 정 깊지만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을 곰, 오르소라고 불러요. 베뻬 할아버지는 경상도 남자처럼 말을 아끼세요. 하지만 백 마디 말 대신, 매일 잘 익은 복숭아를 가져다주시죠. 


베뻬 할아버지 복숭아는 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라서 그 향을 따라갈 복숭아가 없어요. 


랄라라 상쾌하게 찬물 샤워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바로 땀에 젖어 버리는 더위가 올 때, 바로 베뻬 할아버지의 복숭아가 와요. 베뻬 할아버지가 키우는 복숭아는 여기 사람들은 뻬스카 리모네 레몬 복숭아라고 불러요. 달기만 하면 금방 물린 텐데, 베뻬 할아버지 복숭아는 몰랑하고 향기로운 황도에서 레몬처럼 살짝 새콤달콤한 맛이 나요. 


커다랗고 잘 생긴 복숭아는 장에 파시고, 작은 흠집이 나거나 너무 무른 복숭아는 매일 조금씩 가져다주세요. 정직하게 나무에서 익게 기다렸다 딴 복숭아라서 조금만 손이 스쳐도 흠이 난 것처럼 보여요.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복숭아들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역시 향과 맛은 베뻬 할아버지 복숭아를 따라오지 못 하지요.


그렇게 맛이 좋으니 베뻬 할아버지 복숭아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가까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챠우 델 또르나 벤또(La Ciau del Tornavento) 셰프 마우릴리오(Maurilio) 아저씨가 베뻬 할아버지 복숭아를 여러 상자 사 갔어요.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토리노의 유명한 젤라떼리아 사장도 베베 할아버지의 복숭아 맛에 반해버렸죠. 


어느 아침, 딱! 하고 복숭아를 막 따서 돌아오는 베뻬 할아버지 트랙터와 마주쳤어요. “유! 기다려봐! 복숭아 줄게.” “베뻬! 잠깐만요. 사진 한 장 찍을게요.” “아니, 무슨 사진은. 늙어서 사진이 안 나와.” “제가 한 장 잘 찍어 줄게요.” 사진 찍는 기술은 있을 리 없지만, 복숭아 덕분에 행복한 할아버지 얼굴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처음엔 손사래를 치고 어색해하던  베뻬도 잘 나온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세요. 


환하게 웃는 베뻬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문득, ‘나도 복숭아처럼, 베뻬 할아버지처럼, 향기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향기로운 복숭아처럼, 오르소 베뻬 할아버지처럼 작지만 멀리 가는 향기와 친절을 가진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요.


여러분은 어떤 이웃을 두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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