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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15. 2022

이태리 깡촌, 용감한 부부 요리사

원 테이블 레스토랑계의 끝판왕 ‘란탄(Rantan)’

지난주 일요일, 발레 다오스타(Valle d’Aosta)와 이브레아(Ivrea) 근처 발 끼우젤라(Val Chiusella)에 있는 란탄(Rantan)에 다녀왔습니다. 딱 일 년만이었어요. 제가 사는 로에로(Roero)지역에서는 자동차로 두 시간 조금 못 되는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운이 좋게도 예약에 성공해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어요. 점심 한 끼를 위해 한 시간을 넘게 달려간다고 유별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예요. 그것도 예약에 ‘성공해서’라니요.


란탄은 재미 교포 한국인 2세 효진 씨와 이탈리아 인 프란체스코(Francesco) 부부가 작은 시골 마을 농가 주택을 개조해 만든 특별한 곳입니다.


제가 ‘예약에 성공’했다고 말한 이유는 그야말로 예약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부부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에 딱 세 번의 식사만을 준비합니다. 한 번의 식사에는 오직 열 두 사람만이 참석할 수 있죠. 그야말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인 격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이 레스토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경험과 시간을 공유하는 곳이라구요.


란탄의 예약이 아주 어려운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코펜하겐의 레스토랑  노마(Noma)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벌이가 윤택해서 취미로 원 테이블 레스토랑을 일주일에 세 번만 연다면 그들의 이야기가 제게는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을 겁니다. 혹은 돈만 보고 레스토랑을 연 사람들이라면 더 매력이 없었겠죠.

“주말에만 문을 여시니 주말에 제일 바쁜 요리사들은 오기가 힘들어요. 열 두 명 팀을 짜 오면 한 번 식사를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둘이서 모든 걸 준비하다 보니 어려울 것 같아요. 텃밭도 돌봐야 하고, 정말 시간이 부족해요.”  


란탄을 만들어낸 두 사람 모두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효진 씨는 첫눈에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영혼이 맑고 깨끗한 사람입니다. 프란체스코는 눈빛이 총명하게 빛나는 유쾌한 사람이에요.


오픈 키친에서 그들은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눈빛을 주고받으며 눈앞에서 바로바로 음식들을 만들어 냈어요.


첫 접시로 나온 벤베누띠(benvenuti)는 새끼손가락 굵기로 자른 어린 오이에 된장 소스를 시소 잎으로 감싼 핑거푸드(finger food)였습니다. 오이와 시소 향이 고소한 된장 소스와 참 잘 어울렸습니다. 효진 씨가 만든 따뜻한 천연 효모 곡물빵은 구수해서 자꾸 손이 갔습니다. 곡물빵과 함께 근처 농가에서 만든 부드러운 버터, 어린 껍질콩 피클, 돼지 볼살 숙성 햄 구안찰레(guanciale)가 나왔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만들었다는 구안찰레는 아는 돼지 농가를 돕기 위해 두 마리나 통으로 한꺼번에 사들이는 바람에 고민 끝에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작년에도 맛봤던 어린 껍질콩 피클은 한국의 물김치가 떠오르는 맛이었습니다. 구수한 곡물 빵 위에 기름기가 많은 고소한 구안찰레를 올리고, 상큼한 껍질콩 피클로 입을 개운하게 입가심을 했어요. 어린 호박잎을 데쳐 여러 겹으로 쌓은 후 밀라네제(milanese)처럼 빵가루를 묻혀 튀기듯이 구워낸 요리도 아이디어가 신선했습니다. 비건 손님을 위해 특별하게 만들어 보았는데, 마음에 들어 다시 만들었다고 해요. 그들이 내어 온 여러 향신료를 섞어 무쳐낸 어린 통 당근 무침은 손가락 한마디보다 짧고 통통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들의 정감 어린 발자국 소리와 따뜻한 땅의 기운을 받고 잘 자라서 그렇겠지요? 작은 아기 당근은 부드럽기 그지없었어요.


후식이 나올 차례가 다가오자 효진 씨는 천천히 젤라또가 될 초콜렛 베이스를 아이스크림 기계에 넣고, 프란체스코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손잡이를 돌려가며 ‘수제’ 젤라또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즉석 젤라또는 여러 번 맛보았지만 모두 전적으로 기계로 만들어낸 것이었죠. 즉석에서 바로 손으로 돌려 만들어내는 젤라또는 처음 먹어 보는 셈이었어요. 드디어 달지 않은 복숭아 콩피(confit) 위에 바로 만들어낸 진한 초콜렛 아이스크림이 커피 크럼블(crumble)과 함께 후식으로 나왔을 때, 10월에 출산을 앞둔 동그란 배에 손을 얹고 달처럼 둥글고 하얀 얼굴의 효진 씨가 말했습니다. “매일 복숭아가 몇 개나 남았나 세어 봐요. 오늘은 딱 다섯 개가 남아 있더군요. 복숭아가 너무 소중해요” 한 끼에 열 두 명 분의 요리를 준비하니, 다섯 개의 복숭아만으로도 한 끼는 더 준비할 수 있을 겝니다.


지난여름, 멜레(Melle)의 안타고니스티(Antagonisti)의 셰프 빠올로 메네구츠(Paolo Meneguz)를 만났습니다. 그는 랑게(Langhe)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프레 (FRE)’에 미슐랭 원스타 별을 안겨주고 쿨하게 산으로 떠났었죠. 그리고는 한동안 역시나 미슐랭 별을 버리고 산속에서  레스토랑 ‘레이스 Reis’를 연 셰프 유리 키오티(Juri Chiotti)와 함께 일했습니다. 빠올로는 레이스 이후 멜레에 정착해 젊은이들과 힘을 합쳐 텃밭을 일구고, 게스트 하우스 프로젝트 등을 해 냈어요. 덕분에 멜레는 지루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멀리서도 사람들이 기꺼이 찾아가는 핫한 마을이 되었죠. 빠올로에게 란탄을 가봤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전 그들이 진짜 승자라고 생각해요.’  


‘일주일에 세 번의 식사만 준비하는 레스토랑’, ‘한 번에 12 사람의 손님만 받는 레스토랑’?  하루에 14시간 이상 뜨거운 부엌에서 점심 저녁 서비스를 해 내는 많은 요리사들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 겁니다. 요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일매일 오랜 시간 고강도의 노동과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집중력 있게 점심 저녁 서비스를 쳐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수명이 짧다고들 하죠.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동기나,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서도 비슷한 고민을 전해 들었습니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내지 않는 이상, 너무나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과 그와 상반되는 대우를 오래 견뎌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요리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일과 삶의 조화를 꾀하기가 쉽지 않죠. 오늘 점심에 만난 투스타 미슐랭 레스토랑 마데르나사(La Madernassa) 의 젊은 셰프 주세페 데리코(Giuseppe D’Errico)도 요즘 왜 그런지 위가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여자 친구는 이태리 남부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기러기 아빠도 아니고 기러기 남친, 주말 커플도 아니고 월차 커플이 된 젊은 셰프의 위장 문제가 저는 왜 그런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빠올로의 말처럼 효진과 프란체스코 커플이 요리계의 진정한 승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에 동행한 다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친구는 ‘두고 봐. 이 삼 년 후에도 이 레스토랑이 유지될지. 너무 꿈만 꾸는 거 아니야?’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 꿈, 그네들이 꾸는 거고, 그네들이 이룰 거야. 꿈만 꾸는 거, 왜 안 된다는 건지 나는 모르겠네.’


그 작고 외진 마을의 작은 공간, 두 부부를 어떻게 알고 알음알음으로 이태리 전역은 물론, 해외에서도 손님들이 몰립니다. 제가 참석했던 일요일 점심 식사에서도 두 시간 남짓한 곳에서 간 제가 가장 근거리에서 온 사람이더군요. 밀라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딸과 점심 식사를 하러 제노바에서 온 가족, 두바이에서 3개월 밀라노 꼬모 호수에서 8개월을 지내는 미국인 비건 커플, 두바이에서 온 커플 등 멀리서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란탄’, 그들의 욕심 없는 소중하고 소박한 꿈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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