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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18. 2022

무더웠던 이탈리아, 한여름 이야기

2022년 7월 말 오후, 북서부 이탈리아에서의 기록

2022년 7월 25일 월요일. 오후 5시 3분 전.


오후 네 시 정도 되었을까? 레스토랑 세팅을 돕고 있는데 요란스럽게 교회 종소리가 울린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였다면 댕댕댕댕 네 번 쳤을 텐데, 종소리는 아주 길게 울렸다. 이렇게 여러 번 울리는 종소리는 누군가가 죽거나 결혼을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월요일 이 무더운 시간에 결혼 소식은 아닐 테고, 아마도 누군가의 부고일 테다.


한국에서도 너무 춥거나 더울  노인들이 죽어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걸까? 7  한국에 들어갔을  저녁 뉴스에서는 폭염 주의보엔 동마다 위치 ‘더위 대피소 찾으라고 권했다. 더위 때문에 대피소를 만든다……. 여름 더위가 대단하지만 선풍기도 에어컨도 드문 이탈리아에서는 아마도 ‘신기한 세상 뉴스 나올 법한 이야기다.   


유럽 전역을 뒤덮은 폭염 덕분에 요즘 한국은 그다지 덥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풍기를 틀면 춥고, 끄면 덥다.” 부산 소식통 엄마의 제보였다. 선풍기만 틀어도 춥다고? 얼마나 부러운 소식인지. 이곳은 몇 도나 될까? 의자 아래 깔아 둔 방석 열기에 엉덩이와 허벅지 아래로 땀이 차오른다.


7월 7일 자정이 넘어 이탈리아에 돌아왔을 때는, 밤공기가 제법 시원했다. 시차 덕분에 아주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상쾌한 공기에 저절로 미소가 방긋 지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며칠 지나지 않아 이른 아침 공기가 뜨뜨 미지근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모기떼가 기승을 부리고, 뜨거운 침대에 몸을 누이기가 고통스러워졌다. 도무지 침대에서 잘 수가 없다. 바닥에 온 몸을 딱 붙이고 죽은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쫙 대자로 벌린 채 잠을 청한다.


어느날 늦은 밤, 더워도 더워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낮이라면 수영장이라도 갈 텐데...... 찬물로 샤워를 몇 번이나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었지만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쩐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24시간 슈퍼마켓!


“거기 까르푸죠? 정말 자정까지 열어요?” 인터넷에서는 24시간 영업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역시 이탈리아! 이탈리아에서 인터넷 정보 따위는 믿을 수 없다. “자정까지 영업이지만 슈퍼마켓 문은 11시 45분에 닫아요.” 운전해서 가는 데 20분, 서두르면 한 시간은 시원하게 몸을 식힐 수 있겠다 싶었다.


더위 한 번 피해 보자는 일념 하나로 꼬불꼬불 포도밭 언덕길, 어둠을 헤치고 도착한 슈퍼마켓. '아! 저 문 안으로만 들어가면 시원한 세상이다!'


드디어! 자동 출입문이 열렸다.


그런데, 어쩜……. 어쩜 이렇게 에어컨을 약하게 틀 수가 있는지……. 한국의 임산부 노약자 전용 지하철 약냉방 칸도 으슬으슬 춥기만 춥던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금방 피부가 보송보송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계산은 엇나갔다.


한국에서 보낸 26일 간, 나도 모르게 한국의 엄청난 에어컨 세례에 익숙해졌었나 보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어딜 가든 머플러를 챙겨서 나갔었지. 집에서도 늘 하던 말이 “엄마, 에어컨 좀 끄면 안 돼요?”였다. 나도 무르게 “어휴, 추워!”란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통에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냐, 넌 한국 사람이 아니냐고 엄마에게 여러 번 한 소리를 듣곤 했었다.


‘스르륵’ 내일 이른 새벽 비가 온다고 하더니 얇은 커튼이 아주 조금씩 바람에 나부낀다. 오늘은 얌전하게 침대에서 이불 덮고 잘 수 있을까?




2022년 8월 17일 저녁 해진 후. 서늘한 기운 때문에 5월 이후 처음으로 창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몇 달 동안 찬물 샤워만 해오던 제가 처음으로 뜨거운 물 샤워를 하고 있더군요. 8월 중순이 지나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도 드디어 천천히 안녕을 고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여름의 옷자락 끝에서 참 길었던 2022년 여름의 기억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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