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어디까지 다려보셨나요?
저는 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다림질에도 익숙하지 않지요.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할 때도, 정장보다는 세미 캐주얼로 입었더랬어요. 바지는 짙은 색의 면바지나 청바지를 입고, 위에는 밝은 색의 티셔츠나 블라우스에 차분한 쟈켓을 입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막내라 몇 년 동안 수업과 교사 연수 담당이라는 업무 외에도 담임교사를 해야 했습니다. 공개수업이나 연구 수업을 할 때처럼 몸에 핏이 딱 맞는 고급 정장을 입었다가는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매일 보는 우리 반 아이들이었죠. 매일 옷을 바꾸어 입지 않으면 아이들은 “선생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외박했죠?” “아이쿠.....” 그러니, 학생들 때문에라도 옷을 사는 일이 일이었습니다.
편한 옷에만 손이 가다 보니, 어쩌다 입을 옷이 없을 때만 어쩔 수 없이 정장을 꺼내 입곤 했습니다. 옷 돌려 입기에 실패할 때만 정장이나 원피스를 입다 보니, 정작 제가 가장 불편한 날에 동료 선생님들이 “이 선생,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 일 마치고 데이트 있나 봐?”하고 물어봐 주셨죠.
정작 저는 “아...... 네..... 그게 입을 옷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하고 부끄럽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가끔 입던 정장이나 원피스, 바지 등은 다림질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꼭 세탁소에 맡기곤 했어요.
이탈리아에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크 소재나 다림질해야 하는 옷들은 꼭 세탁소에 가지고 가지요. 그러다 보니 손이 자주 가는 옷들은 빨아서 툭툭 털어 널어놓으면 알아서 주름이 펴지는 옷들이었죠.
요리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조금 다림질 실력이 나아졌습니다. 순면으로 된 새하얀 셰프 쟈켓을 다려야 했으니까요. 이탈리아에서 요리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셰프 쟈켓은 꼭 제 손으로 다려 입기 시작했어요. 다림질을 할 때면 다음날 일에 대한 준비가 말끔하게 끝난 것 같은 경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쉬는 날 한꺼번에 열 벌은 됨직한 쟈켓을 한꺼번에 씻어 싹 다리고 나면 어찌나 마음이 홀가분하던지요.
아...... 그런데...... 몇몇의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 저랑은 아주 다른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더군요.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여러분은 면 티셔츠 다려서 입으시나요? 저만 그랬을 까요? 저는 면 티셔츠를 다려 입어야 한다는 걸 이탈리아에 와서 알았습니다.
쉬는 날마다 집에 가던 밀라노 친구는 집에만 다녀오면 각이 잡힌 셰프 쟈켓은 물론, 셰프 쟈켓 안에 받쳐 입는 보이지도 않을 면티셔츠도 주름 없이 다린 것을 가지고 왔죠.
면 티셔츠뿐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깔끔한 어머니들은 네! 속옷도 다리십니다.
어릴 적 한참 제가 다리미를 신기해하고 관심을 보일 때가 있었어요. 다리미 판 열이 조금 식으면 어머니는 제게 주머니에 넣어 다니게 하셨던 얇은 손수건을 다리게 해 주셨어요. 재미가 들려 면 팬티를 다리려고 했더니, 어머니는 깜짝 놀라시며 “속옷 다려 입으면 바람난다.”라고 하셨죠. “속옷을 다려 입으면 바람이 난다고요? 왜요?” 신나게 다림질을 하는데 아서라 만류하시니 저는 고개만 갸웃거렸죠. 지금 생각해보니, 평소와는 다르게 속옷을 다려 입을 정도로 속옷을 신경 써서 예쁘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한다면 ‘어? 이 사람이 바람이 났나?’하고 의심하는 경우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마치 '결혼식에 비 오면 잘 산다', '똥 밟으면 재수 좋다' 등의 우리네 식의 거꾸로 지혜가 담긴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속옷을 다려 입으면 바람이 나는 게 아니라, 바람이 났으니 속옷도 다려 입을 정도가 되었겠지요.
어쨌든, 저는 그저 어릴 때부터 ‘속옷은 다려 입으면 안 되는 거구나.’ 하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밀라노 친구 집에서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나셔서 깔끔하게 집 정돈을 다시 하시고 빨래를 다리시는 걸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속옷까지 싹싹 빳빳하게 주름 없이 다리시더라구요.
티셔츠는 물론, 속에 받쳐 있는 런닝, 팬티, 양말, 심지어 머리카락 말리는 대형 타월에서부터 샤워 가운까지 말입니다. 오, 이런. 이것만이 아니었군요. 침대 커버, 배게보, 이불 커버는 물론, 주방에서 사용하는 행주까지 다린 후 착착 개어서 보관했었더랬죠.
생각해 보니 제가 근무했던 레스토랑 주방장 사모 에이미는 미국 콜로라도 출신이었지만, 어느새 이탈리아 문화에 익숙해져서 요리사들이 입는 앞치마도 싹 다린 후, 각을 잡아 레스토랑으로 가지고 오곤 했었어요.
속옷에서 양말까지 어머니가 주름 없이 다려 주시는 옷을 입고 하루는 시작하는 이탈리아 아이들, 어릴 때부터 얼마나 대우받고 존중받으며 자라는 걸까요? 그래서 이탈리아 아이들이 그렇게 말대꾸를 잘하는 걸까요? 아니면 그래서 이탈리아에 헬리콥터 맘들이 많은 걸까요? 가까이서 볼 수록 신기한 문화 차이를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