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천불을 꺼 줄, 이탈리아에서 마시는 '커피스러운' 마실 거리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커피란 무엇일까요?
아침을 깨우는 카페인? 하루를 시작하는 소셜 라이프의 시작?
아침 식사를 물론 집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집에서 아침 허기를 해결했다고 해도 꼭 아침 커피 한 잔쯤은 밖에서 즐기는 걸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인들에게 에스프레소 한 잔이 50ml의 카페인이 가득한 구수한 향기가 나는 검고 뜨거운 액체만은 아닐 겁니다.
반면 한국인들에게 커피란 커피가 들어간 모든 음료를 뜻할 겁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맛을 보고 나서도 커피인 줄 모르는 그 유명한 믹스 커피는 물론이지요. 아직도 제 입맛엔 독하디 독한 에스프레소, 도시인들의 머스트 아이템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거품 키스의 주인공 카푸치노, 여름이면 찾게 되는 아이스커피 등 이 모든 '커피스러운 음료'가 커피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인들에게 커피란 에스프레소 커피, 모카포트에 끓인 커피,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 붐을 일으키고 있는 캡슐 커피 정도를 의미합니다. 핸드 드립 커피조차 이탈리아 인들에게는 그것이 과연 커피인가라는 논란을 일으키지요. 그러니 하물며 한국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아메리카노는 몇몇 이탈리아 인들에게는 얼굴을 저절로 찌푸리게 만드는 구정물(acqua sporca) 정도로 인식될 밖에요. 카푸치노 또한 카푸치노일 뿐 커피는 아니지요.
이렇게 커피의 범주에 대해 깐깐하고 인색한 이탈리아 인들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즐기는 커피를 이용한 음료의 종류는 이탈리아 인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답니다.
한국 사람들이 영하의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걸으며 즐기는 사진을 보고 많은 외국 사람들이 놀랐다고 하죠?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는 얼음을 가득 넣은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국에서는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사랑받습니다. 뜨끈~한 국물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깔끔하게 캬~ 겨울에도 사랑받는 한국인들의 머스트 음료지요.
문제는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그런 구수하고 시원하고 목 넘김이 좋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따위는 속에 천불이 저절로 올라오는 한여름에도 즐길 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릅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렵겠지만, '커피가 들어간 시원한 것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보실 수 있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한여름, 추운 겨울에도 아주 매운 칼라브리아 음식을 드시고 나서 시원한 것으로 속을 달래고 싶을 때, 방금 산 루이비통 가방을 맥도날드 갔다가 도둑 맞았을 때 아린 속을 달래줄 '커피가 들어간 차가운 마실 거리와 먹거리'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샤케라토 (Caffè Shakerato)
일 번 주자 나옵니다. 바로 불균일한 작은 얼음 알갱이와 풍부한 커피 거품이 매력인 샤케라토입니다. 샤케라토는 미세한 커피 거품과 자잘한 얼음 알갱이가 가득한 시럽이 첨가된 아주 진한 아메리카노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칵테일 셰이커 컵에 얼음과 뜨거운 에스프레소, 시럽을 함께 넣고 힘껏 흔들어 잔에 따르면 샤케라토가 만들어집니다. 간혹 바닐라 리큐르를 함께 넣은 레시피를 이용하는 카페떼리아도 있지요. 혹시 단맛이 싫으시면 에스프레소와 얼음만 넣고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세요.
뜨거운 에스프레소의 열기와 순식간에 흔들어대는 강한 물리적 자극에 각얼음은 순식간에 가루 수준으로 잘게 부서집니다. 오독오독 작은 얼음 알갱이를 씹으며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커피입니다.
라떼 마끼아또 프레도 (Latte macchiato freddo)
라떼 (latte)는 '우유', 마끼아또(macchiato)는 '얼룩이 진', 프레도(freddo)는 '차가운'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커피로) 얼룩 진 차가운 우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시원하게 드시려면 얼음도 함께 부탁해 보세요. "Un latte macchiato freddo con ghiaccio, per favore(얼음이 들어간 차가운 커피 얼룩 우유 주세요.)"라고 주문하시면 됩니다. '(커피)로 얼룩이 진 우유'라니, 한국말로 옮기고 나니 재미있군요. 고소하고 차가운 우유에 이탈리아 특유의 진한 커피가 만나 시원한 한 모금을 선물할 겁니다.
카페 살렌티노 (Caffè Salentino)
무더운 남부 살렌토에서 즐긴다는 커피. 역시 시원하게 각얼음이 가득 들어가야 매력이 있습니다. 먼저 유리잔에 얼음을 가득 넣어 잔을 차게 식히고, 우유 대신 시럽이 첨가된 아몬드유,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넣습니다. 시원하면서도 달달하고 아몬드 때문에 고소한 것이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아할만한 정겨운 맛입니다.
아포가또 (Affogato)
익히 많이 아실 듯 한 디저트. '익사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아포가또 (affogato). 그야말로 아이스크림을 커피 속에 익사시켜 먹는 디저트입니다. 부드러운 생크림 혹은 바닐라 젤라또 위에 갓 뽑아냇 향기나는 에스프레소의 조합은 환상적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의하지 않고 뜨거운 커피를 아이스크림 위에 한꺼번에 확 부어버리면 그야말로 젤라또는 형태를 잃고 갈색의 차가운 죽이 되어 버리지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피는 따로 달라고 해 보세요. "아포가또 하나 부탁할게요, 단, 커피는 따로 주세요.(Vorrei un affogato, però, caffè da parte, per favore)라고 주문하시면,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커피를 아이스크림에 부어 가시면서 즐기실 수 있게, 커피를 따로 작은 용기에 준비해 주실 겁니다. 익히 아실 맛, 하지만 이탈리아 젤라또와 본토 커피가 만났으니, 색다른 경험이 되겠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 집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갓 뽑거나, (핸드 드립으로)내리거나, (모카 포트로)올린 커피로 본인만의 레시피로 만든 시원한 커피 음료, 한 번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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