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를 건네는 마음, caffè sospeso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 커피 기부 문화

by 이지윤

caffè sospeso를 아시나요?

싸늘한 바람이 마른 가슴을 파고드는 이 가을, 당신에게는 모르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습니까?




제게는 남부 아말피 해안가 작은 마을 에르끼에(Erchie)에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게스트로 시작된 인연은 1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요. 나폴리 인인 아버지와 칼라브리아 태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집스러운 남자 장 피에트로, 터키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네델란드에서 자랐지만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아말피 해안에서 동반자를 찾은 세넴.

저는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북부 이탈리아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장 피와 세넴 커플이 남부에 갈 때마다 소개해주는 진솔한 남부 친구들, 그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 덕분에 남부 이탈리아 문화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지요.


"오늘은 아름다운 나폴리 문화를 하나 소개해 줄까? 카페 소스페조(caffè sospeso)라고 들어봤니?" 부쩍 날이 싸늘해져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난로 속의 나무 타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장 피가 운을 뗐습니다. "응? 카페 소스페조? 카페는 커피고, 소스페조는 '공중에 높이 걸려 있는'이라는 뜻 아니야? 공중에 높이 걸려 있는 커피???" 장 피는 웃으며 천천히 입을 뗍니다.


"카페테리아에 커피를 마시러 가서, 기분이 좋을 때, 커피값 1유로가 아니라 2~3유로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니?" "아니, 토리노에서는 몇십 센트까지 다 정확히 계산해서 내는 걸? 왜 1유로 대신 2~3유로를 내는 거야?" "그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한 거지." "그럼 커피값을 낸 사람은 다음에 올 누군가를 알고 미리 커피값을 내는 거야?" "아니, 그다음에 누가 올 지는 알 수 없지." "응?" 이해가 잘 되지 않아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유쾌한 친구 중 하나는 커피를 마시러 가서 멀리서라도 아는 친구를 보면 그 친구 몰래 "저 친구 커피값도 내가 낼게!"라고 커피를 사기는 하지요. 그런데 카페 소스페조라니 모호하게 그다음에 어떤 사람이 올 줄 알고 커피값을 미리 내나요?


다음날 아침 일찍, 저는 에르끼에에서 한 시간 한 대 지나가는 시타 버스를 타고, 살레르노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나폴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였죠. 장 피에게 카페 소스페조 이야기를 들은 저는 정말로 나폴리에 카페 소스페조 문화가 남아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카페 소스페조라고 아시나요?" 나폴리 중앙역 앞 가장 큰 카페테리아에서부터 크고 작은 카페테리아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풍문으로 들리는 카페 소스페조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지 캐기 시작했습니다. 장 피 이야기와는 달리 아쉽게도 의외로 카페 소스페조를 알고 있거나 시행하고 있는 카페테리아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정말 커피 한 잔 사 마실 주머니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때 그 유명한 영화배우 토토가 통 크게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를 사곤 했어요." 하얀 분칠을 하고 슬프지만 우스꽝스러운 무성 영화 속에서 연기를 하던 중절모를 쓴 턱이 긴 배우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지금도 카페 소스페조를 시행하고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나요?" "우린 이제 안 해요. 역 바로 앞이라 얼마나 노숙자가 들끓는지 몰라요. 카페 소스페조라고 써 붙이면 커피 기부를 할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정작 냄새나는 노숙자들이 카페테리아에 들어서면 누가 기분이 좋겠어요?" 생각지 못 한 반응이었습니다.


크고 작은 카페테리아에서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노"라는 말만 듣기를 한참..... 힘이 빠져갈 때였습니다. 한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드디어 "그럼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요. "누군가 커피 기부를 하면 우리 가게에서는 유리창에 스티커로 영수증을 붙여 놓아요. 그렇게 하면 멀리서도 유리창에 붙여 놓은 영수증을 보고 카페 소스페조를 마시러 사람들이 와요." "그런데 오늘은 유리창이 텅 비었네요?" "요즘 어디 사람들 살기가 그렇게 여유가 있나요? 커피 한 잔 살 여유도 말라 가네요." "그럼 제가 기부할게요." 커피 두 잔 값이 붙은 작고 하얀 영수증이 유리창에 하나 붙는 것을 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았지만, 나폴리 어디에서도 카페 소스페조를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다시 에르끼에로 돌아가는 길. 잠깐 살레르노 극장 앞 "Bar G. Verdi Caffè Letterario"에 커피를 한 잔 하러 들렀습니다. 그런데 카페테리아 벽면 작은 초록 칠판 위에 "caffè sospeso"라고 분명히 쓰여있지 않겠어요? 1이라는 정확한 숫자와 함께 말이죠. 역시 역사가 깊은 극장 앞 카페테리아에 오시는 손님들의 여유 덕분인 걸까요? 저는 정말 카페 소스페조 커피를 마시러 누군가가 올 지 따스한 커피잔을 손으로 감싸 쥔 채 기다려 보았습니다. 간간이 들리는 손님은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누구도 카페 소스페조를 원하지는 않았죠. 오늘은 허탕이구나 싶은 순간 "삐익"하고 오래된 카페테리아 문이 열렸습니다. 긴 수염에 남루한 차림을 한 손님이 들어와 조용히 카페 소스페조 간판을 가르치셨어요. 그러자 온화한 미소의 여사장님은 초록 칠판의 숫자 1을 지우고 조용히 커피를 준비하셨죠. 손님은 오래 머무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바에 서서 '호로록'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비우시고는 '고맙습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재빨리 사라지셨죠.


나폴리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문화라고 들었지만, 정작 저는 나폴리가 아니라 살레르노에서 카페 소스페조가 살아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어요. 저도 그 바 베르디를 나서며 제 커피값 외에 커피 두 잔을 기부했습니다. 여사장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우아한 손길로 숫자 2를 칠판 위에 다시 쓰셨죠.


그 후 지금까지 저는 총 세 번의 소스페조 문화를 목격했습니다. 각각 나폴리, 알바, 토리노에서였죠. 나폴리에서는 맛있는 피자를 먹고 나서면서 고아원에 피자를 기부하는 핏자 소스페자(pizza sospesa)를, 알바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 동안 고생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위해 한 사람이 통 크게 기부한 몇 백 잔의 카페 소스페조를, 토리노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 전 들렀던 비네리아에서 비노 소스페조(vino sospeso)를 하는 걸 보고 저도 와인 기부를 했습니다. 커피, 피자, 와인까지...... 누군가를 지정하든 그렇지 않든, 커피가 되었든 피자가 되었든 와인이 되었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같지 않을까요?


며칠 전 급히 몇 가지 생필품을 사러 집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계산을 하고 나오던 중 눈을 잡아끄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계산대 바로 앞에 있는 커다란 철제 바구니였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는 행운아라면, 슈퍼마켓을 나서며 낯 모르지만 근처에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과자 한 봉지, 휴지 하나, 세제 한 통 선물할 수 있는 거겠지요. 슈퍼마켓 주인의 마음 씀씀이와 그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손길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문득, 몇년 전 토리노에서 지갑을 도난당해 울상을 하고 있는데, 한 이탈리아 친구가 제게 한 말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행운이야?" "뭐라구?" "너는 잃어버릴 지갑과 돈이 있잖아. 니 지갑을 훔친 사람은 어떤 생활을 하는 사람이겠니?" 그땐 지갑을 도난당해서 너무 속상하고 놀라서 그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군요.


이른 아침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나서면서, 낯 모를 누군가를 위해 따스하고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선물하는 일. '기부'라는 거창한 의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기분 좋은 선물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커피값이 비싼 한국에서라면 다른 이야기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