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좀 놀아본 언니의 친절한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 1
Ben arrivati!!! 열 시간 이상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탈리아에 오신 당신! 환영합니다!
이탈리아에 오셨으니 와인 맛도 보셔야죠?
이탈리아 와인을 제대로 즐기려면 어디로 가면 되냐구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로 유명한 피에몬테 랑게 지역, 슈퍼 투스칸 와인으로 유명한 토스카나가 굳이 아니더라도 이탈리아 어느 지역이든 와인이 생산되지 않는 곳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이탈리아 전역 어디를 가시더라도 그대가 발 디딘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와인의 첫 발을 떼는 곳일 겝니다.
이탈리아 인들의 와인 사랑은 뿌리가 꽤 깊습니다. 이탈리아 남부 파에스툼의 무덤 내부 벽화에도 포도주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내세까지 꼭 간직하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하죠? 혹시나 내세에서 포도주를 즐길 수 없을까 봐 그림으로도 남겨 두었구나 싶어 포도주를 향한 강한 애착에 놀랐더랬습니다. 이탈리아 인들은 심지어 전쟁 중에도 포도나무를 들고 이동했다고 하니 그들의 삶에서 와인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죽음도 나를 와인과 헤어지지 못하게 하리라!
이탈리아에 온 당신. 그리고 오늘 와인을 맛보겠다고 결정한 당신.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와인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마시렵니까? 제가 이탈리아 문화에 낯선 당신이 실패하지 않고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제가 누구냐구요? 이탈리아에서 일할만큼 하고, 놀만큼 놀았습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데 도가 튼 '이탈리아에서 좀 놀아본 언니', 이지윤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친절하고 자세한 이탈리아 가이드는 없었다! 자자, 저~기 멀리 서서 팔짱 끼고 색안경 끼고 보지 말시고, 아~ 또, 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한겨울에 그 좋은 아말피 가서 여름에 물에 적셔먹는 딱딱한 마른 빵 사서 드시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걸 먹느냐고 푸념하지 마시고, 일단! 따라오세요~
혹시 굳이 와인을 아침에 마시겠다는 분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멀리서 왔는데, 시간도 없고! 아침부터 마셔야 조금이라도 더 경험을 할 수 있죠.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 때 와인 없으면 안 된 다면서요? 아침 식사는 뭐 식사 아닙니까?" 아...... 그렇지요. 아침 식사도 식사지요. 하지만 이탈리아 인들의 아침식사는 조금 다릅니다만...... 아침 아홉 시, 열 시부터 펍이니 바에서 술을 팔기 시작하는 베를린도 아니고, 햇살 좋은 이탈리아에서 아침부터 와인을 드신다면...... 식사 때마다 와인은 빠트리지 않는 이탈리아 인들이지만 흘깃 당신을 한 번 쳐다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굳이 아침에 마시겠다면, 저는 그대를 존중하겠어요. 어디로 가시냐? 한겨울, 돌로미티(Dolomiti)로 유명한 이탈리아 북동부 알토 아디제(Alto Adige) 지역으로 가시지요.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에서 스키도 실컷 즐기시고, 해가 지고 나면 춥고 피곤한 몸은 따스한 스파에서 녹이세요. 하얀 도자기로 만들어진 알토 아디제 지역 전통 벽난로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면서 까슬까슬 빳빳하게 잘 다린 새하얗고 기분 좋은 침구에서 자고 일어나면, 아름다운 홀에 조식이 당신을 기다릴 겁니다. 아! 그럼요, 당신이 아침에 마시고 싶다고 했던 그 와인두요.
"정말로 조식으로 와인이 나온다구요? 아까 이탈리아 사람들의 조식은 다르다면서요?" 그러게요, 알토 아디제는 이탈리아 령으로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실제로 알토 아디제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언어도 이중 언어를 사용하죠. 그러니 그들의 아침 식사도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릅니다.
네, 알토 아디제 산악 지역 고급 호텔에 가면 조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이 병째로 얼음에 폭 몸을 담그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대를 기다릴 겁니다. 알토 아디제는 워낙 스펙(Speck)이 유명한 지역이라 아침 식사로 얇게 자른 스펙은 물론 프로슈토(Prosciutto), 살라미(Salami), 각종 치즈(Formaggi), 갓 구워 나온 계란, 막 토스트한 뜨거운 빵이 함께 나오죠. 이렇게 짭짤한 아이들이 나오니 한겨울이라도 시원하게 쿨링해 투명한 잔 안에서 보골보골 작은 기포들이 춤을 추며 올라오는 스푸만테(Spumante) 한 잔을 어찌 마다 할 수가 있을까요? 누군가 나를 술꾼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으시고, 기분 좋은 하루 시작해 보시죠.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른 아침에 와인은 좀 그렇죠. 저...... 그런데요...... 솔직히 말하면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긴 그렇고...... 아침을 카푸치노 한 잔에 브리오쉬 하나 먹고 너무 걸었더니 배가 슬슬 고파졌거든요. 그냥 가볍게 간단한 음식이랑...... 그래도 이탈리아 왔으니 맥주보다는 와인 한두 잔 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좋죠?" 하는 당신.
아페리티보(Aperitivo)를 원하시는군요? 카페 혹은 바에서 아페리티보로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와인 선택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는 당신을 그 지역의 에노떼까(Enoteca) 혹은 비네리아(Vineria)로 모시겠어요. 와인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에노떼까 혹은 비네리아에서는 와인을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단한 아페리티보나 요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도 많답니다. 그 지역에서 아페리티보를 할 수 있는 괜찮은 에노테카를 호텔에서 추천받으셨다고요? 잘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하느냐구요? 당신이 지금 어느 지역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단, 아직 시간이 이른 만큼 도수는 너무 높지 않은 것이 좋겠지요. 저라면 에노테까 주인에게 그 지역에서 생산된 도수가 낮은 레드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겠어요.
그렇다면 가볍게 요기할 건 뭐가 있을까요? 가볍게 드신다고 했으니,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는 각종 프로슈토와 살라미, 치즈 종류가 함께 플레이팅 된 '딸리에레 디 프로슈토 에 살루미 콘 포르마죠(Tagliere di prosciutto e salami con formaggio)'를 주문해 보세요. 도수가 높지 않고, 오크통 숙성 기간이 짧거나 작은 오크통 바리크에 숙성하지 않은 와인, 최근에 생산된 빈티지의 와인이 좋겠네요.
아! 살라미 안의 각종 향신료와 궁합이 잘 맞는 와인이 떠올랐어요. 뻴라 베르가(Pelaverga)! 눈으로 먼저 보시죠. 븕은 색이 진하지 않아서 잔 아래 비친 글씨가 읽힐 정도라구요? 눈썰미 좋게 잘 보셨습니다. 뻴라 베르가 품종으로 빚은 포도주는 색이 진하지 않아요. 눈으로 보셨으니 이제 잔을 코로 가져가 보세요. 놀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시네요? 네, 맞아요. 익히 아시는 그 향입니다. 뻴라 베르가는 후추 향이 매력이지요. 이제 한 모금 드셔 보시겠어요? 어라? 하고 또 웃으며 저를 보시네요? 무겁지 않고 신선하면서 입 안에 남아있던 먼저 맛보신 프로슈토와 살라미의 기름을 싹 씻어주죠. 정오 전에 시작해도 부담스럽지 않게, 도수도 낮은 와인이랍니다.
아!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군요. 보고 싶은 것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꽉 채운 스케줄로 아침부터 일어나 이곳저곳 다니시느라 배는 또 얼마나 고팠을까요? 잠깐 쉬어 가시죠.
격식 있는 레스토랑도 좋지만, 점심 식사는 간단하게 그 지역 전통 음식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가정식 오스테리아(Osteria)나 뜨라또리아(Trattoria)를 가 볼까요? 어디로 모실까요? 아말피(Amalfi) 해안의 바다가 보이는 뜨라또리아는 어떠세요? 특별히 당신을 위해서 하얀 차양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곳에 자리를 예약해 두었어요.
바닷가에 오셨으니, 역시 해물이지요. 담백하고 깔끔하게 봉골레가 가득 들어간 스파게티와 이열치열 이탈리아 식 해물탕 주빠 디 뻬쉐(Zuppa di pesce)를 추천합니다. 무엇을 드실지 결정하셨으니, 이제 와인을 고를 차례지요? 아말피에 왔으니 이 지역 토착 품종 포도로 빚은 와인이 어떻까요? 살짝 바질 향과 청사과 향이 나면서 해물과 잘 어울리는 팔랑기나(Falanghina)를 추천하고 싶어요. 눈으로 먼저 볼까요? 색이 진하진 않네요. 살짝 초록색 기운이 감도는 연노랑색이 감돕니다. 어라, 코에서는 풋사과와 배....... 바나나향 같아요. 아! 그리고 살짝 바질 향도 나요. 살짝 맛을 볼게요. 단맛은 적은 편이군요. 제가 좋아하는 산도가 좋은 약간 짭짤한 맛의 와인이에요. 추천해 주신 대로 해물과 잘 어울리겠는데요? 뻥 뚫린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주네요. 어라? 벌써 다 비우셨네요? 웨이터! 팔랑기나 한 잔 더 주시겠어요?
몇 년 전 겨울 휴가에 아말피 친구네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바닷가 구멍가게에서 여름에 팔고 남은 딱딱한 빵 프리젤레(Friselle)를 아침 식사로 사서 갔다는 한국 배낭여행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헉! 여름에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오븐 앞에서 빵 굽기 싫어서 남부 사람들이 사랑하는 빵, 프리젤레. 하지만 보관에 좋으라고 두 번 말리듯이 구운 빵이라 빵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게 딱딱하기가 돌에 버금가건만, 물에 살짝 적셔서 먹어야 하는 빵인데....... 그걸 한겨울에 아침 식사로...... 어머나! 그 청년들 젊어서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괜찮을라나?
아! 그때 저는 결심했어요. 아니,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아보자고 큰맘 먹고 오는 이탈리아! 조금 알고 먹고 마시면 더 잘 놀 수 있는데, 그 추운 겨울, 아침부터 돌덩이를 씹어 먹었을 그 청년들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웠어요.
궁금하신 분들께 조곤조곤 알려 드려라, 언니여! 그대만큼 이탈리아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아본 사람은 드물다! 가깝지도 않은 나라 이탈리아. 멀리서 큰돈 들이고 오는 곳인데...... 이탈리아에 오시는 분들이 부디 즐겁게 잘 즐기다 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속속들이 친절한 이탈리아 가이드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아는 만큼, 비록 글이지만 자세히 눈으로 보시듯이 알려 드릴게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