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종강 그후

코로나 시대의 유학

by Natalie

2학기 말, 심한 고열로 고생하고 스튜디오 마지막 과제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 뒤로 한동안 심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게다가 학기 말까지는 논문 주제 선정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이 부분은 이후 학업 방향을 바꿀 정도로 큰 고민거리였다.


내가 속해 있던 미디어과는 특이하게도 1학년 때부터 논문 주제를 정해 2학년 내내 논문 작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런 이유로 1학년 말에는 thesis gateway라는 세미나 과목이 하나 더 있었다. 매주 교수님과 만나 논문 주제와 구현 방식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었는데, 나에게는 매우 큰 고역이었다. 어떤 주제를 생각해도 이미 있는 뻔한 방식의 해결책만 떠올랐고, 교수님들에게 주제 선정부터 매번 지적을 받았다. 관심 있는 주제는 두루뭉술하게 떠올랐지만, 명확히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는 없었기 때문에 크리틱을 받을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1년내내 온라인으로 유학생활을 보내게 될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무사히 종강은 했다. 성적은 1학기와 비슷하게 나왔는데, 이번에는 CT(creative technology)에서 A-를 받았다. 마지막 기말 발표도 하지 못한 스튜디오 4가 B나 C가 나올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A-를 받으니 정말 대만족이었다.


2학기 말 thesis gateway를 통과하지 못한 친구들은, 나머지 수업과 마찬가지로 방학 동안 교수님과 5번의 미팅을 가져야 했다. 사실 정규 수업도 아닌 방학 동안 이렇게 시간을 내어 학생들을 관리해 주는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매 세션마다 주제와 관련된 리서치와 생각을 정리해 면담하는 시간이 큰 부담이기도 했다. 내가 받은 주된 피드백은 “어떤 디자인을 탐구해 흥미로운 질문을 만들어낼지가 불확실하고, 자꾸 뻔하고 피상적인 해결책 찾기 수준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였다.


몇 년이 지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교수님의 “You need to trust the (creative) process”, “Disrespectful about topic”, “Find less intuitive question” 같은 말들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멘탈헬스 (mental health)’라는 주제에만 집착해 의미 있는 critical position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critical position”이나 질문을 만들라는 말은 미디어과에 있는 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조언이었는데, 새로운 관점과 질문을 제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이 학과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미술을 공부하면서, 관심 있는 주제를 찾고 그에 대한 의견과 관점을 정리해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오는게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미디어과의 접근법은 상당히 생소했고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이미 작품 제작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의식중에 있었던것 같고, 습관적으로 내가 편하고 잘하는 방식으로만 작업을 이끌어가곤 했다.


교수님과 5번째 미팅까지 진행했지만 뚜렷한 방향의 윤곽이 나오지 않을 때쯤, 나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건강 문제가 겹치면서 학업은 잠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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