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수 없는 14주

코로나 시대의 유학

by Natalie

아트센터 미디어과의 한 학기는 14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말만 14주지 실제로는 10주 남짓이었다.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으로, 수업 개요를 설명하고 선생님이 준비해 온 다양한 자료를 접했다. 놀라웠던 건 한국처럼 첫 학기의 첫날을 대충 때우지 않고, 나름 유익한 내용을 배우며 수업 시간을 꽉 채운다는 점이었다.


첫 학년 7주 차에는 ‘thesis week’이라는 기간이 있어 수업이 아예 없었다. 시니어 학년들의 졸업 심사를 위한 주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주 차에 중간 과제를 발표하고, 8주 차부터는 새 과제가 시작되면서 한 학기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마지막 14주 차는 공식적인 수업 없이 과제 제출만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상 13주 차가 마지막 수업이었다. 계산해 보면 발표와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는 기간은 고작 10주 남짓이었다. 과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시작과 끝에서 빠지는 주차를 고려하면 학기는 더 짧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이 짧은 학기에 이 등록금이라니’ 하는 생각이 새삼 들곤 했다.


너무 바빴고, 놀라웠고, 멘탈을 붙들기 어려웠던 한 학기였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시차가 가장 큰 문제였다. 새벽 1시부터 적게는 3~4시간, 많게는 8시간 가까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수업이 많았다. 처음에는 ‘나는 원래 야행성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작업하다 밤새우는 것과 이틀에 한 번꼴로 외국어로 수업과 발표를 이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자정이 지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곧 이어질 수업을 생각하면 부담과 피로가 몰려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학과 코디네이터에게 메일을 보냈다. 규칙적인 수면이 불가능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 같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적었다. 놀랍게도 학교는 바로 나의 불만을 들어주었다. 불가피하게 한 과목만 그대로였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 서부 시각 오후 4~5시, 동아시아 시각으로는 오전 8~9시로 조정된 것이다. 물론 이 변화가 전적으로 내 메일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학생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즉각 개선하려는 학교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이후 종강까지는 훨씬 나은 컨디션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수업은 조금 나아진 환경에서 그룹으로 진행되어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하지만 학기 말의 복병은 ‘Creative Technology’ 수업이었다. 이 수업에서는 particle photon이라는 아두이노와 비슷한 IoT 디바이스를 이용해 3주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낯선 하드웨어를 다뤄야 했고, 내가 고른 센서를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잦았다. 여기에 와이파이를 통한 데이터 전송, 웹 구현을 위한 P5.js와 자바까지 더해지니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머릿속에 온전히 들어오는 건 절반도 되지 않았다. 툴은 여전히 낯설었고, 이해보다는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가장 버거웠다. 녹화된 수업과 워크숍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 봤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여전히 많았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스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과목은 그룹 프로젝트였다. 각자의 센서를 연결해 데이터가 주고받아지는지 확인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하나의 콘셉트를 잡아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내 짝꿍인 대만 팀원과 영어로 원격 협업을 하는 순간마다 “대면 수업으로도 벅찼을 과제를 원격으로 한다니”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보통 낯선 툴이라도 한국어 자료를 찾으면 참고할 수 있었는데, 이 particle photon은 검색해도 자료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모국어로 물어볼 사람조차 없으니, 모든 과정을 영어로 해결해야 했고 그 어려움은 두 배로 다가왔다.


어떻게 끝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바스크립트에 익숙한 대만 짝꿍이 리드하는 대로 얹혀갔을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과제와 발표는 마칠 수 있었지만, 이해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완성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학기는 내 한계를 시험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흥미로웠지만, 한국에서 혼자 새벽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 그 고립감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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