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유학
좌절의 연속 끝에 첫 학기가 끝났다. 성적을 조회하러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벌써 성적이 떠 있었다. 한국과 달리 A+가 없고 A부터 시작해 B+, C+, D+가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이너스 개념도 처음 봤다. 한국에서는 플러스만 있었던 것 같은데…. 기대보다 나은 결과에 그래도 한숨 돌렸다.
사실 이번 학기 결과물이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주어진 상황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영어로 수업에서 질문도 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점을 교수님들이 조금은 인정해 주신 것 같다.
특히 애증의 스튜디오 수업은 난이도가 역대급이었다. 미국과의 시차로 인해 가장 첫 수업이 새벽 1시에 시작해서 오전 7시까지 진행됐다는 것부터가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어가니까 주체할 수 없는 잠이 쏟아지면서 나머지 한두 시간은 졸음으로 수업을 날리곤 했다. 하필 과제 공지나 그룹수업 공지 등 중요한 내용은 꼭 수업 끝나기 직전에 공지하시는 게 아닌가. 한 학기 내내 이 수업만 없었어도 고통이 덜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수업 시간도 6~7시간으로 제일 길고 학점도 6학점으로 중요도가 3학점에 세 시간 수업하는 다른 수업과는 이미 부담감이 달랐다.
심지어 학기 내내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Multiplayer 게임이었다. 리모트라는 상황과 환경에 이보다 적절한 주제는 없을 것 같다는 건 인정하지만, 나에겐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게임이라면 중학생일 때 테트리스 했던 거 말고는 당최 해본 일이 없는 데다 게임을 하는 거 자체를 즐기는 성향이 아니어서 '하필 게임이 주제라니'라는 저항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수업 내용은 본인이 원하는 게임을 선택하고 게임의 장면을 캡처해서 새로운(실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보는 게 첫 번째 과제였고 그 이후엔 그 게임 안에서 intervention (개입, 조정)을을 통해 게임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과제의 연속이 내겐 이해할 수 없는 수수 깨기에 같았다. 비주얼로 명확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과정과 결과가 뚜렷한 그래픽디자인과 수업과는 달라도 확연히 달랐다. 결과물의 질보다도 사고력과 실험정신을 강조하는 수업 방식이었다는걸 뒤늦게 돌아보니 깨달을 수 있었지만, 수업안에서 모든 과정을 겪고 있는 상태에선 이해도 안 되고 취지도 모르겠고 그저 스트레스일 뿐…. 이건 뭐 편하게 물어 동기도 선생님도 없으니 더더욱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겨우겨우 욱여넣기로 과제를 해냈다. 비판적인 논점을 끌어낼 수 있는 게임을 고르는 것부터가 참 쉽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게임은 One hour One life라는 게임이었는데 아마 그림체가 괴기스러워서인지 끝까지 정을 붙이기 어려웠다. 스튜디오 1의 최종 결과물로는 본인의 INTERVENTION을 담은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직접 게임에 참여해 부조리하거나 어색해 보이는 부분에 개입(인터벤션)하고, 그 과정을 녹화해 다른 게임 이용자들과의 인터렉션을 영상으로 담았다. 구체적으로는 남녀 성 역할이 분명한 게임의 기본 전제조건을 비판하고 기대되는 성 역할에 부응하지 않고 맞대응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수행했다.
스튜디오 1이 끝나고 나머지 반 학기는 스튜디오 2였다. 여기서는 기존에 하던 intervention을 이어서 새로운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과제였다. 여기서 이벤트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 어떤 형식이든 상관없이 짧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괴기스러운 그림체의 게임과 빨리 작별하고 싶던 나로서는, 두 번째 과제 앞에서도 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을 도대체 어떻게 이벤트로 만들어야 할까." 내가 택한 방식은 한국식 관찰 예능이었다. 나는 내가 직접 게임에 참여한 모든것을 기록해 한국식 관찰 예능 프로그램처럼 편집하고, 모션그래픽을 더해 하나의 TV쇼 컨셉으로 동영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에는 한국식 관찰 예능과 비슷한 TV 쇼가 거의 없어, 콘셉트를 설명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최종 결과물은 내가 상상한 ‘관찰 예능’의 느낌을 완전히 담아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모션 그래픽으로 공들인 영상을 완성하고 나니, 나름 그럴듯해 보였다.
이 과제의 마지막 순서는 내가 만든 영상을 트위치로 라이브 상영하는 거였는데 트위치라는 게임 플랫폼도 처음 써보느라 어색했고 최종 과제를 라이브로 송출하느라고 OBS도 처음 배우느라 매우 애를 먹었다. 내 작업은 확실히 비주얼 중심이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작업은 훨씬 비판적이고 실험적인 색채가 강했다. 마지막 과제를 무사히 송출하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알 수 없는 허무함이 같이 몰려왔다. 종강이라고 느끼기엔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낮과 밤이 뒤바뀌고, 고독 속에서 버텨낸 첫 학기가 끝났다. 그러나 모두의 머릿속엔 여전히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다음 학기엔 캠퍼스에 갈 수 있을까?” 코로나는 여전히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