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홍 May 12. 2019

할아버지와 사회과부도

사회과부도에서의 그의 젊음을 찾고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초등학생 때 나는 집에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를 했고, 할머니는 막내 고모의 아기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몇 년 동안 한 달 30일 중 20일을 서울 고모네 집에서 보냈다. 언니는 집안을 먹여 살릴 장녀의 숙명을 등에 업은 채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많이 다녀 깜깜한 저녁이 돼서야 집에 왔다. 그래서 보통 평일 낮 집에는 나와 할아버지, 심심한 둘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삶은 40대 이후 끔찍하게 무료해졌다. 술을 좋아하는 군인이었던 그는 술에 취해 길을 걷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취해서인지,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인지 ' 참 나, 내가 이깟 고철 덩어리 앞에 쓰러진다고? 말도 안 돼'라는 생각으로 벌떡 일어나 사람을 치고 벌벌 떠는 차주에게 '나는 군인이고 무척 건강하여 이 정도로는 하등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이만 가보라'라고 했다고 했다. 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은 너무나 잔인할 정도로 지독하게 찾아왔고, 일주일 뒤 그의 왼쪽 전체에 마비 증상을 보였다. 그 날 이후 그는 물론이고 온 가족이 병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던 할머니와 아빠는 그때부터 굉장히 바쁘고 고단한 삶을 살았다. 할머니는 밤낮없이 미싱 공장을 전전하며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고, 아빠는 평균 10살이 차이 나는 여동생 셋을 먹여 살려야 하는 20대 가장이 되었다. 어린 고모들은 오랜 시간 동안 텅 비어있는 집을 똘똘 뭉쳐 지켜내야 했다.


그 이후 그는 입을 닫아 버렸다고 했다.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했던 그는 그날 이후 절대로 먼저 말을 걸거나 꺼내는 법이 없고, 누가 묻는 말에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족과 자신의 삶을 한 순간에 망쳐버린 자존심 센 그가 택한 참으로 당신 다운 방법이었다.


그래도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가 막내 손녀딸인 나를 끔찍이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나영이 상 받았대요."라고 하면 그는 늘 그게 무슨 상인지 묻지도 않고 난데없이 눈물부터 흘려 사실 그 눈물은 TV를 보며 남몰래 연습한 연기는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그의 표정에서, 아빠 차를 타고 어디라도 갈 때면 여섯 식구인 우리 가족은 뒤에 4명이 타야 했는데 막내라는 이유로 중간에서 몸을 앞으로 쭉 빼고 엉덩이가 반쯤만 걸쳐져 가야만 했던 내가 혹여나 넘어질까 봐 허벅지를 꽉 잡아주었던 그의 악력에서, 나는 지독한 사랑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나의 하교 시간에 맞춰 가끔 마중을 나와 있었다. 천막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내가 아는 채 해주길 기다렸다. 절대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법이 없었다. 참으로 무심한 친절이었다. 나 역시도 그를 닮은 데다 심지어 부끄러움까지 많아 쭈뼛쭈뼛 다가서면, 그때 서야 '줘' 한마디 하며 손을 내밀어 나의 실내화 가방을 가져갔다. 그리고 별다른 말 없이 둘은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하굣길 중 같은 반 남자애를 만나 괜히 내 이름을 부르거나 말이라도 걸면 할아버지는 왕년의 해군다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실내화 가방을 휘둘러 내쫓아 주었다. 나는 그때 얌전한 관종이라 남자애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싫지 않았고, 그중엔 내가 좋아하던 애도 있어 그의 행동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았다. 나이답지 않게 성숙했던 나는 그가 손녀딸에게 스스로 해줄 수 있는 사랑이자 최대한의 애정표현이라 생각하고 이해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보통 빨간펜을 하거나 버디버디를 했고, 그는 보통 TV를 보거나, 사회과부도를 봤다. 가끔 TV 소리가 나지 않을 때 할아버지의 방을 훔쳐보면 그는 의자를 책상을 향해 두지 않고 창밖을 향해 둔 채로 사회과부도를 보고 있었다. 언니가 고학년으로 올라가서 저학년 사회과부도가 필요 없게 되자 그는 버려진 많은 교과서들 중 사회과부도를 집어 들어 그의 책상에 놓았다. 그리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늘 돋보기를 쓰고 그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왜 이렇게 그토록 사회과부도를 열심히 봤는지 그때는 몰랐다. 그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을 그렇게 찾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설사 물어보았더라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던 과묵한 그가 알려줄 리도 만무했다.


나는 그가 사회과부도에서의 그의 젊음을 찾고 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그는 성한 두 발로 그 온 세계를 밟아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 마음을 사회과부도에 보이는 여러 지도들을 보며 불태우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한 때 바다를 항해하며 세계를 누볐던 그에게 한 평짜리 방에서 반쪽짜리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지, 의자에 앉아 그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없다. 그림 속 형형색색으로 묘사된 땅들을 그 얼마나 가보고 싶었을까. 늘 상상뿐이었던 그 광활한 대지를 당신의 두 발로 얼마나 걸어보고 싶었을까.


이제 할아버지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말들이 점점 적어지는지, 더 적은 횟수로 입을 연다. 노화로 인해 몸이 한 층 더 불편해진 그는 이제는 같은 집에 살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집보다 더 좋은 풍경을 가진 곳이지만 창밖을 향해 앉아있을 힘마저 잃은 채 늘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사회과부도에 나오는 나라에서 여행 중인 그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경험하고 밟았던 모든 땅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쏟아내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약간은 재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자랑을 해도 기꺼이 밤을 새워서라도 들어줄 자신이 있다. 무거운 짐이 있다면 함께 들어주고, 그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들이 있으면 쫓아내 주고, 만원인 버스에서는 내 자리까지도 선뜻 내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가 더 많은 나라를 누려볼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주고 힘들거나 쓰러질 때 꼭 안아주고 싶다. 고작 이렇게 그의 다음 생애를 꿈꾸고 상상해보는 것이 내가 지금 그에게 할 수 있는 사랑이자 최대한의 애정 표현임을 할아버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