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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Aug 27. 2023

그때 라디오를 듣던 그 여름밤처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먹고살기 위해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직장인으로서 일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과제가 되었고 하루의 대부분, 내 삶의 대부분이 일에 맞춰 흐르고 있다.


매일 아침잠을 깨기 위한 아메리카노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한 손으론 커피를 후루룩 삼키고 한 손으론 옷매무새를 다듬는다. 신기하게도 출근할 때면 뭐가 그렇게 바쁜지 허둥지둥거리고 항상 뭐를 빼놓아서 집에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빠뜨린 거 없나?, 나 진짜 뭐 빠뜨린 거 없나?’ 그렇게 몇 번을 되묻고도 핸드폰을, 아이디카드를 또는 지갑을 빼먹을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하루를 정신없이 시작하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이제는 쌓인 집안일이 나를 기다린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물건들, 꼭 해야 하는 일, 들여야 하는 시간이 왜 이렇게나 많은 걸까. 나 하나 먹고 일하고 씻고 자는 이 반복적인 일을 해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드는데 도대체 엄마는 어떻게 당신까지 4명을 보살피며 살아올 수 있었던 걸까?


하루가 그렇게 고단하고 삶이 정신없음의 연속이다 보니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자아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감성에 취해 마음이 말랑해지기란 꽤 버겁고 힘들여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가끔씩 서글퍼지는 것은 시간적 여유가 문제라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이젠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게다가 ‘귀찮다’라는 말이 입에 배어 툭하면 귀찮다는 말을 내뱉는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진다고 했던가. 그걸 알면서도 일단 당장 내 몸이 피곤하고 상황이 힘들면 사유나 감성 등의 고차원적인 것은 사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사색을 가지는 것, 그것은 일상을 고군분투하는 우리에게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든 것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면 내가 책과 음악, 영화에 푹 빠져서 생각을 곱씹어보고, 감정이 풍부했고, 공상도 가장 많이 했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 특히 야자 시간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라 하여  학생들의 ‘자율 공부’를 위한 시간이었지만 대개는 강제로 교실에서 자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감수성 풍부하고 꿈 많던 18살 소녀들에게 어스름이 내린 조용한 교실이란 자아가 성장하는 또 다른 세계였다.


6시 석식 시간이 다가오면 눈치 게임이 시작되어 아이들은 뒷문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고 종소리와 함께 4개 반에서 교복치마와 체육복 바지를 함께 입은 요상한 패션의 여학생들이 우다다다 계단을 뛰는 소리가 건물을 흔들었다. 질서를 위해 다음 순서까지 기다려야 되는 다른 4개의 반 학생들은 이미 수백 번은 본 메뉴를 다시 보며 초조하게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석식을 먹고는 매점에서 산 간식을 씹으며 삼삼오오 해가 저물어 가는 운동장을 돌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우리는 하루 12시간은 넘게 같이 있는데도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던 걸까.

어둠이 완전히 내릴 때쯤이면 야자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학교에 울려 퍼진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교실로 향했고 한낮의 열기가 식은 교실은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조용해진 교실에는 사각거리는 필기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 고요하게 퍼졌다.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 산 PMP에 동방신기 뮤직비디오를 잔뜩 담아와서 보는 친구들도 있었고, mp3를 이용해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열어 놓은 창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하얀 커튼이 살포시 펄럭이고 매미 소리가 적당하게 들렸고 풀 내음이 코끝에 와닿았다. 나는 제각각 집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간간이 구경하며 라디오를 듣곤 했다. 다양한 사연을 들으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기도 하고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하던 필기를 멈추고 그 밤의 분위기를 흠뻑 들이켰고, 슬픈 발라드가 나오기라도 하면 비련의 여주인공인 양 창 밖을 바라보며 슬픔에 취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라디오를 끄지 못하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나뭇잎 사이로 서걱거리는 잔잔한 바람을 느끼며 밤의 고요 속에서 이소라의 음악도시를 듣곤 했다. 언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꽃순이들 잘 자라고 클로징 멘트를 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18살의 내 여름밤은 바람과 달빛 아래서 가슴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어른이라는 것으로 자란 나는 일에 찌들고 일상이 지루해져서 웬만한 자극에는 잘 웃지도 않고, 잔잔한 로맨스 영화는 30분도 채 집중하지 못하고 오글거린다는 말로 피하게 되었다. 또한 깊은 고뇌를 부르는 콘텐츠는 일부러 피하며 쉽고 단순한, 머리와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만 반응한다.

게다가 이제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마저 그땐 그랬지 하며 한 마디로 정리하려 할 뿐 추억에 젖어들거나 가슴이 아리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웃을 일도, 눈물이 날 일도 많았고, 사소한 것도 큰 감정으로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18살의 내가 그랬다는 사실이 너무 낯설어질 만큼 모든 것에 무뎌졌다.


비엔나의 쇤브룬궁 뒤편에는 길고 가는 풀로 덮인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을 오르면 쇤브룬궁과 아기자기한 비엔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가 놓여있다.

6월의 어느 해 질 녘, 나는 벤치에 앉아 머리칼을 간질이는 바람을 느끼며 도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풀들이 바람결에 따라 일렁일 때, 언뜻 그때 그 교실에서 창밖을 멍하니 보던 18살의 내가 떠올랐다. 백석의 시에 가슴 시렸고, 호밀밭의 파수꾼에 열광했고, 수업시간에 몰래 보던 귀여니 소설에 설렜고, 고흐의 그림을 배우며 눈물을 흘리던 나는 감수성이 풍부했고, 자라나는 자아에 대해 깊이 고민했었다. 조용히 입을 다문채 머릿속은 늘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고, 음악을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곤 했었다. 그때는 숫자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어렸지만 어쩌면 더 깊고 넓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시간들이 있고, 겪어온 일들이 있는 내가 더 이상 18살의 그 마음 그대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이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또 거기에 솔직해지며 때때로 깊은 생각에도 잠겨보는, 정신과 마음이 뜨겁게 살아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때 그 여름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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