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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Nov 14. 2023

동물인 너의 행복을 위하여


요즘 내 사진첩과 알고리즘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판다, 바오 가족들이다. 우연히 전지적 할부지 시점이라는 사육사 할부지와 푸바오와의 영상을 본 뒤 바오 가족에게 빠져들게 되었다. 은어, 비속어 하나 없이 깨끗한 언어의 할아버지 말이, 그리고 그 말에 귀를 쫑긋거리는 푸바오가 너무 동화 같아서 영상을 보고 있자니 따뜻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특히 업무 특성상 사람에 치이는 게 대부분인 나는 퇴근 후에는 그 어떤 인간 종도 마주치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바오가족들을 보면서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아기 판다 푸바오가 귀여워서 판다에 입문했다면 그다음은 웃음을 짓게 하는 러바오, 사랑이 가득한 아이바오, 최근에는 쌍둥이 아기판다 루이바오, 후이바오까지, 돌아가면서 모든 바오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보는 중이다.

하루종일 바오가족의 영상을 정주행 하다 보니 내 알고리즘엔 온통 바오 가족 영상과 더불어 각종 동물 영상들로 가득 찼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갈비뼈 사자 바람이의 이야기를 보게 되고, 얼마 전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의 이야기도 다시 보게 되었다. 얼룩말 세로의 사연은 귀여운 말로 정성껏 포장했지만 그 뒤에는 결국 동물원의 실태와 인간의 이기가 있었다.


예전에 동물원에 갔다가 모든 동물들이 텅 빈 눈빛과 기운 없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분명 동물 다큐멘터리에서는 초원을 지배하는, 동물의 왕이었는데 내가 실제 마주한 것은 영혼은 없는 몸만 거대한 동물이었다. 야생이 아닌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인간의 눈에 둘러싸인 동물들을 보니 무언가 큰 잘못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절대 가지 않기로 결심했고,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바오 가족을 보며 웃고 있다가도 화면 뒤로 이 판다들이 유리벽으로 세워진  동물원이라는 공간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몰려온다. 판다가 멸종위기종이라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그들의 서식지에 비해 턱없이 좁은 동물원에 갇혀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판다는 야생성이 거의 없고 온순한 맹수로 자랐다. 게다가 판다라는 동물은 중국이 소유권을 가지기 때문에 해외에서 태어났더라도 만 3세가 되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돌아가서 판다는 종의 번식을 위해 인간에 의해 관리된다.


유콘 야생동물 보호구역(Yukon Wildlife Preserve)은 350 에이커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무스, 엘크, 카리부 등 백과사전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곳도 울타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동물원과 다르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와 동물의 보호, 재활 목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동물원보다는 야생동물 보호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워낙 크다 보니 투어차량이나 사람이 다니는 길 쪽으로 동물이 온다면 운 좋게 볼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아 여기가 이 동물의 집이구나!’ 하고 주인 없는 집만 구경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동물원처럼 인위적으로 잘 가꿔진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 그대로 최소한의 시설만 갖추고 있다. 유콘 야생동물 보호구역(Yukon Wildlife Preserve)도 교육과 관광 목적으로 투어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이용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유콘 주는 캐나다의 주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 그렇다 보니 유콘의 거친 자연만큼 유콘 야생동물 보호구역(Yukon Wildlife Preserve)은 되게 소박하고 또 투박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아니, 이런 식으로 대충 만들어 놓는다고?’ 할 수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안내문도 잘 만들어져 있고 튼튼한 철제로 벽을 세워놓은 동물원을 보다가 이곳을 본다면 그저 울타리 하나만 쳐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의 존재 이유는 ‘동물’이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을 위한 것은 최소한만 갖추고, 인간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편의와 동물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실제로 이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개체 중 내가 방문했을 때에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몇 종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어디선가 자신들의 일상을 살고 있었을 테다. 만약 멀리서 나를 봤거나 나의 냄새를 맡았다면 오 인간이 왔네? 하고 시큰둥하게 슬쩍 보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은 바로 무스였다. 무스 구역은 뒤로는 산이 높이 솟아 있고 끝이 안 보이는 들에 가을의 낙엽과 풀이 쌓여 있고 물웅덩이에는 파란 하늘이 반사되고 있었다. 무스의 구역을  지날 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아쉬움에 발걸음을 돌렸는데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나길래 뒤를 돌아보니 화려한 뿔을 자랑하는 무스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며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무스의 실존이 너무 신비로워서 뭐에 씐 듯한 기분이었고, 무스 또한 그런 내가 신기했는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철장을 사이로 무스와 나는 함께 서 있었다. 우리 둘은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내지 않고 한참을 서로 쳐다보았다. 엄청난 덩치와 화려한 뿔과는 달리 무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순수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순간도, 무스도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캐나다에는 거대한 자연 관광지와 야생동물이 많고 그 보호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자연과 야생동물에 대한 꾸준한 홍보와 보호를 위한 노력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지구를 더 나은 곳으로, 모든 종이 공존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동물원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바오 가족의 영상을 클릭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좋아하는 동물을 보고 싶은 마음과 동물원을 소비하면 안 되는 마음 사이에서 늘 고민한다. 당장 모든 동물원을 없애버리고 모든 동물들을 다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현재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이 최대한의 복지를 누릴 수 있기를, 동물들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인간의 유희를 위한 동물원이 아니라 보호와 보존을 위한 보호소의 형태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청주 동물원이 기존의 동물원에서 보호와 공존을 위한 동물원으로 탈바꿈하고 있고 이는 다른 동물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사육사 할부지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과 사랑 가득한 손길에 교감하는 바오 가족들을 보며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그 자체로 사랑받고 행복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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