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한 동생과 평소와 같이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었을 때였다.
어떤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는 나한테 '언니는 이성적인 거 같고...' 하며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작 당사자는 별뜻 없어 보였지만 나는 '이성적'이라는 단어에 멈춰서는 그 찰나에 여러 생각을 떠올렸다.
그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실제로 내가 딱히 이성적이지는 않으니까), 나한테 그 말은 참 듣기 좋은 칭찬이었다.
한 때는 외모 칭찬만큼 기쁘고 즐거운 게 없었다. 살에 대한 어마어마한 집착으로 모두가 말랐다고 했을 때에도 식이와 운동을 하며 스스로를 목졸랐고, 거울을 보며 얼굴과 체형의 세세한 부분을 뜯어보며 내가 못 가진 부분에 대해서 또는 내가 가진 부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우울해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외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고, 칭찬이든 아니든 외형적인 것에 대한 언급 자체가 불편해졌다.
당연히, 아직도 어쩌다 외모 칭찬에 기분이 좋을 때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반응이 훨씬 미지근하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변한 것도 있고, 외적인 것에 쏟는 시간과 에너지가 불필요 하다는 것도 느껴서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들에 조금 덤덤해졌다. 그냥 그런 것들이 나에게 더 이상 별 의미가 없어졌다.
살이 쪄도 건강하고 맛있는 거 먹으니까 괜찮다싶고, 얼굴도 이렇게 태어났고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냥 나를 아끼며 살자 싶다.
동시에 두드러진 변화는 타인을 향한 나의 시선이다.
한 사람(특히 여자)의 외모에서 어디가 예쁘고 어디가 부족하고 그런 것들을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예 누군가의 외모를 그리 세세하게 보지 않는다.
가끔 직장이나 모임에서 분위기상 외모 칭찬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언제나 좋은 말만, 예쁜 곳만 보려고 한다.
되도력이면 그 마저도 줄이려고 한다.
외모에 관한 것은 칭찬이든 단점이든 종국에는 해가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는 칭찬이랍시고 타인의, 외모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대신 나는 나의 성격이나 내면에 대해, 특히 그것이 칭찬일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다른 것에 관한 것일 때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고 마는데 내면에 관한 칭찬은 그 여파가 꽤 오래가는 편이다.
내가 진짜 그런가? 혼자 되물어보며 더욱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다짐하곤 한다.
이제 외형에 관한 것은 잠깐뿐이라고 생각한다. 주름은 생길 수밖에 없고, 외모는 인간의 일부일 뿐이니까.
그런 것들을 붙잡고 있기에는 삶에서 더 가치있는 것들과 중요한 것들이 참 많다.
딱 어떤 계기로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천천히 내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무게있게 변해간다는 걸, 그리고 계속 그렇게 변해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나의 내면이 천천히 성숙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진한 향기를 가진 사람, 함께 하면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