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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샤 Oct 19. 2021

우리 삶의 농도는 짙어지고

조용한 시골 도시에서 자란 우리가 이제 갓 취업을 하고, 화려한 도시의 자유로움과 월급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척 들떠있었다.

20대 후반에 들어섰을 때쯤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3~4년 차에 접어들어서 우리는 직장 생활에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고, 월급이라는 노동의 대가를 주체적으로 쓸 수도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발생한 작은 문제들쯤은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고, 25일에는 한달 동안 가득 채운 장바구니를 체계적으로 결제할 수도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공연을 직접 번 월급으로 예매할 때면, 시골의 소녀들이 오래 열망하던 '차가운 도시의 어른 여자'가 된 느낌이 들어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곤 했다. 현실은 3개월 무이자 할부였지만.

그렇게 푸른 여름 날의 야외 공연은 티비에서나 보며 동경하던 어른의 특권이자 우리가 젊음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 같았다.


5월의 초록 풍경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는 노래, 페스티벌을 알리는 색색의 증표로 채워진 손목과 생맥주, 그리고 돗자리에 한껏 펼쳐진 음식들은 우리의 이 순간이 이보다 더 청춘일 수 없음을 말해주곤 했다.

무대 뒤로 해가 넘어갈 때쯤이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드는 저녁 바람과 잔잔한 음악이 우리를 부드러운 환상에 빠지게 했고, 그렇게 낭만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긴 영화의 가장 강렬한 한 장면처럼 우리의 추억은 그 공기와 분위기를 머금은 채, 한 조각으로 반짝거렸다.


여러 번의 푸른 여름이 지난 뒤, 우리는 아내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회사에서 후배를 여럿 거느린 상사 되었고, 여전히 방황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화는 어느 사이 무게감을 더해가고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은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 진지함으로 채워졌다. 

결정에 있어서는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해야 하는 것들도, 배려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시간은 무심하게도 빠르게 흘러 우리에게 수많은 역할과 변화를 가져왔고 우리는 삐걱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박자를 맞추며 살아가는 중이다.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는 A, 승진을 준비하는 B, 딩크 부부로서의 삶을 그리는 C, 딸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D를 보면서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그림으로 채워질 것이라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그 날, 5월의 태양처럼 강렬하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강물에 비친 햇살처럼 잔잔하게 반짝거리며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열기가 식은 5월의 햇살이 우리를 천천히 지날 때, 우리는 노천 카페에 앉아 느리게 흐르는 강물처럼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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