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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daal Sep 16. 2022

이 마음 닳고 닳아 동그랗게 되었습니다.

[둥근사각형] 예민한 마음에 대처하는 법: (1) 우리 좌회전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줄 알고 살아왔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받은 충격은 마치 생각 없이 넘다 걸린 방지턱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생각하다 생각하다 내 생각의 여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걷잡을 수 없는 곳을 향하기도 한다. 그것은 쉼이 없고 종착지가 없다. 자면서도 생각을 한다.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나는 분명 판단을 포함한 사고라는 걸 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몹시 피곤하고 깨어있으면 매우 피곤하다. 두통이 온다. 타이레놀은 까는 게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졌을까 하면서 또 생각을 한다. 엉킨 실타래를 풀다가 좌절이란 가위를 꺼내어 싹둑 잘라내듯 포기하고 싶은 그게 바로 나의 생각의 회로다.


너는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말을 들을 때면 너는 왜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냐고 반격하고 싶다. 전자는 악의가 없고 후자는 악의가 있다. 나는 머리 서랍을 뒤지고 뒤져서 예민이란 단어 대신  꽤 괜찮은 단어를 찾아냈겠지. 가령, '세심하다', '다정하다', '감성적이다' 와 같은.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이 돌려 말하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 예민함 자가진단으로 대학을 갔다면 나는 서울대 장학생이다.


나는 수많은 것들을 모으는데 그것은 낱말, 상황, 사람들의 표현들처럼 무형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머리 서랍 속에 잘 넣어두었다가 요긴하게 꺼내어 쓴다. 말을 고르고 골라 꽤 괜찮은 단어를 꺼낸다. 대화를 나누다가 꽤 괜찮은 표현들이 들리면 서랍 속에 넣어 둔다.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거 우리 알고 있죠?'


이름을 알고 있고, 몇 번은 만났으며,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대부분의 아는 사람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른다. 물론 그들도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지,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게 기분이 나쁜 일은 아닐지 이런 생각 또한 총알처럼 스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같이 차로 이동 중이었다.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 머릿속 한 켠엔 김기사가 출근해있었다.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직진 차선에 있었기 때문에 김기사는 나에게 어서 대화를 중단하고 친구에게 알리라고 말한다.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화를 무례하지 않게 멈추는 지점을 찾아서, 왜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냐는 핀잔은 피하고, 알아서 잘 가고 있는데 참견하는 것일 가능성은 낮추는 그런 말을 서랍 속에서 찾는다.


"별이,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거 우리 알고 있죠?"


그는 '아, 아, 고마워요.' 하며 부드럽게 차선을 옮겼고 한 동안 우리는 '우리 알고 있죠.'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모든 순간에 있어서 이렇게 사고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단지 나의 사고의 회로는 늘 포드 공장처럼 돌아가고 있고 공장에서 나온 생산물들은 세심하게 선별되어 머리 서랍 속에 저장되어 비교적 손쉽게 꺼내 쓰이는 것이다. '우리'라는 단어는 영어 과외를 할 때 학생들에게 썼던 우선순위 한글 단어이다. '왜 넌 이런 것도 몰라?' '이거 방금 했던 거잖아.' 같은 말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많다. 질책이 가득한 말이 아니라 정말 이걸 왜 모르는지가 궁금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그 아이는 앞으로 질문을 못 하는 아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두려움을 심어주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잖아.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모르는데도 안다고 하는 게 잘못이잖아.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질문들에 큰 재미를 느낀다. ' 그래서 나는 '우리'라는 단어를 꺼낸다. '태웅아, 세상에서 이거 우리만 몰라.'


이렇게 나는, 그리고 나의 예민한 친구들은 조각하듯 단어를 깎아 다듬고 말의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정신의학을 전공한 친구는 세상에서 나 만큼 예민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했고, 외국에 거주할 때 만난 GP는 (1차 병원 의사)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를 hyper sensitive 한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그 말속엔 나의 고단함에 관한 염려와 날카로움에 대한 놀라움이 심어져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이 네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예민함을 모양으로 표현하자면 뾰족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뾰족함을 점으로 치자면 우리는 수많은 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선이 되고 면이 된다. 동그란 애들은 감각하지 못하겠지만, 예민한 우리들은 사람 사이사이 공간 구석구석 공기를 둥글게 만들고 있다. 나는 그런 말과 태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들의 작고 다정한 이야기 하고 싶다. 닳고 닳아서 사실은 동그랗게 된 사각형 마음의 이야기들을.



*둥근사각형은 뾰족하고 예민한 사람들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관한 다정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씨를 헤아리고 대처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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