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자아성찰

by 박관영


I'll rebel against powers and principalities, all the time. Always, I will.


Paul Thomas Anderson


난 종교가 없었을 때도 내면 깊이 죄의식을 수반한 채 종교인처럼 살았고

생전에 지었던 죄에 대해 벌을 받지 않았더라도 죽어서 분명히 벌 받는다는 생각을 날 때부터 깊게 가지고 있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나의 습관은 끝없이 생각하며 매 하루를 보내는 것인데,

딱히 어떤 사건과 계기를 맞닥뜨리지 않아도,

의식주를 해결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자아는 철학적인 주제의 대한 토의와 충돌이 발생하고 다양한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것을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내 자아의 대해서 평생 동안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렇게 남이 봐도 혀를 내두르는, 내가 봐도 굉장히 억압적인 나의 율법을 세우고 신념이라는 신앙 속에서 철학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게 되는데,

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조그만 아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자리하여 대화를 갖는 시간에서 견문과 학술도 갖춰지지 않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도깨비 같은 사내아이에게 세상은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조차도 그런 나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받았던 질문 중 유독 이 질문에만 세상을 향해 답을 주지 못했다.

‘난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난 왜 사는가?’

나 역시도 그들과 함께 질문을 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좋은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확실하게 완성되지 못한 내 자아의 숙명은

그들에게 감명 깊은 하이라이트를 선사하지 못했다.


기실 그 문장에 대해서 깊게 고민한 지 십 수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이유를 만들어 대며 거창하게 과장시키는 것은 남에게 거짓을 구하는 것이다. 내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더 깊이 있게 사색을 해야 하고 더 고통스럽게 구르고 달려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의 세월 동안 ‘여기에 가깝겠구나. 이게 맞겠다. 아 그렇구나.’와 같은 맥락의 감정이 들었더라도 답을 찾은 것만큼의 시원하고 자신감 넘치는 확신은 느끼지 못했다.


온전히, 오롯이, 진실된 ‘나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부터 고백할 것은 어릴 적부터 심도 있게 생각했던 문제다.


‘누가 싸움을 잘한다, 문신이 많다, 폭력적이다, 무섭다.’ 신체에 새겨진 자신을 표현하는 자력과 지역 사회인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전투력을 가진 사람을 마주하였더라도 난 사람을 무서워한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진짜 무서운 건 앞으로 내가 맞닥뜨려야 할 시련이라고 옛날부터 가슴속에 깊게 자리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했다면 이 자리에 서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인생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또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고난과 역경을 굳세게 딛고 일어난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난 사람에 대한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나에게 공포를 느끼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닮고 싶어 했다.


나를 패고 욕하고 못살게 굴어도 상관이 없었다.

목소리가 굵직하고 수염이 났더라도 상대가 어려 보이면 그걸로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격언은 동기부여적 문장으로 먼저 이해를 한 것이 아니라 숫자가 많아도 어린놈은 어린것이라고 이해를 했었던 문장이다.

동물적으로 느끼는 고통은 빨리 겪어버리고 넘어가면 괜찮다. 하지만 영혼이 고통을 느끼고 고생하는 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내하고 이겨내는 것이 나의 훈련이었다.


육탄전을 벌이며 맞서 싸우지 않았다.

난 죄의식이라는 족쇄 때문에 사람에게 진심으로 해를 입힐 수가 없었다.

내 몸에 핏방울이 떨어져도 얼마든지 괜찮다. 다만 나로 인해 타인이 핏방울을 흘리게 된다면 내 목숨을 걸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혈액이 아닌 마음의 상처에서 흘리는 것이어도 말이다.


죄를 지으면 떳떳하게 살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어리숙했던 시절에 짓궂게 쳤던 장난을 받아준 친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주먹을 가볍게 주고받고 욕이 오가고 해도 실은 어느 누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 난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다 괜찮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용서를 빌고,

내가 참고 넘어가서 끝날 문제는 헤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끝맺음은 제대로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의 신념 중 하나인데, 잘못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짚고 가야 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성찰했을 때 진심으로 화가 날 때가 바로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였다.

누구는 돈이 많은 집안이라서, 누구의 형제, 친구라서 참아야 하고 봐줘야 했던 문제들을 마주할 때면 나에게 굉장히 큰 화병과 자괴를 불러일으켰다.

분한 마음에 불을 지펴 죄라는 화염이 마음을 불사 질렀다. 그때만큼은 내가 폭력을 써서 해를 입히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여태 느꼈던 화는 욱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라는 사람은 짜증에 둔감했다. 짜증이 나고 욱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라 쉽게 가라앉았고,

여태 인생에 치고받고 싸우는 와중에도 내가 상대를 향해 느꼈던 감정은 폭력으로부터 깨어난 야생성이 아니라 이 순간이 지나면 꼭 사과해야겠다는 미안함이었다.


결론은 피부에서 그치고 마는 화가 아니라 내면까지 뚫고 들어와 영혼을 분노케 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언행으로 얻은 상처와, 모순적인 사람들이 저지른 만행, 누군가가 도모한 부당한 일을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당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싸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싸울 수 있었는가. 싸우지 못했다.


좁디좁은 고향이란 세상에서 어렸을 때부터 겪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실은 현재 내가 속해있는 집단 또한 마찬가지로 이런 일들이 즐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리고 오늘날 전반적인 사회가 그렇다.

화가 내재된 채로 살아가는 삶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삶이다.


어느 날 나와 정말 잘 지내는 형이 말해줬다. 각자의 삶에서 이유를 품고 온 자들이 모인 이 집단에서만큼은 합법적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고. 그렇기에 각자의 야생성을 가진 기질이 사나운 사람들끼리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고. 하지만 넌(본인) 기질이 사나운데 변두리 주변 사람들의 예술적 영향을 받아서 연약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난 내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지천에 머무르는 것들로 족쇄를 채웠다. 운동하고 책 읽고 글을 쓰며 음악과 함께 명상하였다. 내 삶 속의 달콤한 낙으로 달달함을 충전하여 안 좋은 감정들을 진정시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로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질 수 도 있다. 나의 분노와 광기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나를 증명하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난 싸우고 싶단 뜻이다. 나의 철칙에서 위반되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싸우는 것이 아닌, 내가 가진 예술로써 시위를 하고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시간, 난 이제야 세상에 그동안 답변하지 못했던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았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참아왔다.

나의 유일한 군인인 아버지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난 온몸을 다해 밀어붙이며 세상을 향해 시위하는 시인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혼잣말을 많이 할 것이고 노래하고 읽을 것이며 멈추지 않고 쓸 것이다.

그렇게 공부하고 필드에서 뛰고 구르고 헤엄치며 내 자리에서 싸울 준비를 해 나갈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믿음을 더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저항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 글은 내 가슴을 지겹게 울렸던 선배들의 한 마디들이 담겨있다.

같은 하늘 아래에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른다.


결코 잊히지 않는 시련 속에서 곡소리와 함께 구슬땀을 흘렸던,

앞으로도 그들과 미래를 함께 할 생각에 설레어진다.



정제되지 않고 온전히 나를 담은 글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가미되지 않은 날 것 그 자체의 모습이지만, 벌거벗은 몸이 그다지 부끄럽지만은 않다.

실은 인간의 모습을 갖춘 내가 아닌

원래 내 본질 자체의 모습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나도 몰랐던 나의 진실된 모습을 이제야 마주할 줄이야.

평생 동안 나를 모르고 살다 죽을뻔했다는 사실에 오금에 힘이 풀린다.


내 낯짝을 보아하니 죄를 많이 지었다.

내가 사람 눈동자를 못 마주치고 있네.

난 알면 알수록 고쳐야 할게 많다.

진실되게 고백하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