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도서지역 귀화식물, 자연 vs 인간의 영향
섬의 생태계를 연구하면 ‘도서생물지리학’이라는 이론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1967년 맥아더와 윌슨이 제안한 이 이론은 간단합니다. “섬이 클수록, 육지에서 가까울수록 더 많은 생물종이 살아간다.” 바람과 물살, 새들이 씨앗을 옮기는 자연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우아한 공식이죠.
그런데 전라남도 도서지역 241곳의 귀화식물을 분석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 고전 이론이 예상보다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보는 섬의 외래종
연구진이 유인도 47곳과 무인도 194곳을 조사한 결과, 30과 134종의 귀화식물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널리 퍼진 식물은 소리쟁이로 141개 섬에서 발견됐고, 개망초(87곳), 방가지똥(83곳)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섬 하나당 평균 귀화식물 종 수를 보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 유인도: 평균 20.6종
* 무인도: 평균 3.7종
가장 많은 귀화식물이 발견된 곳은 여수시 금오도로 59종이었고, 흑산도(49종), 외나로도(48종), 임자도(45종)가 뒤를 이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난 패턴
도서생물지리학 이론대로라면 섬의 크기, 육지로부터의 거리, 해발고도가 모두 귀화식물 분포와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분석 결과는 달랐습니다.
유인도에서:
* 섬의 크기와 귀화율은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r=0.412, p <0.01)
* 육지로부터의 거리, 해발고도는 상관성 없음
무인도에서:
* 모든 물리적 요소와 상관성 없음
흥미롭게도 자생식물은 다른 패턴을 보였습니다. 유인도든 무인도든 섬의 크기와 해발고도가 높을수록 자생식물 종 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육지로부터의 거리는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인간이라는 변수
이 의외의 결과는 무엇을 말할까요? 연구진은 “자연적 요소보다 인문사회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라고 해석합니다.
서해와 남해 도서지역을 비교하면 이 차이가 더 명확해집니다:
* 서해 도서: 귀화율 5.92% (유인도 8.39%)
* 남해 도서: 귀화율 4.96% (유인도 5.80%)
서해 도서들은 상대적으로 평평하고 고도가 낮아 경작지, 염전, 양식장 등 대규모 토지 간섭이 많았습니다. 반면 남해 도서들은 평균 해발고도가 380.8m로 산지 지형이 많았죠.
법정 생태계 교란종의 경고
연구에서는 8종의 법정 생태계 교란종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널리 퍼진 애기수영은 14곳에서 발견됐고, 서양금혼초(10곳), 돼지풀(8곳)이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곳은 흑산도입니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임에도 4종의 교란종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관광객 왕래가 많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흥미로운 건 지역별 분포 차이입니다. 서양금혼초는 주로 신안군 북쪽 서해 도서에, 애기수영과 돼지풀은 남해 도서 전역에 걸쳐 분포했습니다.
섬, 외래종 연구의 자연실험실
연구진은 도서지역의 특성에 주목합니다. 전체 섬의 80.8%인 156곳에서 10종 이하의 귀화식물만 발견됐습니다. 육지에 비해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의미입니다.
섬은 공간적 경계가 명확해 외래종 관리의 ‘실험실’이 될 수 있습니다. 체계적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면, 사후 모니터링도 육지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죠.
다만 48곳(19.9%)의 무인도에서는 귀화식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신안군, 완도군, 영광군의 작은 무인도로, 면적이 작고 해발고도가 낮아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들입니다.
시사점
이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섬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관리하려면 자연법칙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의 왕래, 경작 활동, 관광 개발 같은 인간 활동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전라남도 도서지역의 귀화식물 분포는 “자연의 섬”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하는 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육지로부터의 물리적 거리보다, 사람들과의 연결 정도가 더 중요했던 것이죠.
서식지가 제한적인 도서지역은 외래종에 특히 취약합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관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관리 전략은 고전적 생태학 이론만이 아니라, 해당 섬과 육지의 관계, 토지 이용 방식까지 포괄해야 효과적일 것입니다.
* 원고의 이미지는 AI로 만들어졌습니다.
* 출처. 김현희, 김다빈, 전철현, 김찬수, & 공우석. (2017). 전라남도 도서지역 귀화식물의 도서생물지리학적 특성. 환경영향평가, 26(4), 272-289. https://doi.org/10.14249/eia.2017.26.4.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