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들이 품은 큰 생물다양성: 전남 남해안 도서의 식물 이야기
섬은 왜 특별한가
전라남도 남해안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다. 진도, 완도, 고흥, 여수 해역에만 약 1,116개의 섬이 존재하는데, 이 중 유인도는 15.5%인 173곳에 불과하고 나머지 943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이러한 섬들은 단순히 바다 위에 떠 있는 땅덩어리가 아니라, 독특한 생태계를 품고 있는 ‘자연의 실험실’이다.
도서생물지리학의 고전 이론(MacArthur and Wilson, 1967)에 따르면, 섬의 생물다양성은 육지로부터의 거리와 섬의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육지에 가까울수록, 섬이 클수록 더 많은 종이 서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남 남해안 도서들을 조사한 결과, 이 고전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흥미로운 현상들이 발견되었다.
1,940종의 식물이 만드는 도서 식물지도
연구팀이 유인도 15곳과 무인도 60곳을 조사한 결과, 총 180과 1,940종의 관속식물이 확인되었다. 이 중 나무나 관목 같은 목본류가 584종(30.1%)을 차지했다. 섬마다 평균 222종의 식물이 자라지만, 유인도는 평균 591종, 무인도는 평균 129종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가장 널리 분포하는 식물은 곰솔(Pinus thunbergii)과 사스레피나무(Eurya japonica)로, 조사 대상 75개 섬 중 71곳에서 발견되었다. 반면 전체 식물종의 68%는 7곳 이하의 제한된 섬에서만 자란다. 특히 474종(24.4%)은 단 한 곳의 섬에서만 기록되었다.
예상을 깨는 발견: 작은 섬의 큰 보물
이론적으로는 크고 육지에 가까운 섬일수록 더 많은 식물이 서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조사 결과는 달랐다.
여서도의 역설: 여서도는 면적이 2.51 km²에 불과하고 육지에서 46.4km나 떨어진 작은 섬이다. 반면 소안도는 면적이 23.16 km²로 훨씬 크고, 육지에서의 거리도 13.6km로 훨씬 가깝다. 이론대로라면 소안도가 더 많은 식물종을 가져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서도가 513종, 소안도가 389종으로 여서도에 더 많은 종이 서식했다.
손죽도와 소거문도: 가장 주목할 만한 섬은 여수시의 손죽도(2.9 km²)와 소거문도(0.14 km²)다. 두 섬은 1.4km 떨어진 작은 유인도지만, 면적 대비 멸종위기종과 특정식물의 분포가 다른 섬들보다 현저히 많았다. 손죽도에는 멸종위기종 10종, 위기종 9종이 서식하는데, 이는 평균(각각 5.5종, 4.2종)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소거문도 역시 멸종위기종 7종, 위기종 8종이 확인되었다.
왜 작은 섬에 더 많은 희귀식물이?
작은 섬에 희귀식물이 많은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질과 지형의 다양성: 손죽도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과 화강암이 분포하며, 급경사와 완만한 사빈해안이 공존한다. 이러한 지형적 다양성이 식물들에게 다양한 서식 공간을 제공한다.
인위적 간섭의 부재: 작고 외딴섬일수록 사람의 접근이 어렵다. 특히 백야도(0.06 km², 594종)처럼 무인도임에도 유인도보다 많은 식물이 서식하는 경우도 있다.
섬의 자연사: 약 1만 년 전 홀로세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육지와 분리되었던 섬들은, 당시 육지에서 유입된 다양한 식물들이 섬의 국지적 환경에 적응하며 독특한 식물상을 형성했다.
금오도: 다양성의 메카
여수시 금오도는 면적 27 km²로 연구 대상 중 큰 섬은 아니지만, 157과 1,083종으로 가장 많은 식물이 확인되었다.
금오도의 식물다양성이 높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금오열도의 중심으로 주변에 많은 섬들과 연결되어 식물 유전자 교류가 활발했다. 둘째, 약 2만 년 전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낮아져 주변 섬들과 연륙 되었다가 다시 분리되면서 다양한 종이 정착했다. 셋째, 대부산(382m), 옥녀봉(261m) 등 다양한 지형이 미기후 환경을 만들어냈다. 넷째, 1448년부터 황장봉산(조선 초기 숲 관리와 보호 정책)으로 지정되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고,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생태계가 보전되었다.
그러나 금오도는 양면성을 가진다. 육지와의 교류가 잦고 약 1,60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도로망이 발달해, 귀화식물 60종과 생태계 교란종도 가장 많이 분포한다.
기후변화가 주는 경고
일부 섬에는 추운 기후에 서식하는 설앵초(소록도)나 눈향나무(거금도, 거문도, 하조도)가 발견되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이들의 분포역은 급속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문주란 같은 난대성 식물은 분포역이 확장될 수 있다.
섬은 면적이 작고 고립되어 있어, 사소한 환경 변화에도 생태계 전체가 급격히 변할 수 있다. 전체 식물종의 69%가 7곳 이하의 제한된 섬에만 분포한다는 사실은, 기후변화나 인위적 교란이 한 섬에 미치면 그 종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전을 위한 제언
연구팀은 손죽도, 소거문도와 주변 도서들에 대한 정밀 조사와 관리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면적이 작아 기후변화나 외래종 유입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서 생물다양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단순히 거리와 크기가 아니라, 해발고도, 지질, 지형, 미기후, 자연사, 역사적 배경, 인위적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전남 남해안의 작은 섬들은 단순한 땅덩어리가 아니다. 각 섬은 고유한 식물상을 품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보물들이다. 기후변화와 개발 압력 속에서 이러한 도서 생태계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원고의 이미지는 AI로 만들어졌습니다.
* 출처. 김현희, 김다빈, 원현규, 김찬수, & 공우석. (2016). 전라남도 남해안 도서식물상의 도서생물지리학적 특성. Journal of Climate Change Research, 7(2), 143-155. http://dx.doi.org/10.15531/KSCCR.2016.7.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