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는 갯벌의 세계
작가의 말. 이 글은 갯벌을 도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존재론적으로 바라보는 생태철학적 전환을 제안합니다. 갯벌생태학자와 생태철학자의 대화 형식으로 총 3화로 나누어서 정리했습니다.
“저기, 저 회색빛 펼쳐진 공간을 보면 무엇이 보이십니까?”
생태철학자가 물었다. 갯벌생태학자는 잠시 망원경을 내려놓고 답했다.
“글쎄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저 진흙 바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만 마리 저서생물의 집이 보입니다. 물이 빠질 때마다 드러나는 생명의 무대가 보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갯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철학자의 질문에 생태학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앎의 문제는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갯벌 면적은 2,443.31㎢다. 2018년 2,482.00㎢에서 5년 사이 38.69㎢가 줄어들었다. 서해안에 전체 면적의 83.9%인 2,050.98㎢가 분포한다. 이 수치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히 면적의 감소인가, 아니면 존재 방식의 축소인가.
“2021년 7월 26일, 우리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서천, 고창, 신안, 보성-순천 갯벌이 ‘지구상의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중요한 서식지’로 인정받은 것이지요.”
생태학자가 덧붙였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갯벌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갯벌을 왜 보전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유용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갯벌 그 자체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인가.”
철학자가 응답했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우리 갯벌은 약 1,300만 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연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승용차 11만 대가 배출하는 양입니다. 2019년 해양수산부 조사에서는 갯벌의 생태계서비스 가치를 연간 17조 8,121억 원으로 추산했습니다.”
“놀라운 수치입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말을 이었다.
“이러한 도구적 가치 평가가 갯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일까요? 갯벌은 인간을 위한 ‘서비스 제공자’로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갯벌은 육지도 바다도 아닌 경계에 존재한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이 리듬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갯벌은 지질학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퇴적층이며, 생태학적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봐야 합니다.”
생태학자가 조용히 말했다.
“갯벌 표면 1제곱미터당 수만 마리의 저서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갯지렁이, 조개류, 게류… 이들은 갯벌 생태계의 근간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먹이로 삼는 철새들. 뉴질랜드에서 알래스카까지 이동하는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우리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삼습니다.”
“그렇다면 갯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철학자가 다시 물었다.
“과학적 측정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면적, 퇴적률, 생물 개체 수, 탄소 흡수량. 이것들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갯벌을 직접 걸으며 발아래 펼쳐진 촉감을 느끼고, 짠 바람 냄새를 맡고,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갯벌을 압니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 갯벌을 바라보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대상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갯벌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갯벌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
“다음 만남에서는 갯벌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생태학자가 제안했다. 철학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갯벌을 응시했다. 저 회색빛 공간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었다.
* 메인 이미지는 인공지능 이미지입니다.
참고문헌
1. 해양수산부 (2023). 2023년 전국 갯벌면적 조사 결과. 해양환경정보포털
2. 외교부 (2021). ‘한국의 갯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보도자료 21-533
3. Kim, J. S. et al. (2021). Carbon storage and accumulation rates in Korean tidal flats. 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4. 해양수산부 (2021). 우리 갯벌의 생태계서비스 가치.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