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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 수첩 Apr 23. 2020

[송호준] 예술가를 코스프레하는 (미디어)아티스트

2014. 아트스펙트럼

예술가를 코스프레하는 (미디어)아티스트 송호준

 

2013년 4월 19일. 송호준의 작은 인공위성이 우주를 향해 쏘아졌다. 2008년 시작해서 만 5년 만이었다. 토탈미술관에서의 <인공위성과 삽겹살>라는 소박한 <오픈소스 인공위성 프로젝트>의 런칭 파티를 할 때만 하더라도, 이 (어이없는) 프로젝트가 실제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루어졌고,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시점에서도 미술계는 그의 이 (무모한) 도전과 성공(?)에 시종일관 조용했다. 정작 반응은 일베에서 먼저 터졌다. 다음으로 라디오스타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야 미술계도 슬금슬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계는 그렇게 더뎠고, 그의 작업을 ‘예술’로 불러야하는 것인지 과학이나 기술로 간주해야 하는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예술가’ 송호준은 점점 유명해지고 있었다.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차공학부를 졸업하고 KAIST 공학부 대학원을 수료한 제대로 된 공대생이었던 송호준은 언제나 자신을 ‘예술가 송호준’으로 소개한다. ‘미술계와 예술가들은 정말 재미가 없어요. 상상력도 부족한 거 같고요’라는 말은 밥 먹듯이 하면서도 굳이 ‘예술가’라는 타이틀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술계가 재미없다면 떠나면 될 것을 그 안에서 버티며 ‘예술가’라는 타이틀에 방점을 찍는다.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송호준의 작업이 왜 예술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그가 왜 ‘예술가’라는 단어에 집착하는지를 살펴보는 데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미술계에 아무 연고도 없었던 그의 작업이 미술계 안에서 회자되는 데에는 ‘미디어아트’의 유행이 큰 몫을 했다. 예술과 기술의 접목,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 사람들이 관심이 높아졌다. 공대에서는 별 관심도 끌지 못했던 간단한 프로그램이나 요상한 기계장치들에 미디어아트라는 타이틀이 붙어지고, 전시에 불려 다니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미술계가 쉽게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뭔가 명확하게 설명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마 모호하게 의미만 부여하면, ‘예술’로 인정되는 미술계의 분위기가 송호준에게는 불편했다고 한다. 

송호준의 작업은 크게 OSSI 프로젝트와 그리고 그 외의 작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OSSI 이외의 다른 작업은 대체로 미디어아트라는 장르에 잘 부합되어 보이면서도, 약간의 공대적 유머러스함이 특징처럼 담겨있었다. 2006년 구형 아케이드 게임기의 인터페이스를 차용하여 화면에 하트가 ‘뿅뿅’ 날리는 인터렉티브 작품 <뿅 뿅 ppyong ppyong>이나, 2007년 제작한 <Elly, UAVs and Hyperbolic Geometry>와 같은 작업은 센서를 사용하여 관객에 반응하는 전형적인 인터렉티브 작업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대출신이고, 기계나 컴퓨터에 친한 그로서는 이런 요상한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재미 삼아 만든 장치들을 ‘미디어아트’라며 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예술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이런 작업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신기한 기술들을 사용했던 ‘뾰롱뾰롱’한 작업이었고,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그 안에서 ‘미디어아트가 이런 것은 아니다’라는 의구심과 갈증을 느껴왔다고 했다.


송호준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Integrating> 전시에서 소개되었던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프로토타입 1. The Strongest Weapon in the World prototype 1. (a.k.a Weapons of Mass Happiness-WMH>였다. 이라크 전쟁의 명목이었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에 맞서기 위해서 제작했다는 이 작품은 200kg 넘는 육중한 몸체의 이 쇳덩어리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사랑과 평화에 관한 말들이 영수증 종이 위에 프린트되어 나오도록 제작되었다. 2010년 두 번째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I Love You> 에서는 관객의 퍼포먼스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된다. 전시장에 마련된 안내문에 따라 관객이 해머로 100kg의 쇳덩이를 내려치면, 내장된 센서와 오디오 모듈에 의해서 ‘I love you’ 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 작업이 미술계로부터 좀 더 호의적인 반응을 받았던 것은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가 어느 정도 현대미술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를 은유적으로 차용하면서 ‘예술인 척’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사능 보석_우라늄 목걸이 Radiation Jewelry_Uranium Necklace>

이처럼 송호준의 작업은 세상과 사회적 이슈들에 닿아 있지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툭 내던지는 농담 같은 이런 스타일은 <방사능 보석_우라늄 목걸이 Radiation Jewelry_Uranium Necklace>(2010)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람들이 만일 자살하기 전에 죽음을 맛본다면 자살률이 줄지도 모른다는 발상에서 출발하여 우라늄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이없는 발상은 아마존에서 우라늄 원석을 주문하여 받고, 그것을 세팅하는 나름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서 구현하였다. 그리고 이 목걸이는 이베이에 10억 원에 올렸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만든 ‘우라늄 목걸이’라는 작품(오브제) 자체라기보다는 이를 통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이다. 우라늄 원석을 구매하는 과정, 죽기 전에 죽음을 맛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생각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시스템과 구조에 대한 모습과 그에 대한 언급들은 그의 작업이 그저 치기어린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작업으로서 의미를 갖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송호준의 작업이 흥미로운 점은 그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현란하게 보여주려하지 않는데 있다. 오히려 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힘은 ‘예술’로 위장한 채 예상치 못했던 지점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상상력과 질문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연된 문화와 기술, 소비 따위를 비틀어보게 하는 질문. 이는 분명, 미디어아트가 노리는 지점이 기술, 즉 테크놀로지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에 대한 또 다른 반증이고, 송호준의 작업이 지향하고 있는 지점이고, 우리가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다.


검색창에 송호준을 치면 관련 기사와 인터뷰, 블로거들의 글과 동영상 등 무수히 많은 자료가 나올 정도로 송호준을 대중에게 알리게 되었던 계기가 된 프로젝트가 바로 OSSI이다. 어쩌면 요즘 송호준은 백남준 이후 단기간에 가장 많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무수한 곡해와 오해, 포장으로 그의 작업의 의도는 꽤 심각하게 오도되었다. ‘꿈과 희망의 전도사’,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역경을 딛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젊은 청년’이라는 수식어에 대중적인 인기(?)로 인해 정작 그가 OSSI 프로젝트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많이 가려졌다. 게다가 사람들은 예술가들은 대체로 그럴듯한 시나리오 안에서 작동하는 듯 보이게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실제로 인공위성을 만들어서 우주에 쏘아 올린 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난감해했다. 그는 과학자가 괴짜 천재가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미술계는 여전히 그를 ‘예술가’로, 그의 작업을 ‘미디어아트’로 언급하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송호준이 미디어아트와 예술(계)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풀고,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효과적인 우회로였다.


OSSI 인공위성

가로, 세로, 높이 10cm, 무게 1kg의 정육면체 큐브. 이 작은 인공위성을 위해 송호준은 5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고, 2억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을 써버렸다. 시작은 단순했다. 인공위성 업체에서 일하다가 관심이 생겼고, 인공위성을 띄워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리고 국가나 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공위성과 같은 프로젝트들을 개인이 하게 되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로켓 임대비 견적을 내보니 1억 정도였다. (그의 말을 빌자면) 생각보다 저렴했다. 그렇게 엄청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영화처럼 프랑스의 인공위성발사대행업체인 노바나노의 도움으로 로켓을 임대하게 되면서, 허무맹랑하게만 들렸던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OSSI 프로젝트를 주목하는 것은 한 개인이 오픈 소스로 인공위성을 쏘았다는 한 개인의 성공담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구조, 시스템, 권력과 다양한 문제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담론들은 그동안의 인터렉티브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다루지 못했던 이슈들을 다룬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OSSI 프로젝트는 과학기술 프로젝트가 아닌 성공적인 미디어아트 프로젝트의 사례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OSSI 프로젝트는 지금껏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우주와 첨단(혹은 극한) 기술들에 대해 질문한다. 우주는 누구의 것이며, 인공위성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우주에 물체를 쏘아 올리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나아가 이 같은 첨단 기술들은 과연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인가. 송호준이라는 ‘예술가’가 자신의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에 발사한다는 이야기가 어이없게 들렸다면, 그것은 그러한 기술이 개인에 의해서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 그리고 우주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첨단과학기술들은 상당수 국가나 기관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실들은 종종 은폐되고 있지만, 일상에서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OSSI 프로젝트는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균열을 만들어 낸다.

또한 OSSI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한 로켓 임대비 1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 만장을 팔겠다는 발상은 국가 주도형의 기술과 프로젝트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익명의 다수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실제로 송호준의 인공위성은 인터넷을 뒤지고, 국내외 인공위성 학회를 돌아다니면서 얻은 지식과 기술로 만들어졌다. 리서치 과정에서 실행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지했고, 많은 ‘일반’ 전문가들이 그와 기술과 지식을 공유했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렇게 ‘함께 하여’ 가능했다. 그의 성공담(?) 뒤에 숨겨진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이 어쩌면 이 유쾌한 성공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OSSI 프로젝트에는 이외에도 다양한 이슈들이 존재한다. ‘과학은 환상이다 Science is Fantasy’라는 그의 모토처럼, 과학과 기술을 둘러싼 많은 허상과 국가 권력의 관계, 예술을 둘러싼 모호한 아우라, 예술계의 암묵적인 그들만의 시스템 등등. 지난 5년간 OSSI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자료들과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동안 송호준은 이런 내용들을 크고 작은 전시들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일민미술관 갈라파고스 전시 전경

2013년 일민미술관에서 있었던 <갈라파고스> 전시에서 그동안 만들었던 비디오 영상들의 일부를 소개했고, 2011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있었던 <Labour of Love, Revisited>에서는 실제로 그의 인공위성에 쓰였던 재료들이 소개되었었다. 이외에도 홈페이지를 통해서 매뉴얼 북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적 정보들을 공유했고, 각종 학회나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서 OSSI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던 이유들을 설명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위성이 실제로 발사되었을 때, 이 모든 과정들은 사라지고, 그저 ‘인공위성을 쏜 특이한 개인’으로의 송호준이 남았다.


그의 작업이 한때 흥미를 끌었던 이벤트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예술가’ 송호준의 OSSI 프로젝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자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물론 OSSI 프로젝트가 개인이 인공위성을 쏘게 하기 위한 메뉴얼 북이 아닌 이상 4테라 바이트 가량이 되는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할 의무도 없고, 무용담처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이야기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필요도 없다. 오히려 5년 동안 진행된 이 장기프로젝트 안에서 어떤 것들을 읽어내고, 풀어내야 하는지.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새로운 질문들을 던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할 때일 것이다.


버릇처럼 송호준은 예술계의 무감각한 반응에 대해서 불평했다. 예술이라고 하면 그리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로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예술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예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증폭시키기 충분했다. 자신을 ‘예술가’로 코스프레함으로써 견고해 보이기만 했던 시스템들에 균열을 낼 수 있었다. 


송호준의 예술가 코스프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빈 말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우주에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예술가’ 송호준의 OSSI 이야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데이터와 경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그의 ‘예술’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2014년 4월 19일은 OSSI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은 날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OSSI 프로젝트가 시작된 날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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