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Around the Clock, 노암갤러리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멀쩡한 내 방이 있었는데도, 나는 내 방 구석 어딘가에 보자기와 이불 같은 것으로 얼기설기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 나만의 이야기를 가득 담았다. 나의 보물들과 인형친구들, 장난감들이 꼬깃꼬깃 숨겨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작고 초라한 귀퉁이 천막집을 더 닮았던 것 같지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행복했으며, 편안했다. 아마 그래서 더욱 기억에 생생한지도 모르겠다. 일곱 살 언저리쯤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일곱 살 꼬맹이의 아지트였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은신처. 그렇게 소중했던 나만의 공간이었건만 살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정문경의 <요새 Fort>은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아지트를 다시 끌어내었다.
물론 정문경의 <요새 Fort>는 나의 아지트와는 다르다. 갖가지 옷으로 야무지게 만들어진 텐트형의 조형물은 오래 전 나의 아지트를 닮아 있는 것 같지만, 작가는 이 공간을 아지트가 아니라 ‘요새’라고 부른다. 하지만 요새, 즉 Fort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시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정문경의 <Fort>는 요새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설퍼 보인다. 그런데 그 어설픔이 자꾸 시선을 잡는다.
작가는 ‘요새’라는 개념이 단순히 방어나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켜 가두는 수단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Fort>는 옷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세상과의 격리도, 단절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옷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일상과 긴밀하게 닿아 있는 것이다. 개인의 옷은 개인의 취향은 물론, 각각의 개인의 사사로운 추억과 기억, 나아가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특성까지도 반영한다. 때문에 ‘옷’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더위와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적인 의미를 훨씬 넘어서 훨씬 복잡한 의미의 층위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예술가들이 예술작품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개성을 담지 하는 소재로 옷을 종종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여기에서 정문경은 옷의 안과 밖을 뒤집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옷을 오리고 붙이면서 일반적인 옷의 기능성이나 사회적 의미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옷이 아닌 안과 밖이 뒤집혀진, 오려지고 붙여지고, 연결된 옷. 그 옷은 이미 작가의 손에 들어왔던 처음의 그 옷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정문경은 요새가 보호막이자 단절을 의미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Fort> 안에서는 단절이 아닌 관계망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서면 나는 혼자일 수 없다. 이미 요새를 이루고 있는 옷들의 이야기, 옷 주인들의 이야기가 ‘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함께 연결되어 있고, 때문에 들으려 하지 않아도 옷 ‘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옷의 주인들과 연결된다. 오래전 나의 아지트가 나만의 공간이었다면, 정문경의 요새는 그렇게 우리들의 아지트가 된다.
이렇게 옷의 안과 밖. 정확하게는 안으로부터의 시선과 밖으로부터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작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길로 접어든다. 사실 안과 밖, 표면과 이면은 정문경 작가에게 새로운 키워드는 아니다. 인사미술공간 전시에서 선보였던 안과 밖이 뒤집힌 거대한 곰돌이 푸(Pooh) 인형작업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작가에게 안과 밖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되었다. 안과 밖이 뒤집어지면서 귀여운 캐릭터 인형들이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고, 그 인형들이 배치되어 있는 공간까지 어색하게 만들었다면, 이전 전시에서 보여 졌던 뒤집혀진 캐릭터 인형과는 달리, 이야기가 ‘옷’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게 되면서 단순히 낯설게 하기를 넘어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출발된 집단에게로 이어진다. 작가는 뒤집어진 옷은 옷의 내부에서 바라볼 때 가면의 이면과 닮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뒤집어진 옷은 표면이자 이면이고, 오려지고 붙여져 서로 연결된 개인들의 옷의 접합은 인간관계의 망을 닮아 있기에 함께 이어진 옷은 개인을 넘어 집단 혹은 사람들의 관계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정문경의 <Fort> 안으로 들어가 보자. 보호막이자 안전막인 요새 안에는 작가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옷들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작가는 요새를 만드는데 쓰인 옷들을 꽤나 오랫동안 모아왔다고 했다. 부모님의 옷은 물론, 형제, 친구들까지 그녀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의 망이 옷들을 통해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옷을 주었던 친구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이의 옷도 자연스럽게 정문경의 옷 컬렉션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단순히 옷을 모은 것이 아닌, 기억과 추억, 일상과 관계를 모은 것이 되었다.
이번 전시 <Around the Clock>에서 소개된 또 하나의 작업 <Rain Drop> 역시 비슷한 맥락에 닿아있다. 옷으로 만들어진 우산을 펼치면, 우산 안에는 마치 빗줄기가 내리는 것처럼 옷의 소매들이 가득 차 있다. 알록달록, 스트라이프의 총천연색의 긴팔 옷자락 빗줄기. 비를 맞는 대신 그 안에서 서면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이 소곤소곤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비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우산,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요새. 이처럼 우산도 요새도 사람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외부로부터의 보호라는 것이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외부로 나가기 위한 잠정적, 혹은 일시적인 단절이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가 있기에 외부로부터의 단절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문경의 설치작업은 일상으로 파고들어 관객으로부터의 잠정적인 휴식의 공간, 일시적인 단절의 공간을 제공한다. 작가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일시적인 피난처이다. 잠시 상상에 빠져 일상을 잊어도 좋다.
흥미로운 지점은 전체 작업 과정에서 정문경이라는 작가의 위치와 역할이다. 그녀의 사람들로 만들어진 이 ‘요새’의 공간에 정작 그녀의 이야기는 빠져있다는 점이다. <Fort> 안에 정문경은 없다. 오히려 그녀는 과정상에 존재한다. 지인들로부터 옷은 수거하고, 종류별로 색깔별로 분류하고, 그 옷을 깨끗하게 빨아 빳빳하게 다림질 하는 과정, 그리고 마치 지도를 그리듯 옷과 옷을 연결하고 짜 맞추는 과정에서만 작가는 존재한다. 작가는 하나하나의 옷에 담긴 이야기들이 모여 요새가 되어가는 과정 안에만 있다.
그렇게 요새가 만들어지면, 작가의 존재는 슬며시 사라진다.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한 땀 한 땀 옷들을 연결하던 작가의 손길을 느껴보는 것, 불빛 사이로 비춰진 옷들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세상, 하나하나의 옷들을 보면서 옷의 주인을 상상해 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초대된 관객의 몫이다.
물론, 정문경이 만들어낸 <Fort>는 우리에게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세상은 상상보다 험악하게 변하고 있으며,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상처받은 채 살고 있다.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옷으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이 요새는 어쩌면 아주 짧은 시간동안 바깥세상을 잊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다. 언젠가는 요새를 떠나 다시 처절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돌아와 마주한 요새 밖의 세상은 더욱 징글징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 옷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잠시 일상을 잊고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면, 커다란 바늘을 가지고 사람들 사이 관계의 지도를 그리는 작가의 커다란 손을 상상하며 싱긋 웃어볼 수도 있다면 한번 쯤 그 요새 안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문득 이 모든 것들이 어설픈 요새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과 추위조차 막아줄 수 없는 어설픈 요새, 그러나 잠시나마 마음속에 따듯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그런 요새이기에 자꾸 시선이 간다. 자꾸 마음이 간다.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그 안에서 누군가와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