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by 나탈리

신촌 펠트 커피 바로 앞, 식물이 마중 나온 곳이 있다. ’더 오베르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작년부터 플라워 클래스를 수강 중이다. 더 오베르 박물관의 취미 클래스를 듣기 전, ‘취미 컬렉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다양한 취미를 가졌었다. 도자기를 배웠을 때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면, 선생님이 고치곤 했다. 그때마다 “저는 자유로운 형태가 좋아요.”라고 말했지만 결국 가마에 구워져서 나온 건 선생님이 손 본 정형화 된 세라믹이었다. 커피나 영화 감상도 마찬가지다. 모임에서 대세인 향이나 작품을 찬양해야 했다. 여기에 더해 남을 평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취미를 유목하다 더 오베르 박물관의 클래스를 듣기 시작했다.


첫 수업은 공 모양의 오아시스에 꽃을 어레인지하는 ‘행잉 포맨더’ 였다. 잔뜩 긴장했다. 처음 하기엔 난이도가 높을 뿐더러 그간의 취미 생활 데이터로 보아, 이 사람들도 나를 평가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 완성 후 의도를 설명했다. 인생을 도형으로 표현하면 이 오아시스 같은 원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이전의 것을 끝냈다는 뜻이고, 어떤 것을 끝냈다는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작과 끝의 궤도를 공전하고 있어요. 좋은 일, 나쁜 일을 만나면서 궤도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죠. 크기를 정하는 건 자기 마음가짐이고요. 그래서 저는 이 동그란 오아시스를 행성이라고 정했어요. 대칭을 만들어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고요. 어떤 일을 겪든 궤도를 키우자는 마음가짐으로 만들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가 나왔다. 아니, 이렇게 인심이 후하다고?! 양 끝점이 나온 것도 좋고, 다른 꽃을 쓴 것도 좋았어요. 와, 이렇게 깊게 생각했다고요? 등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얻었다. 다음 사람도, 그다음 사람도. 작품 설명을 경청하고 좋은 점을 하나씩 말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취미는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 이제는 이 문장을 믿는다. 기초반 수업을 통해 알게 된 L님은 인간 비타민 같은 분이다. L님과 성격이 잘 맞아 새로운 기초반 클래스를 함께 신청했다. 새로운 기초반 수업에서 G님을 새로 만났다. G님은 내성적이나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로 알수록 재미있는 분이다. 서로의 직업이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의 고민, 관심사를 거리낌 없이 공유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점이나 브랜드, 노래를 추천하기도 한다. 마치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들 같다. 서로를 모르지만, 오히려 서로를 더 잘 안다. 때론 친구들보다 더 진한 위로를 받을 때도 있다. 이 수업의 분위기가 좋은 것은 선생님의 역할이 크다.

선생님은 진심을 담아 소통할 줄 아는 분이다. 사람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본다. 그래서 보통의 기준과 다르게 꽃을 꽂아도 의도를 가졌다면, 인정하고 가만히 둔다. ‘돛단배’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돛단배’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인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가 떠올랐다. 거센 파도를 의연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 이 뒷모습처럼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자는 마음을 남편에게 전하고 싶었다. 거센 파도를 표현하기 위해 설유화를 아래에 꽂았다. 그리고 바람을 헤쳐나가는 느낌을 주기 위해 꽃들을 사선으로 어레인지했다. 작품 설명을 듣고 선생님이 ‘보통 설유화는 꽃이 잘 떨어져서 위로 꽂는데, 나영님은 아래에 꽂아서 의도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데, 잘한 것 같다’고 하셨다. 이외에도 데몬(시연)을 보여주고 나서도 여러분의 느낌대로 꽂아보세요~ 라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 말은 언제 들어도 좋다.



기초반 수업을 두 번째 수강하기에 돛단배 수업을 또 만났다. 지난번과 같게 하시려나..? 했는데, 완전히 다른 수업이었다같은 작품이어도 소재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카피라이터가 단어를 세심하게 고르듯, 선생님께서도 꽃을 세심하게 고르셨을 것이다. 하고 많은 소재 중에 야자잎을 고른 건, 다각도로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야자잎을 보고 ‘이국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작은 정원을 싣고 타국에 도착한 돛단배를 완성했다. 취미반이면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선생님은 했던 수업을 반복하는 경우가 없다. 지난 번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서 고민했을 선생님의 태도를 마음에 새긴다. 생각지 않은 순간에 배움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