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by 나탈리

안녕하세요, 나탈리입니다.

요청주신 건에 대한 아이디어 덱을 첨부로 보내드립니다.

피드백을 주시면 다음 미팅 전까지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탈리 드림


업무 메일을 보낼 때 꼭 들어가는 문장들이다. 카피라이터가 된 지 3년. 이제는 피드백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라는 문장이 또 다른 이름같다.


인생은 끝없는 수정이다. 학생 땐 오답 노트를, 대학에 와선 레포트를, 그리고 사회에 나와선 자신을 만들어 간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나의 가치관이 섞이면서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겪어 간다. 나처럼 광고계에 몸담고 있다면, 온에어 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반복할 거다.


처음엔 밀린 숙제를 하는 것처럼 덱 만들기에 급급했다. 1초라도 늦으면 불려가서 엄청 혼날 것 같았다. 착각이었다. CD님들께선 시간 내에 숙제처럼 해간 덱보다 조금 늦어도 생각의 흐름이 담긴 덱을 좋아하셨다. 아, 시간만 지키면 되는 게 아니구나. 나는 하는 것도 없는데 옆에 앉혀놓으시고 덱 정리하는 걸 보여주시는 게 컸다. 내가 만든 덱을 어떻게 재구성 하시는지, 아이디어를 다르게 포장하는 법이라던지. 디자인은 어떻게 하시는지.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많이 성장했다. 만약 그분들께서 내가 생각하기엔 말이야~ 라는 말로 나를 감화시키려고 하셨다면 거부감이 컸을 것 같다. 조언이나 교훈이란 게 드라마에서는 멋지게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라떼가 되기 쉬우니 말이다. 그렇게 CD님들의 말 없는 -때로는 말이 있기도 했지만- 피드백을 받고 자란 지 3년. 이제는 뭔가 알 것 같은 단계에 도달했다. 며칠 전 덱을 만드는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생각했다. 희열이 느껴졌다. 나, 좀 성장했구나!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예이! 하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피드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신경을 쓰지는 못했겠지.


말은 이렇게 해도 피드백 받는 건 유쾌하지만은 않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무한한 칭찬을 받고 자란 탓인지, 보완할 부분 보다는 잘한 부분을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하지만, 나도 안다. 피드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는 것을. 나는 음식과 일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피드백은 음식의 간과 같다.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엄청난 음식이 되거나 맹맹한 음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새로운 부분까지 신경쓴다. 이 자료가 클라이언트에게 정말 필요한 건지? 이미 아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떤 이야기로 덱의 흐름을 끌고 나갈 건지. 이 컬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폰트를 사용할 건지, 아이디어 리뷰 때 공기를 어떻게 주도할 건지 -진짜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한다는 건 아니다, 당연히-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을 건지, 농담으로 시작할 건지. 시간 내에 요리 만들기에 급급한 단계에서 이제는 플레이팅까지 신경쓰는 단계에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맞게 하고 있는지.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럼 이걸 다 지우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건지. 대체로 옳고 그름에 대한 물음이 컸던 것 같다. 피드백을 받아보니 팩트만 맞으면, 나머지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다. 아이디어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 요리가 그런 것처럼. 자신의 결과물을 내는 것. 남들을 설득한다면 더 좋은 것이다. 아이디어 덱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디어를 리뷰하는 순간의 공기, 목소리의 톤, 덱의 흐름까지. 아이디어 리뷰는 잘 짜여진 코스 메뉴를 먹는 경험과 같다. 와, 나 이정도까지 생각하네. 진짜 대단하다. 고 아이디어를 가져가도, 피드백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 사수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CD님의 피드백을 반영하고, 마지막으로 광고주의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세상에 나온 광고들은 피드백의 결과물이다. 피드백은 끝나지 않는다. 피드백이 싫어서 내 사업을 시작한다면 더 냉정한 피드백을 고객에게서 받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해 간다. 그래서 이 문장이 이제는 좋아졌다.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니까.


나는 브런치를 아카이빙 개념으로 사용한다. 남편과의 신혼 생활을 돌아볼 수 있다고나 할까. 사진을 보면 이날 어땠는지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싶은 날도 있다. 도자기 수업에 다녀왔다가 시간이 남아 작가의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던 이 글을 꺼냈다. 완고하기 전까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해서, 작정하고 써야 한다. 내가 나에게 주는 피드백이 많아서다. 학부 시절 소설 창작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네가 초고를 쓰지? 탈고할 땐 초고의 1%도 찾아보기 어려울 거다.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울리는 주말 오후다. 피드백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라는, 메일의 서명처럼 붙는 문장처럼 말이다.

이전 04화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