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루틴이 있다. 스트레칭하고, Stoic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다. -명상 앱인데, 오늘 일과를 포함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어 몇 년째 애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선 Head Space로 명상한다. -가끔은 스토익에서 명상까지 완료하는 경우도 있어 매일 하지는 않는다- 폼롤러로 전신을 시원하게 밀어주고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해서 텀블러를 세척하고 To-Do 리스트에 오늘 할 일을 기입한 뒤,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별일 없으면 뉴닉, 어피티, 일분톡 같은 뉴스레터를 본다. 일 관련 자료를 찾다 점심을 먹고, 일하다 퇴근한다. 요새는 바쁜 일이 없어 대부분 칼퇴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고 산책한다. 샤워하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독서한다.
나의 일상은 회사와 집의 반복이다.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시지프스는 죽음을 면하기 위해 꾀를 썼다가 신들의 노여움을 사 형벌을 받는다.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는 것. 그가 힘들게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자마자 바위는 저절로 산 밑으로 떨어진다. 다시, 또다시. 쳇바퀴 같은 일상을 감내하는 게 인간의 운명인가. 알베르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과 희망이 그를 떠받쳐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중략)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온다. 파도 같다. 너무 잔잔하기도, 너무 크기도 한 것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번 주 수업은 ‘돛단배 만들기’였다. 배 모양의 도자기에 꽃을 어레인지 하는 수업으로, 화기의 형태를 보자마자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떠올랐다. 홀로 대자연을 감내하는 인간. 적막감과 외로움, 결연한 의지 또한 보인다. 남자는 바위 위에 서 있지만,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배가 생각난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1등 항해사 같은 느낌이 든다. 남자의 뒷모습에서 흔들리지 않고 역경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나아가는 배를 표현하고 싶었다. 역동성을 주기 위해 금기를 깼다. 선박에 부딪히는 포말을 표현하기 위해 설유화를 바닥에 깔았다. 큰 꽃을 꽂으면서 설유화가 우수수 떨어지기 때문이다. 화기의 뾰족한 부분을 선미로 생각하고 여기서부터 파도가 갈라지는 장면을 연상했다.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꽃을 눕히다시피 꽂았다. 갑판엔 꽃들이 휘날린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한 줄기는 꼿꼿하게 서 있다.
나의 배는 파고를 전력으로 부딪히며 달려왔다. 잔잔한, 풍랑같은, 바다. 풍랑하면 사건, 사고가 떠오르겠지만, 내게 풍랑은 지루함이다. 젖은 판자를 들어내고 새로운 나무판자를 덧댄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나아간다. 한때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싶었다. 먼 미래에도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배 한 척을 만났다. 큰 선박 안에 있었던 배는 5년 전 안락함을 떠나 파고에 몸을 맡겼다. 그 배는 신대륙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거의 없어 보였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오늘도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배와 순항한 지 햇수로 6년째. 지도나 나침반은 필요가 없어졌다. 지나가는 날치 떼를 보며 즐거워하고, 우연히 마주친 돌고래를 보며 경외심을 가지기도 한다.
산처럼, 파도처럼 일상은 반복된다. 지루함의 풍랑에 흔들리지 말자.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아도 좋다. 성실히 나아가자.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