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두 봉지와 인생의 깨달음

브나나 보다가 든 생각

by 나탈리

<브루클린 나인-나인>은 내 인생 시트콤이다. 누가 보면 개그물에 무슨 인생이냐 묻겠지만, 사실이다. 시리즈를 좋아해서 DVD도 소장하고 있고, 넷플릭스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찜하기 하고 정주행도 2번이나 했다.

넷플릭스에서 <브루클린 나인-나인(이하 브나나)>을 볼 때면 맥주와 팝콘이 당긴다. <프렌즈>나 <원데이 앳 어 타임> 같은 시트콤을 볼 땐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팝콘 없이 브나나 보기를 일주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컬리에서 Kulkin 버터 맛과 소금 맛 팝콘을 한 박스 씩 구매했다.


일찍 퇴근한 날, 드디어 소금 맛 팝콘을 개시했다. 고작 팝콘이지만 고급진 느낌을 내보려 집에 있던 트러플 오일을 콸콸 뿌렸다. 한 손엔 팝콘, 다른 한 손엔 맥주를 들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브나나 오프닝 음악이 울리는 순간에 맞춰 칙- 맥주 캔을 땄다. 제이크의 엉뚱하고 찌질한 개그, 홀트 서장이 진지한 얼굴로 농담 치는 장면에서 집이 무너져라 웃으며 팝콘을 와앙 입으로 가져간다. 음~ 입안 가득 퍼지는 버터와 트러플의 풍미! 짭조름해서 맥주가 절로 당긴다. 마치 제이크와 찰스의 관계 같달까.


... 몇 번 집어먹었다고 벌써 팝콘이 바닥이다. 팝콘 한 봉지에 반이 옥수수 알갱이 었던 터라, 또 팝콘을 튀겼다. 음.. 시간을 전보다 오래 해서 팝콘 양은 많았으나, 탄 부분도 있어 맛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팝콘 인생 14년. 아직도 완벽한 팝콘을 튀기기가 어렵다. 미묘한 차이로 옥수수 알갱이가 반 이상이나 남기도 하고, 팝콘이 타버리기도 한다. 이 미묘한 선을 아직도 못 잡아내고 있는 슬픈 현실..

일도 그렇다. 미묘한 차이로 아이디어의 질이 달라진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자료 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게 내 업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정해진 시간 안에 찾을 수 있는 자료를 모두 찾고, 이 안에서 키워드를 뽑아내야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종종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홀트 서장을 대하는 에이미처럼 일하게 된다. 이 정도면 시디님들께서 좋아하지 않을까? 이 방향이면 광고주가 좋아하겠지? 같은 것들. 스스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 남들 기준에 맞춘 아이디어를 내게 된다. 어느 날인가 CD님께서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들어갈 거 다 들어갔고 자료 조사도 잘했는데, 아이디어 낼 땐 너부터 재미있어야 해. 너 이거 재미있어?” 기계적으로 일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다시금 전의(?)를 불태운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는 좋은 팀에서 나온다. 다행히도 내겐 홀트 서장처럼 진지한 농담을 날리지만 일도 잘하는 CD님이 계시고, 찰스처럼 서로를 잘 이해하는 직장 동료도 있다. 다들 제 몫을 잘하다 보니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자극을 받는 건 좋은 일이다. 나를 갉아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일 중독자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콘텐츠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내 업과 연관 짓는다. 브나나를 보는 것처럼 일도 즐겁게 해야지. 땅굴을 파고드려는 마음을 다시 브나나를 보며 바로 잡는다. 인생 드라마란, 가벼운 소재로도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콘텐츠라 생각한다. 일요일 밤이다.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브나나로 달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