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이것은 지난 팔월 네브라스카 주를 횡단할 때, 초저녁 푸른 자동차 속에 혼자 않아 있는 내 기분을 쓴 글이야.”라고 말해주라 당신의 글이 또 다른 외로운 영혼에게 닿을 수 있도록 손을 뻗으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외로움을 이용하라>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동그랗게 생겼조 친구들을 만났다. 한남동 그라운드 파이프에서 만났는데, 핫플인지 40분 정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니 대기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밖에 있을 땐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훈훈했다. 날이 많이 쌀쌀해지긴 했나보다. 내부는 모던했다. 벽돌같은 걸 그대로 사용해서 앉는 곳과 벽 사이에 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로 조약돌 같은 게 몇 있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피자라는 옥수수 피자와 페페로니 피자 반반을 시키고, 화이트 라구와 레드 라구 파스타를 주문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당구대 처럼 생긴 삼각형의 테이블로, 연한 크림 노란색이 칠해진 유광 재질-아마도- 인 것 같다. 사진을 찍으니 잘 나온다. 테이블 위에는 자주나 기타 빈티지 스토어에서 팔 것 같은 흰색 유약이 대충 입혀진 플로럴 접시와 그 위에는 치즈 커터 겸 나이프와 포크가 있다. 레드 라구 파스타와 화이트 라구 파스타가 먼저 나왔다. 화이트 먼저 먹어 보았다. 보이는 대로 진득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레드 라구를 먹어 보았다. 토마토의 맛 보다는 바질? 아니야, 고수? 라임? 이 들어간 상큼함이 느껴졌다.
이와는 별개로 포크가 무거워서 면을 돌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리조또가 아닌 이상 파스타를 먹을 땐 조금 더 가벼운 커트러리를 내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프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자가 나왔다. 6조각이 나오는데, 옥수수 피자를 먼저 먹어보았다. 올 여름을 강타했던 초당 옥수수와 직접 썰어 만든 듯한 감자칩이 콕콕 박혀있다. 여기에 파프리카 파우더로 추정되는 빨간 파우더라 뿌려져있다. 한 입 먹으니 매운 맛이 먼저 느껴진다. 매운 것을 못 먹는지라 더 그런 것 같다. 옥수수가 있는 부분을 먹어본다. 아삭, 하고 씹히는 식감과 함께 치즈의 부드러움과 빵의 크리스피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맵다. 감자칩은 의외로 빛을 발휘하지 못 했는데, 도우와 크러스트가 워낙 바삭했기 때문이다. 뭔가.. 마약 옥수수를 피자로 옮겨놓은 느낌이랄까. 조금 매워서 화이트 라구로 입안을 진정시키며 먹었다. 확실히 새로운 맛이다. 그리고 페페로니 피자를 먹었다. 페퍼로니 소시지를 좋은 것을 썼는지, 한 입 먹었을 때 기름이 튀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짜지도 않은 짭쪼름한 소시지 맛이었다. 치즈가루를 가득 뿌려 먹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양이 작아보였는데 피자를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원래 피자 하나에 파스타 하나만 시켰는데, 친구가 파스타 하나 더 시켜야할 것 같다고 해서 추가했는데.. 욕심이었다. 그래도 거의 접시 싹싹 비우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시원하다.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은 건 좋은 재료를 썼기 때문일테지. 조금 더 걸어가 33아파트먼트에 갔다. 인스타 핫플이었던지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없었다. 나는 집에서 커피를 마실 예정이므로 스콘과 크럼블만 구매했다. 집에 돌아와 스콘과 크럼블을 먹었다. 스콘은 안에 딸기잼이 들어가 있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딸기잼 샌드? 의 고급진 맛이었다. 크럼블이 맛있었다. 시나몬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그래도 누구나 잘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그리고 바삭함의 정도도 적당했다. 마치.. 건조기에서 갓 건조를 마친 포근하면서도 촉촉한 수건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