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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Aug 21. 2022

꿈같은 사랑의 메아리,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박찬욱 감독, 정서경 각본가의 <헤어질 결심>을 보았습니다. 꿈꾸는 두 사람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본 날은 잠들 수 없었어요. 기억하고 싶었거든요. 쏟아지는 잠에 눈이 감기다가도, 영화에 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베어에 메모했어요. 해준(박해일 분)과 서래(탕웨이 분)는 스마트 워치를 이용한 것처럼요. 잠들면 잊게 되니까요.


 <헤어질 결심>의 배경은 부산과 이포, 두 군데로 나누어집니다. 편의상 1막(부산)과 2막(이포)로 구분하겠습니다. 영화의 1막은 속절없이 빠져버린 사랑을 보여줍니다.

 해준은 형사입니다. 그리고 불면증이 있습니다. 후배인 수완(고경표 배우)은 잠복을 밥 먹듯이 해서 불면증이 생긴 거라고 말하지만, 해준은 잠들 수 없어 잠복한다고 말하죠. 해준의 일상이 미결이기에 잠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억합니다. 범죄 현장의 사진들, 스마트 워치의 녹음들로. 질곡 살인 사건의 범인인 홍산오(박정민 분)를 쫓는 과정에서 해준은 다른 사건을 만납니다. 공항 공무원 기도수(유승목 분)의 실족사 사건을 맡은 것이죠.


 자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을 해준은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용의자인 기도수의 아내 송서래(탕웨이 분)를 조사하면서, 해준과 서래는 처음 만나게 됩니다. 해준은 자신과 “동족”인 서래에게 끌립니다. 여기서부터 극의 흐름이 자유자재로 흘러갑니다. 호감 가는 사람이 생기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처럼요. 해준이 서래에게 질문을 하고, 서래는 대답합니다. 잠시 해준이 테이블을 바라보는 사이. 갑자기 초밥집 도시락이 테이블 위에 올라오고 조명은 취조실을 비춥니다.

 사실은 해준이 서래의 집을 엿보면서 기록한 것이고, 취조실에서 취조를 하다 해준이 좋아하는 초밥집에서 시킨 도시락을 먹는 것이었죠. 서로를 메아리처럼 맴돌던 둘은 서래의 [우리 집으로 와요]라는 문자를 기점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해준 또한 서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죠. 그곳에서 서래는 미결 사건 보드에 붙여진 자신의 사진을 발견합니다. 그녀를, 꿈을 만나고서야 해준은 잠이 듭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막을 내립니다. 해준이 기도수 살인 사건의 진범이 서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준의 꿈은 ‘붕괴’되고 맙니다.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해요.”


 불같은 사랑이 끝나며 2막이 시작됩니다.




“글램즈가 잠을 죽여서 코도는 더 이상 잠들지 못하리.
 맥베스는 더 이상 잠자지 못하리라.”


 잠은 망각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몸은 어제의 기억을 잊습니다. 이포로 이사 온 해준은 스마트 워치 대신 고급 시계를,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고 다닙니다. 이포에선 미결 사건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해준에게 다시 불면증이 생깁니다. 서래에 대한 마음을 묻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죠. 영화의 2막은 불면증 클리닉에 간 해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막에서 불면증을 치료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다가 바뀐 것이죠. 서래에 대한 마음이 없던 그때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의 화재경보기가 울려 모든 직원들이 밖으로 대피합니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죠. 서래가, 해준이 그랬던 것처럼, 해준을 멀리서 관찰하며 달라진 점들을 스마트 워치에 기록합니다. 며칠 뒤, 서래와 해준은 수산물 시장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서래는 해준이 떠오를 때마다 스마트 워치에 기록하죠. 그리고 며칠 뒤, 그녀의 남편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해준은 서래를 용의자 그 자체로 대하려고 합니다. 서래의 새 남편이 죽은 게 우연이 아닌, 의도된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서래는 해준에게 다가가려 애씁니다. 이포에 온 이유는 누군가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왔다면서요. 서래는 스마트 워치로 해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죠. 사건의 진범이 나타나 서래는 풀려납니다.

 서래는 해준에게 만나자고 합니다. 눈 오는 밤, 산 정상에서 서래는 가발을 벗고 고백하죠. 당신의 사랑이 끝난 다음에 내 사랑이 시작됐다고.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다고.  해준은 차 안에서 서래의 스마트 워치에 녹음된 음성의 번역본을 읽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서래를 찾아 나서죠. 밀물이 들어오는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어쩌다 한 번씩 꿈을 꿉니다.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 사랑을 하거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다른 삶을 살기도 합니다. 꿈이 클라이맥스에 도달했을 때, 꿈에서 깹니다. 그래서 꿈은 언제나 미결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꿈이었기에 소유할 수 없던 두 남녀를 다룬 영화 <헤어질 결심>. 여러 모로 생각할 게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포스터를 보니, 포스터가 영화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주고 있더라고요. 꿈같은 사랑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다. 는 주제를 담은 것 같았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도 담은 것 같고요. -서래의 전 남편들은 서래를 소유물로 보거나(기도수) 상황에 맞게 이용해야 할 대상(임호신)으로 보았으니까요.-서래와 해준은 데칼코마니, 혹은 서로의 메아리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에 꽂혀있던 각본집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 리뷰를 올린 다음, 각본집을 보기로 결심했거든요. 꿈의 세계를 다시 방문할 생각에 설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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