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크업의 계절, 12월. 순살 인간이 될 순 없어 근력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테스트 삼아 헬스장 한 달 이용권을 끊었습니다. 헬스 기구는 처음이라 퍼스널 트레이닝도 5회 등록했습니다. 다들, 그럴 때 있죠? 다이어트를 결심한 순간. 기다렸다는 듯 앞에 나타나는 방해물. 누군가에겐 저녁에 삼쏘 약속이겠지만, 이때의 제겐 코로나였습니다. 코로나 완쾌 후 헬스장에 가는 게 걱정되더라고요. 겨울 한파를 겪은 뒤로 활동량이 뚝- 떨어진 데다 코로나를 겪으며 거의 움직이질 않았거든요. 정말 순살 인간이 되어 첫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의외로 할만하더라고요? 요가와 필라테스를 배운 게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실감했습니다. 운동할 때 근육이 아프지 않아서 살살 받았나 싶었어요.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은 지 정확히 24시간째 되는 다음날 밤 9시. 근육통이 시작됐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심지어 평지를 걷는 것도 힘들었어요. 이틀이 지나도 근육통이 계속됐습니다. 두 번째 시간엔 어깨 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께 물어봤어요. “선생님. 다리 근육통이 원래 이렇게 오래가나요?” “근육을 오랜만에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어깨 운동을 하고 정확히 이틀 동안 아팠습니다.
희한하게 혼자 복습할 땐 그 정도의 아픔이 오지 않더라고요. 몇 번의 트레이닝 후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혼자 운동하고 나면 별로 안 아픈데, 이유가 뭘까요?” “축하드립니다 회원님. 이제 증량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게 하체 운동할 때의 무게가 늘었습니다. 솔직히, 하체는 재밌어요. 어느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지 느껴지거든요. 다음 무게로도 쉽게 넘어갈 수 있고요. 하지만 어깨나 등 운동은 어렵고,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하고 나면 너무 아파서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 등운동을 하는 날이었어요. 쥐가 날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견갑골 주변에 쥐 날 것 같아요.” “잘하고 계십니다, 회원님. 이때 더 쥐어 짜야해요.” 쉬고 싶어서 말했는데,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등 근육이 이제야 자극을 느끼게 됐다면서요.
어느덧 개인 트레이닝 10회 차. 하체 운동하는 날이었어요. 무게가 또 늘어나 엉덩이에 쥐 날 것 같이 운동을 했습니다. 힘이 빠진 걸 알아챘는지, 선생님께서 응원의 한 마디를 하셨습니다. “회원님, 아파야 강해집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선생님, 전 아프지 않으려고 운동하는데요…!” 아프지 않으려고 운동하는데, 아파야 한다니. 저와 선생님이 동시에 빵 터졌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어요.
며칠 뒤, 선생님의 말을 체감한 일을 겪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 한 아저씨가 저를 밀쳤어요. 그런데 안 밀리더라고요. 흔들림 없는 편안함, 시몬스처럼 평온-했습니다. 가기 귀찮아도 어른이니까, 약속했으니까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던 퍼스널 트레이닝 수업들. 어른이니까 혼자 운동할 줄도 알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해냈던 개인 운동 시간이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이 맛에 다들 헬스에 중독되는구나. 하지만, 난 중독까진 안될 것 같아. 하는 생각을 하며 집에 갔습니다.
다음 수업 시간,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요. 아주 예전의 기억을 반추하자면, 무산소는 산소가 필요 없는 운동이라 땀이 안 난다고 배웠거든요. 교과서와 반대로, 근력 운동을 하면 할수록 땀이 나서 궁금했습니다.-근력 운동에 무지해 모르는 게 있으면 선생님께 다 여쭤보는 편입니다.- “선생님, 전 무산소 운동을 하는데 왜 땀이 날까요?” 무산소와 유산소는 땀의 유무로 결정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 둘을 가르는 기준은 ‘지속 시간’과 ‘강도’였습니다. 지속 시간이 길고 강도가 낮으면 유산소가. 짧고 강하면 무산소라고 하셨습니다. 근력 운동도 같은 강도로 오래 하면 얼마든지 유산소가 될 수 있다며, 회원님도 미래에 그렇게 되실 거라는 첨언도 들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방향이 무산소적에서 유산소적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헬스도 꾸준히 하다 보면 자극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