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Sep 26. 2023

분재는 밖으로 향하는 사랑이다. <분재하는 마음> 리뷰

“나탈리, 넌 분재 좋아할 것 같아.”

입사 초부터 내게 꾸준히 분재 어필(?)을 해온 CD님이 계시다. 한솥밥 먹은 지도 4년. 아직도 내게 ‘분재하면 잘할 것 같다’. 는 말씀을 하신다. 나의 어떤 면을 보고 말씀하시는 걸까.


일할 때 생각을 많이 한다. 키워드를 뽑기 전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긁어모으고, 도움이 될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한다. 그다음에 키워드를 생각한다. 장표에 쓰인 키워드가 목표에 맞는지 아닌지 한참을 고민한다. 모니터가 뚫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주변 동료들이 말해줬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 내가 생각한 방향이 있으면, 그쪽으로 밀고 가는 편이기도 하다. 피드백을 받아도 내가 생각한 방향도 꼭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니까. 이런 성향 때문일까. 자꾸만 그 CD님께서 분재를 추천하는 이유가.


분재의 ㅂ도 모르는 내게 단비 같은 책이 찾아왔다. CD님께서 <분재하는 마음>이라는 도서를 선물해 주신 이유에서다. 분재 스승 강경자 님과 그의 제자 최문정 님이  공동 저술한 이 책은 분재 입문서와 에세이의 사이에 있다. 분재의 뜻, 수형, 종류 등을 알려준다. 짧고 간결한 서술이지만, 이간 마치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같은 느낌이랄까. 해봐야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중간중간 두 분의 생각도 들어가서 읽기 편한 책이라 느껴졌다.



분재는 생육을 억제하고, 원하는 모양을 내기 위해 식물에 억지로 철사를 대는 거라 생각했다. 무지했다. <분재하는 마음>을 읽으니, 때가 되면 분갈이를 하고, 썩은 뿌리는 잘라주고. 엉킨 뿌리는 인형머리 빗듯 가지런히 풀어주어야 한다. 식물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거나, 우리 집에 맞는 분재를 들여야 한다. 물은 조금 부족한 듯 주기.-시기에 따라 다르다-

분재는 밖으로 향하는 사랑이구나. 분재는 식물에, 환경에, 더 나아가 누군갈 생각하며 가꿔나가는 것 같다. 사랑을 깊이 이해하거나, 내면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분재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도 알 것 같다. 이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 요즘. 남보다는 내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게 당연한 시대. 밖으로 향하는 사랑보단 내면을 표출하는 취미를 갖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꽃꽂이처럼.


꽃을 만져본 적이 있다. 지금은 청담으로 거처를 옮긴 오베르에서다. 결정은 직관적으로 내리는 것과 달리, 작품을 만들기 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어떤 디자인이 지금 내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이 컸다. 신경이 곤두서지만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하니?- 막상 어레인지 할 땐 완전한 몰입을 경험했다. 꽃꽂이는 내면의 표출에 가까웠다. 샵이 너무 멀어져서 이제는 가지 못하지만, 꽃꽂이에 대한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런 내가 <분재하는 마음>을 완독하고, 분재를 배우고 싶어졌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남편과 결혼하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진 덕이다. 우리의 결혼 생활과 함께하는 무언가가 있기를, 이제야 소망한다. 두번째는 책에 나온대로 무작정 따라했다가 식물을 죽이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서다. 길게는 수십 년도 산다는데, 생각없이 들여오기엔 큰 책임감이 든다. 여러 생각이 들게 한 <분재하는 마음>. 잘 읽었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 네 시에 일어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