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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고등어

by 나탈리

6년 내내 아침마다 고등어자반을 먹어야 하는 미래를 알았다면, 절대로 “고등어가 맛있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이천백구십일의 아침을 감시당하는 일도 없었을 테다. 처음부터 고등어가 싫은 건 아니었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과 참치처럼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흰쌀밥과 먹으면 단짠의 조화를 느낄 수 있었고, 현미밥과 먹으면 고소한 풍미가 배가되어 좋아했다. 친 조부모와 우리는 생활 패턴부터 식성까지 모든 게 달랐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우리가 좋아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공통점은 고등어 자반이었다. 내가 고등어를 좋아한다고 말한 다음날부터 고등어 지옥이 시작됐다.


고등어자반은 엄마가 차려주는 반찬보다 늘 먼저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식탁 의자를 드르륵 끄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의 어머니, 나의 친조모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척 방에서 나왔다. 내가 고등어를 남기는지 몰래 지켜보려는 의도에서다. 꼿꼿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고개만 부엌을 향하던 그녀의 모습은 공포 영화의 포스터 같았다. 같은 텔레비전 프로가 그들의 안방에서, 그리고 거실에서 돌림 노래처럼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미지근한 고등어자반을 먹는 것이 아침 일상이었다.


매일 아침은 똑같았지만, 우리는 변했다. 말끝마다 “겨?”를 붙였던 촌년 전학생은 “거야?”라고 말할 줄 아는 어엿한 분당 사람이 됐다. 오락실이 테마파크였던 시골 소녀는 캔모아에 가서 토스트와 빙수를 먹고, 밀리오레에서 <해리 포터>를 보고, 서현 로데오 거리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는 도시 중학생이 됐다. 그렇게 미지근한 고등어에 익숙해질 즘 일이 터졌다. 그날따라 고등어가 너무 비렸다. 한 입 먹었다 바로 뱉어냈다. 대나무처럼 소파에 꼿꼿이 앉아있던 조모는 바로 부엌으로 달려와 자신의 정성을 무시했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사춘기였던 나는 친조모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고등어자반을 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잔뼈가 잇몸을 찌르고, 올라오는 토기를 참느라 벌게진 눈을 하고서. 도저히 삼킬 수가 없어 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밀어 넣었다. 벌어진 입 사이로 핑크색 침이 흘렀다. 친조모는 그런 내 모습에 버릇없이 군다며 아버지에게 전화해 하소연을 했다. 결국, 그 난리를 정통으로 맞는 건 우리 엄마였다.


다음 날, 엄마가 내 방으로 아침을 배달해 주었다. 역시나 고등어가 센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친조모가 기웃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방문을 아주 꽉 닫은 뒤, 고등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집에 산 지 몇 년 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어를 싫어하는 어른이 됐다. 어른이 돼서 가장 좋았던 건 “제가 고등어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라고 말해도 이해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됐다는 건, 떄론 먹기 싫은 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다. 동대문에 광고주 미팅을 하러 갔었다. 매끄럽게 미팅을 마치고 나오니 점심시간. 상사가 근처에 죽이는 고등어 구잇집이 있다며 가자고 했다. 고등어 못 먹는 사람도 먹고 나오는 곳이라며.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앞장섰다. 유명한 식당답게 서너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어가 구워지며 나는 고소한 냄새와 생 고등어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있었다. 머지않아 우리 차례가 되었다. 고등어구이 정식을 시키고 상사와 대화를 했다. 일에서 출발한 대화는 다른 팀 험담으로 흘러갔다. 석쇠에 올려진 고등어처럼, 내가 알던 사람들이 그의 입에서 지글지글 구워졌다.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얘기도 이렇게 하겠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8년 만에 먹은 고등어는, 꽤나 괜찮았다. 더는 고등어를 증오하지 않게 된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상사가 질문 폭격을 했다. 맛은 어땠는지, 또 오고 싶었는지 등등. 생각보다는 괜찮았다고 답하며 택시를 잡았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나 오늘 고등어 먹었어.]


[고생했네.]


‘세상에 영원한 건, 영원이라는 단어밖에 없다’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간 화목한 할머니와 손녀 관계가 되는 것일지. 그렇게 되고 싶은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로수처럼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회사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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