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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스타의 필요 조건

by 나탈리

‘Seven Wonders*’라는 뮤지컬 넘버에 이런 가사가 있다. “…home is where you are.” ‘당신이 있는 곳이 집’이라는 가사가 꽤 오랫동안 머리에 남았다. 뭐랄까, 그때의 난 내 방이 그런 공간이라 생각했다. 온전히 나 홀로 있는 공간에서만, 나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젠, 그 가사의 의미를 안다. 남편과 있을 때 나는 100%의 내가 된다. 판단과 위협, 그리고 자기 검열로부터 해방된다.


생각해 보면 연애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그를 따라 베를린에 간 적이 있는데, 스케줄이 비는 날 함께 베를린 관광을 했다. 일은 택시 기사가 엉뚱한 장소에서 내려준 것에서 시작됐다. 폐공장 같은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긴- 벽을 따라 그라피티가 가득했다. 쓰레기도 여기저기 있었다. 할렘 같은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은 밖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색색깔의 색종이가 베를린의 푸른 하늘을 수놓았고, 노란색과 흰색 줄무늬가 그려진 파라솔이 강가를 밝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선베드에 누워 해를 즐기거나 강가를 지나는 유람선을 구경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곳에서 먹었던 젤라또는 8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이 180도 달랐다.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함께 있는 사람 덕분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음을 경험했다.



2025년 새해 다음 날. 일산 P.O. 커피 로스터에서 커피를 마시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저 이제 락스타처럼 살 거예요.” 남편이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뗐다. “원래도… 그랬잖아요?”

굳이 따지자면, 난 2집 앨범 발매를 앞둔 락스타였다.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릴까 봐 자기 검열하는. 외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내가 살고자 하는 락스타의 삶과 거리가 있다. 진정한 락스타의 삶이란 ‘눈치 보지 않는’ 태도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에게 주는 눈치를 포함해서 말이다.



초년 차 카피라이터 땐, 내 아이디어가 무조건 채택될 거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너바나(Nirvana)나 오아시스를 꿈꾸며 데모 테이프를 돌리던 락스타 지망생은 쓴맛을 보고, 조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짜면 좋아해 줄까. 저렇게 하면 모두에게 인정받을까? 하면서. 그렇게 짜간 아이디어는 통과는 되나, A도 B도 아닌 C급이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데 기억에는 안 남는 노래 같달까. 속상했던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보는 눈이 달라서 그런 거예요.’ ‘아이디어는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때로는 윗사람이 좋아할 것 같으니까 만든 것 같아요. 생각이 좋으니, 남에게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아이데이션을 할 때마다 그는 내게 믿음을 주었다. 눈치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선택이 안 된 건 역량 부족이 아닌, 회사의 결과 맞지 않음을 깨달아 갔다. 오히려 내 색깔을 좋아하는 동료도 생겼다. 그렇게 나만의 관점을 밀고 나가는 연습을 했다.



퇴사 후,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웹소설을 쓰는 것인데, 네 번째 에피소드도 처음의 복제본 같았다.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기 검열. 이건 현실성이 없고, 저렇게 쓰자니 사실 확인이 어렵고. 아는 사람이 보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할지 걱정했다. 눈치 보는 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다양한 컨텐츠를 보여주었다. SF부터 신화, 미스터리까지 흥미 있는 건 거의 다 본 것 같다. 그렇게 컨텐츠를 소비하던 어느 날, 계시처럼 깨달았다. ‘난, 내가 창조할 세계에서 눈치를 보고 있구나.’ 눈치란 옷처럼 훌러덩 벗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날은 백스페이스를 한 번도 누르지 않았다.

구겨 놓았던 아이디어를 하나씩 펼쳤다. 조각을 모으니 꽤 만족할 만한 플롯이 나왔다. 상상을 글로 옮기는 건 어렵지만 재미있다.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남편이 없는 어떤 날엔 메트로놈이 된다. 내 눈치를 보다가 말다가 하다 이게 뭐라고. 뭐가 무서워서 눈치 보냐? 난 락스타인데! 하며 커맨드 쉬프트 제트를 눌러 문장을 원상 복구한다. 일시적이라는 걸 안다. 진정한 락스타가 되는 건 열반(Nirvana)에 이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다시 직장인이 되어도, 작가가 되어도 눈치 볼 일은 생길 테니까. 그럴 때마다 남편을 생각할 거다. 그가 있는 곳이 내가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장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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