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후기
*내용 설명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실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을 안 간지 벌써 1년. 기록을 중단하게 한 영화가 있으니, 디즈니-픽사의 신작 영화 <Soul> 이다. 안 가본 사이에 영화관이 정말 많이 변했다. QR 코드 찍는 건 물론, 좌석 간의 거리도 떨어져 있다. 덕분에 남편과 나는 견우와 직녀처럼 한 자리 떨어져 영화를 봤다. 소통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남편의 목도리를 서로 손에 쥐고서.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한때 영화 평론가를 꿈꾸기도 했거니와, 소중한 주말에 시간을 내서 영화관까지 왔기 때문이다. 영화 뿐만이 아니다. 일할 때, 미래를 생각할 때. 어디서든 목적을 찾는다. 우울의 근원인 나는 뭘 하기 위해 태어난걸까?라는 질문부터 내 재능은 뭐지?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 말이다. 따뜻한 집에서 밥 세끼 잘 챙겨먹는 건 당연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당연한 것들 보다 그 이상을 이루고 싶고, 그런 이상 때문에 좌절도 많이 했다. 평범하고 싶지 않았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풍선처럼 떠다닌다.
영화 <소울>에도 나같은 사람이 나온다. 얼레벌레한 재즈 연주, 박자와 음이 맞지 않는 엉성한 디즈니 타이틀이 연주되다 엉성한 인생을 사는 주인공 ‘조’로 넘어간다. 조는 중학교 밴드부의 시간제 교사다. 교장으로부터 풀타임 제안을 받지만, 그의 마음 속에 있는 건 오직 하나. 유명한 재즈 연주가가 되는 것이다. “공연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그는, 같은 날 제자에게 유명 재즈 아티스트 도로테아 윌리엄스 밴드에 오디션 볼 것을 제안받고, 합격한다. 그리고 말대로 맨홀에 떨어져 반사상태에 빠진다. 기껏 잡은 기회인데! 조는 망자의 세계(The Great Beyond)로 가는 길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난다. 그가 벗어난 곳은 태초의 세계(The Great Before)로, 가장 순수한 영혼들이 사는 곳이다. 여기, 조와 반대인 영혼이 있다. 바로 22번. 조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포기한 22번의 멘토가 된다. <소울>는 태초의 세계에 남고 싶어하는 22번과 필사적으로 지구에 가고 싶은 조가 영혼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일을 그린다.
영화를 보기 전 분명 교훈 어쩌고 한 게 무색하게도 영화가 시작되지마자 극에 푹 빠져있다 왔다. 그게 영화의 목적이니까. 영화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는 광고에 지루해하다가 -그 광고를 만드는 사람임에도- 영화관에 모든 불이 꺼지는 순간, 설레기 시작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여행이다. 영화는 분석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다. 22번이 조의 몸에 들어가 지하철의 바람, 사탕의 달달한 맛, 하늘, 가족&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을 느꼈던 것처럼. 이런 것들은 너무 당연한 것이어서 우리는 다른 가치들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영화 도입부에 나왔던 얼레벌레한 재즈 음악이 이 영화의 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울>을 보고 나니 포스팅하지 않은 집밥 메뉴가 떠올랐다. 숭늉에 계란 후라이, 그리고 흰죽에 김.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맛을 내기 어려운 요리다. 그리고 어디엔가 올리기는 살짝 아닌가? 싶은 요리기도 하다. 어딜가나 다 화려한 음식들만 올라오니까.
누룽지의 구수한 맛, 계란 후라이의 짭쪼름한 맛. 있는 그대로의 맛이다. 하지만, 가장 신선한 맛과 가장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참기름과 김의 맛으로 먹는 흰죽과 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어떤 참기름을 쓰고 어떤 김을 먹느냐에 따라 맛은 천차만별이다.
우리 부부는 이탈리안이나 멕시칸 음식을 자주 해먹는다. 하지만 당연한 식재료에 당연한 반찬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음식들을 많이 시도하겠지만, 마음의 고향같은 음식도 많이 먹겠지.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록하고 브런치에 올려야지. 이런 시간들이 쌓여 10년, 그리고 20년 뒤 우리 부부를 만드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