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식탁
지난주부터 엄청 바빠진 우리 부부. 식사 만들어 먹는 건 고사하고, 잠이나 자면 다행인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뭘 만들어 먹을 힘도 없고, 배달 음식은 내키지 않고. 이럴 땐, 아빠가 가져다준 엄마표 반찬들을 꺼낸다. 마침, 김장김치도 받은 터라 다 꺼내놓고 플렉스 했다.
잡곡밥, 사골국, 계란말이, 김, 그리고 김치. 집밥의 정석이다. 거기에 선물 받은 샴페인을 곁들이면, 집밥의 급이 올라가거든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희극인 이영자가 촬영 끝나고 뭘 사 먹으면 성공한 기분이라고 했는데(음식 이름이 기억 안 난다) 나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날, 남편과 마주 앉아서 엄마표 반찬들을 꺼내 먹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 사골국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지면서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계란말이를 먹으면 회사에서 잘한 일들이 영사기처럼 초ㅑ르르르 지나가면서 살아갈 맛이 난다. 잠깐 쉬어가는 의미로 밥에 김을 싸서 먹으면 돌김 특유의 달달~한 맛이 혀를 감싸 와서 세상 행복해진다. 김을 맨입으로 두세 번 더 먹은 다음에 다시 입가심으로 사골 국물을 호로록하면, 살짝 칼칼한 게 당긴다. 아빠가 가져다준 갓 담근 김장 김치를 먹으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
이렇게나 간단하고 쉽게 볼 수 있는 반찬들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니. 내가 먹는 것에 진심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밥상이라는 게 이래서 놀랍다. 반찬들을 먹을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으니까. 이래서 골고루 먹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한 가지 맛에만 치우쳐진다면 다른 감정들은 상대적으로 덜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도 균형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행복한 생각만 하거나 너무 짠 생각만 하다 보면 어느샌가 밋밋한 인간이 되고 마니까.
김치는 생각보다 꽤 많이 매워서 다시 계란말이를 먹는다. 그리고 이번엔 입가심으로 샴페인을 조금 마셨다. 입안에 뒤섞여 있던 모든 감정들이 말끔해지는 기분이다. 생각이 복잡할 때 실컷 달리면 머리가 개운해지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또 밥을 먹는다. 3가지 반찬의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하게 먹은 기분! 역시 사람은 잘 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