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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글 Feb 16. 2021

기차에서 본 것과 느낀 것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오래 비행기를 타는 것도, 먼 곳으로 가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로웠다. 여행에서 하게 될 모든 경험들이 기다려졌고 설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대가 된 부분은 기차를 타는 시간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유럽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익히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평상시에 기차여행을 하며 지나가는 자연, 도시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더욱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기차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살아온 곳과는 전혀 다른 문화인만큼, 그들이 쌓아 올린 건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자연환경은 내가 지내온 곳과는 달랐다. 창밖에 펼쳐진 새로운 아름다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모든 장면들을 내 눈 속에 담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매력적인 그 모습들을, 전부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나에게는 한계가 있었고 모든 장면들을 완벽하게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이 생겼다고 느낄 때마다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계속해서 이미 지나간 풍경을 눈과 마음으로 쫓다 보니 계속해서 놓치는 풍경이 늘어났다. 그리고 지나간 뒤에 돌아본 풍경은 이미 내가 마주했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이 악순환을 끊기로 했다. 지금 내 앞의 풍경마저 놓치게 만드는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놓치는 것들은 놓치는 대로 남는 것들은 남는 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만의 풍경, 내가 본 유럽의 모습들이 내 마음속에 남았다. 그것은 실제 유럽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을 것들만 남은 그 모습이, 나의 느낌, 나의 해석이 담긴, 그 유럽이 내게는 진짜 유럽이었다.


그 경험을 통해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내가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나는 기차여행의 초반과 같은 자세였다.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하느라 내 앞에 찾아온 소중한 것들을 놓쳤다. 내가 아무리 후회하고 돌이켜 봐도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보는 그때의 사건은 내가 겪었던 그때와는 이미 다른 존재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미치자 삶에 대한 나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뒤를 보며 살아가느라 놓쳤던 내 앞의 소중함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어찌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것들 마저도 이미 지나간 일들이라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내가 놓친 것들에 대해서 집중해도 달라지는 것들은 없다. 그보다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내 앞의 것들에게 착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내 것이었던, 내 것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닌, 내 앞의 존재들에 집중할 것이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내 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놓치고 지나치는 것이 있다면,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그때 좀 더 잘할 걸이라는 후회보다는, 그때로 돌아가도 내 최선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도록 현재에 충실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을 놓칠 것이다. 그런 만큼 또 많은 것들이 남게 되겠지, 그렇게 나아간 길이 결국에는 내가 그린 나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느라 지금 주어진 기회, 사람들을 놓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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