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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Aug 06. 2020

4화. 달려라 찌니~~ 1부

부끄럼 많고 소심한 소녀

갸를 처음 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의 시간을 뱅뱅 돌려 보았다... 흠... 모르겠다. 여하튼 꽤 오래전이다.

촌동네도 아닌 수도권 대도시... 그런데 이 아이 머리는 무척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발머리'에 거기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던 내 어릴 적 동네 친구들처럼, 볼이 발그스레한 홍조를 띤 요즘 보기 드문 녀석이다.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나이는?"

"알바 경험은?"

"일은 쉽지 않습니다. 쉽고 돈 많이 주는 알바 있으면 나 소개해줘요~"

"최소 삼 개월 이상은 일해야 해요~ 피자집이라 피자 만드는 기술 배워야 하는데 그게 한 달 이상 걸려요 그러니 잠깐 하고 그만둘 거면 아예 들어올 생각 말고~"

"오케이?"


나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동안 면접을 본다. 그렇게 깐깐하게 면접을 본들 조기 잠수함, 트러블메이커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쭉정이(?)를 걸러내고 싶었다. 


여하튼 그렇게 알아낸 정보는 '고3 여자애, 알바 경험 약간'이었다. 그리고 이름은 '찌니(가명)'


자영업 6년 차 그동안 알바 면접은 이골이 나게 봤던 터라 내 질문은 '시니컬' 했고 '일사천리'였다. 녀석은 내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했지만 나름 똘망똘망해 보였다.


"할 의지가 있으면 내일까지 부모님 동의서와 등본 한 통, 그리고 본인 명의나 부모님 명의 통장 사본 가지고 6시까지 와요"


내 말이 끝나자 녀석은 조심스럽게


"네... 그런데 제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저희 집이 기초생활 수급자라서요... 다른 사람 명의 통장으로 받아야 하거든요..."


대충 무슨 말인지 감이 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 소득이 있으면 수급자격에서 탈락되니 다른 명의자 통장으로 받겠다는 이야기였다.


"응.. 무슨 말인지 알겠네... 부모님과 확인해서 처리해줄께..."


그렇게 어리바리 초보 알바, 유능한 일꾼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소한 행주 짜기부터 설거지하는 법, 더 나아가 칼을 다루는 고급 기술(?)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이미 수많은 알바를 다뤄본 나는, 일하는 뒷모습만 봐도 이전 알바 경험 여부는 물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알 수 있었다.


찌니는 보면 볼수록 이전에 알바 경험은 거의 없어 보였다. 거기에 느리고 소극적 태도로 발전 가능성도 별반 없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아내와 난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탁자 옆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찌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똑, 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10평이 채 안 되는 공간, 아니 주방설비 때문에 5평도 안 되는 공간이었고 가게 유리문은 손님을 위해 열려있었다. 분명 그런데 똑, 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리둥절한 우리 부부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탁자 옆에 찌니가 서있었다. 녀석이 아내가 앉아 있던 탁자를 두들긴 것이다. 그리고서는


"사모님... 이거... 어떻게 하나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나와 아내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어디 분리된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앉아 있었음에도 노크로 의사 전달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게에서 녀석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출근할 때 '안녕하세요', 퇴근할 때 '안녕히 계세요'가 전부였다. 


찌니는 심하게 소심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고딩 소녀였다. 너무 소심해서 "사장님, 사모님"이란 호칭조차 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혹시 학교에서도 이렇게 말수가 없니? 부끄럼 많이 타고?", 

"네..."


그런데 이때까지도 몰랐다. 이것은 찌니의 진짜 모습의 예고편이었다는 걸 말이다.


여하튼 그때까지만 해도 가게에 아내가 있었기에 그런 성격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찌니는 여느 때처럼 발그스레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분명 선선한 날씨였음에도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조금 의아했던 나는 혹시 어디가 아파서 땀을 흘리냐고 물었다. 그에 찌니는


"뛰어 와서요..."

"뛰어와? 어디서?"

"집에서요... "

"집에서 뛰어 왔다고? 왜? 버스 타고 오면 되잖아?"

"버스는 한 번에 오는 게 없어서 갈아타야 하고...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서 지각해요...."

"야 니네 집에서 여기까지 적어도 2km가 넘잖아? 그럼 그동안 계속 이렇게 온 거야?.. 니가 '달려라 하니'냐?"


그랬다. 녀석이 볼에 홍조를 띤 것은 체질이 그래서가 아니고 항상 뛰어서 출근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딱 이 또래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가슴이 슬쩍 뭉클했다.


"집에 자전거 없어? 그 정도 거리면 자전거가 훨씬 편한데..."

"네... 없어요..."

"월급 타면 우선 자전거부터 사라..."

그렇게 며칠 후 첫 번째 월급을 탄 찌니는 정말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장바구니가 앞에 달린 여성스러운 생활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가게 바로 옆에 세워두고 조심스럽게 시건장치를 한 찌니는 가게에 들어오면서 무슨 미련이 남은 사람처럼 자전거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대충 눈치를 챈 나는


 "걱정하지 마라 가게 바로 옆에 둔 거니까 누가 못 훔쳐가... 자물쇠까지 걸려 있고, 또 내가 가게 주변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잖아~"


자신의 힘으로 샀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소유한 자전거라서 그랬을까? 여하튼 무척 '애지중지'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밖에는 예보에 없던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어둠이 내린 밤, 퇴근 준비를 마친 찌니에게  


"우산 줄테니까 오늘은 우산 쓰고 버스 타고 가, 자전거는 가게 안에서 잘 보관해 둘께~" 


내 제의에 뜻밖에도 녀석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했다. 혹시나 해서 택시비를 줄테니 택시라도 타고 가라했지만 결국 찌니는 자전거를 타고 장대비 속으로 사라졌다. 소중한 자전거를 두고 가느니 차라리 비를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내일 뛰어서 출근하는 게 싫어서 그랬을까? 그 이유가 뭐든 녀석은 그 굵은 비를 처량하게 맞으며 사라져갔다. 


이제 찌니는 더듬거리는 수준이긴 했지만 피자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되었고 두 번째 월급을 준 다음 날... 녀석은 출근 시간이 10분 2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잠수'를 탄 것이다. 


문자를 보냈다. 일단 점잖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일이 있으면 문자라도 줘라'라고 보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할 수 없이 난 찌니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 우리 애가 출근 안 했나요? 간다고 했는데~ 일단 알아보고 전화드릴게요"


흡사 아무것도 몰랐다는 양 찌니 엄마는 조금은 과장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난 자영업 6년 차였고 나를 거친 알바만 수십 명이었다. 나는 이미 '짜인 각본'임을 알 수 있었다. 십여분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이번에 학교 시험도 있고 그러다 보니 힘들었나 봐요...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죄송해서 말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과거의 경험은 날 금방 이성적으로 만들었다. 일단 난 문자로 찌니에게 '혹시라도 나중에 나오고 싶거든 언제든지 나와라 이미 배운 거 아깝잖아. ^^'라고 보냈다.


이렇게 부드럽게 끝내야 나중에라도 혹시 모를 재 활용의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화난다고 욕하고 비난하면 아예 그 가능성마저 없어질 뿐이다. 이때가 찌니의 1차 잠수였다. 


'달려라 찌니~~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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