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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Aug 06. 2020

4화. 달려라 찌니~~ 2부

잠수의 달인, 꿈을 꾸다...

'달려라 찌니~~1부'에서 이어집니다.


찌니는 잠수의 달인이다. pixabay.com

두어 달이 지나고 녀석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질 즈음, 여름방학 시즌이 되자 찌니에게서 문자가 한통이 왔다. 다시 나가서 일해도 되겠냐는 문자였다. '참을 인' 석자를 마음에 그린 결과였다. 그사이 찌니와 같은 또래 여자애들 두어 명에게 뒤통수를 맞은 터라 낯 모르는 애들을 새로 교육하느니 그나마 찌니가 최선의 대안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인연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내가 집안 사정으로 가게에 더 이상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낮에는 찌니를 혼자 두고 배달을 나가야 하는 상황, 난 찌니에게 이제 배울만큼 배웠으니 내가 배달 나간 사이 전화 주문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찌니는 너무도 당황스러워했다.


"저 전화 못 받아요..."

"뭘 못 받아? 너 메뉴도 다 알고 피자도 만들 수 있고 포스(계산용 피씨)도 다룰 줄 알잖아~ 뭘 못해?"

"저 모르는 사람하고 통화해본 적 한 번도 없어요..." 하며 울먹거렸다.


아무리 소심하다고 해도 고3씩이나 된 청소년이 타인과 통화를 못한다니? 내가 모르는 심리적 이유가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쯤 되니 난 녀석을 포기해야 할까 싶었다. 그렇잖아도 아내는 평소 찌니의 성격이 이런 서비스업에 맞지 않는다며 내보냈으면 했다. 그러나 난, 십대시절 집안 사정으로 소심하고 우울했던 내 청소년기의 경험이 때문인지 이상집착(?)이 생겼다.


"니가 있는데도 내가 배달을 못 나간다면 이런 걸 비효율이라 하는 거야!! 흔히 말해 네가 밥값을 못한다는 거야! 그리고 전화 한 통 못 받는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뭐해먹고 살 거야? 너 취업 안 할 거야? 그냥 집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낼꺼냐? 영원히 알바만 할 거야?"


이건 어쩌면 그 시절 내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 다그침에 찌니는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난 좀 더 모질게 녀석을 몰아붙였다.


"오늘 넌 새로 태어나는 거다. 오늘 전화받을 수 있을 때까지 영업 중지한다. 연습 또 연습이다 알겠나?!"


난 내 휴대폰으로 가게에 전화를 걸었고 찌니는 가게 전화를 받는 모의 훈련을 했다.

  

"감사합니다. 배불러 피자 고담점입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찌니는 이 멘트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반복 또 반복했다.


"목소리는 '솔'톤으로 좀 더 밝고 자신 있게!!"


인생은 비극이면서 코미디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했다.

그날 이 장면은 찌니에게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비극적인 몸부림이었고 한 발자국 떨어진 누군가에게는 다 큰애가 눈물, 콧물 흘리며 전화기에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코미디였다.


그날 이후 찌니는 전화 주문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격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뜬금포를 날렸다.


"사장님 제 친구가 롯데리아에 근무하는데요... 제가 여기서 전화도 잘 받는다고 하니까... 저보고 자기네 가게에서 일하자고 하더라고요..."

"어이쿠~ 스카웃 제의를 받은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아니.. 그렇다고요..."

"니가 거길 가겠다고 하면 말릴 수야 없지, 여긴 민주주의 사회잖아~"


다음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찌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 그냥 여기서 일하려고요... 전 여기가 훨씬 좋거든요"


농담은 커녕 '사장님'이란 호칭도 부르지 못해 애먹던 녀석이 이제는그렇게 너스레까지 떨었다.


그런데...   또 잠수를 탔다. 찌니 엄마 나에게


"아이고 사장님 죄송해요... 내가 몇 번이나 미리 말씀드리라고 했는데... 이년이 쌍꺼풀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부기가 가라앉아야 나갈 수 있거든요.. 최소 한주는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분명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했었는데... 내가 남자고 꼰대라서 이해를 못하는 건가? 마저 그럴 거야... 여자가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렇게 이해하자...'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찌니의 두 번째 잠수였다.


일주일 후 찌니는 아직 부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눈탱이를 하고 나타났다. 잔소리해봐야 별무소득 일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평상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곧 방학이 끝날 텐데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나와 일할수 있어?"

"네... 전 대입 준비 안 하니까... 일하면서 취업 준비하려고요.."


찌니는 이제 능숙한, 진정 '밥값'을 하는 알바가 되었다.


그러나 찌니는 어느날 또 사라졌다.


"아이고 사장님~ 제가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듣고 있어서 전화를 바로 못 받았네요... 사장님이 우리 애를 이뻐해 주시는 거 찌니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찌니에게 그전부터 미리 말씀드리라고 했는데... 애가 언제부터인가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해야 해서... 내가 사장님에게 미리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는데도 미안해서 말씀 못 드렸나 봐요~ 사실... 따지고 보면 언제까지 알바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


누가 뭐랬나? 미리 말만 해달라고 했는데... 어찌 되었건 그래도 '꿈'이 생겼다니 다행이다. 그것이 녀석의 마지막 잠수였다. 찌니는 이번에는 근해가 아닌 대양으로 잠수함을 타고 떠났는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수년이 지난 오늘... 찌니는 '바리스타'가 되었을까? 되었길 바란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그 꿈이 아직 유효하다면 언젠가는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다면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 라는 월트 디즈니의 명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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