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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똥밭 Nov 12. 2020

20화.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

'요즘 애들'을 만든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조승연 작가', 똑똑하기도 하지만 그에게서는 '바름'이 보인다.

얼마 전 유튜브의 '조승연의 탐구생활' 채널에서 본 '프랑스 샹송으로 배우는 세대 간 대화법'이란 영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아르노 프뢰랑 디이에'란 샹송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는 바로 우리 가족 이야기였고 아니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아빠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프랑스어도 똑바로 가르쳐주진 않았다"


흡사 날 보고 쓴 게 아닐까 했다. 내 아버지는 비슷한 연배분들에 비해 상당히 고학력인 '대졸'에 영어도 잘하시는 편이었다. 내가 초딩 시절, 처음 '영어'에 입문했을 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알파벳 'A'는 상황에 따라 '아, 에, 이'등으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한글의 'ㅏ'는 '아'일뿐인데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알파벳 'A'의 발음이 중구난방인지 말이다. 돌아온 답은 '핀잔'이었다.

"공부하기 싫으면 싫다고 해라!!"


나 또한 부모가 된 후 내 아이들에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인내심을 가지고 똑바로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나한테 책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고, 사상의 역사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았고... 생각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았다"


요즘의 프랑스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이 나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얘기는 '대입과 취업', 딱 두 가지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기득권은 '유지', 중산층은 '성공', 서민들은 '생계'란 단어에 경도된 사회 분위기 속 가정에서 '사상, 역사, 철학(생각의 움직임)'을 이야기한다는 건 정말 쓸데없는 '사치이고 에너지 낭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르는 것, 관심 없는 것'을 자식에게 얘기해주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다음 가사는 그런 '시대적 이유' 마저도 '구차한 핑계'로 만들어 버렸다.


"엄마는 나한테 실용적인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밥하는 법도, 옷을 꿰매는 법도... 알려주지 않았다."


내 아내는 이 가사를 보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이 이야기는 당장 우리 애들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가끔 우리 애들은 자기들 방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법을 모르듯 했고, 한때 '한 끼'를 차리는 것도 이후 치우는 것도 당연히 부모의 몫으로 생각했다. 물론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말이다.


"그들은 나한테 내 또래 여자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았다. 돈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사실 나도 배운 적이 없다. 물론 아내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 가르칠 수도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기본 교육'이 우리네 가정에 언젠가부터 지금까지 쭉 '부재중'이다. 우리가 한때 선망하던 프랑스가 저 모양인데 식민지배와 전쟁을 거치며 '문화와 전통가치'의 전승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대한민국은 더 논할 것도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그게 면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 나 스스로 조금은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아들내미가 대학생이 되고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조금 늦은 감은 있었으나 내가 부모님들에게 아쉬웠던 '세대 간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다.


같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뉴스에 나오는 사회 현상과 사건을 짧은 시간이지만 토론을 해보고 있다. 물론, 아직도 미숙한 부모이다 보니 가끔 '울컥' 해서 아들로부터 '아빠는 좀 공격적이야~'라는 지적도 받지만 그래도 많이 이해하려 하는 녀석들 덕분에 미약하나마 내 삶 철학을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자는 존중과 보호의 대상이다. 남자가 몸이 크고 힘이 센 것은 니가 사랑하는 여자와 가족을 보호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패라고 만들어 준 게 아니고..."

"좋든 싫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을 모르고 살면 안 된다. 아빠 같은 삶이 꼭 좋은 건 아니다... 이 작은 돈으로 주식이 뭔지 배워 봐라, 난 주식의 '주'자도 모르니 나한테는 물어보지는 말고... "

"지금 우리가 이 정도라도 사는 건 살아생전 근검절약하셨던 할머니 '덕'이다. 항상 잊지 말고 기억해라... 기억하면 존재하는 거다."




며칠 전, 우리 딸내미는 동영상 하나를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낄낄'거리면서도 생뚱맞게  '오빠'가 안쓰럽다고 했다. 영상은 십수 년 전 당시 4살이었던 딸아이의 조촐한 생일 파티 때 찍은 영상이었다. 그런데 영상의 길이가 자그마치 1시간 30분, 영상을 드려다 보니 길어진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앙증맞은 케익, 어울리는 한 개의 촛불, 시작은 그렇게 알콩달콩 했다. 그러나 갑자기 화면의 사각에서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시 저학년 초딩이었던 아들 가방에서 발견한 성적 '알림장'이 빌미였다. 그렇게 딸내미 생일 축하 파티는 아들에 대한 엄마의 취조와 비난으로 '눈물의 파티'가 되었다. 화면 밖에서 아들은 아내에게 혼나고 있었고 화면 중앙에 자리한 울 딸은 이 상황에 눈치를 보며 뜬금없이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할 그 화면의 나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망했어~ 망했어!, 차린 것도 없지만 빨리 먹어 치우자"라는 말로 짜증을 내며 화풀이하듯 그 작은 케이크를 우걱우걱 먹고 있었다.


그 영상속 장면은 세월에 빛이 바래며 어느덧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때 우리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 영상의 우리는 '부모'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너무도 창피했던 나는 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지난번에 과거 사에 대해 아들에게 일괄 사과했어~ 당신도 빨리 가서 아들에게 사과해~"


아내 또한 과거 자신의 모습에 정말 창피해했다. 아내는 후다닥 아들 방으로 가서 "울 아들.. 정말 미안해~ 그때 엄마가 왜 그랬을까.. "하며 사과를 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은 이 갑작스러운 이 소동에 어리둥절했고 딸은 거실에서 '큭큭' 거렸다.




P.S 이 글 읽으신 분들은 유튜브 채널 '조승연의 탐구생활'을 방문하여 원본 영상을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해봅니다. 부모가 아닌 분들도 느끼는 바가 있을 듯합니다.

프랑스 샹송으로 배우는 세대 간 대화법 | 아르노 프뢰랑 디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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