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백과사전 재외동포 큰 아들의 이육사 오마주와 잉여인간들
자가격리 11일 차..
북아프리카 건조한 사막기후에 살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는 장맛비가 반갑다.
날은 어둑하고.. 우울감이 상승하는 거 아니냐는 시어머니의 우려와는 달리 며칠 남지 않은 격리기간에 또 오전에 배송된 *마트 택배박스로 다들 기분이 업이다. 한참이나 서로가 좋아하는 과자봉지 뒤적이다가 방 하나씩 차지하고 흩어져 있던 각자의 근황 토크 중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큰 아들은 본인이 시를 쓰면 제2의 청포도가 될 텐데 하며 사춘기 특유의 우쭐거림으로 응수한다. 제목은 건포도라나... 호는 육이사. 알고 보니 이육사 오마주가 아니라 이육사를 육이사로 알고 있었던 아들의 웃픈 개그... 이눔아 이눔아 이 찢어진 백과사전눔 같으니라고..
무튼 찢어진 백과사전은 나름 고딩이라 단어 공부에 열심이고, 공부도 글쓰기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신상 한국 과자 연구에 여념이 없고 덕분에 사흘이 멀다 하고 배달되는 택배박스로 베란다엔 고급 쓰레기만 쌓여간다.
두 명의 청소년과 두 명의 성인남녀가 배출하는 쓰레기 양이 이렇게나 어마어마할 줄이야.. 이런 잉여인간들... 배송인력 고용창출에 도움이 되리라 자위해보아도, 내 입의 궁금함을 달래기 위해 소모되는 수많은 포장재와 쓰레기, 심지어 콩나물 한 봉지 배송을 실어오는 스티로폼 박스에 책 한 권 때문에 달려오는 택배 트럭이라니...
우리가 살고 있는 개발 도상국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친절하고 세세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상품 포장, 배달원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음식 배달이 우리 같은 자가 격리자들에게 최상의 시스템일 것 같지만 아직은 이 호사스럽고 친절한 택배 배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공무원들의 민원응대는 또 어떻고... 말을 끝맺는 받침 하나까지 친절한 전화에 속전속결로 해결되는 민원에... 손발이 없어질만한 민망함이 몰려온다.
코로나야 바이러스야,
내 조국도 내 가족도 맘 편히 날 반기지 못하게 하는
너 정말 밉다.
내년 포도가 익어갈 시절에는
너 보고 싶지도, 소식을 듣고 싶지도 않구나.
우리는
너를 정말로 떠나보내고 싶다.
에필로그: 육이사 선생의 건포도
내 고장(카이로) 칠월은 포도가 말라 가는 시절
열사의 뜨거움이 알알히 맺힐 때
그의 이름을 고요히 불렀다.
건. 포. 도
아이야 우리 식탁의
시리얼에도 요구르트에도
다디단 그를 맞이할
새하얀 이집트 순면 천을 준비해두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