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카이로에서 원주로 격리의 일상 중 힘을 주는 따뜻한 말한마디

by 이방인

간간히 브런치 눈팅만 하다 결국 14일의 감금?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펜을 아니 노트북 뚜껑을 들었다.

카이로에서 입국한지 10일째, 아직 만 나흘의 시간이 남았고 매우 귀찮은 표정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어느 아저씨조차 창문너머로 부러워하는 우리 네 가족은 -해외유입 자가격리자-이다.





두바이 경유에서 같은 한국행 비행기를 탔던 중국인들. 저들의 철저한? 준비에 약간의 조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국 본사의 일로 인해 온가족이 잠시 귀국을 해야하는 6월에도 이집트의 공항이 폐쇄되어 희망 반 포기 반으로 한달여를 더 기다리다가 공항이 열리는 첫날이었던 지난 7월 1일, (아마 카이로에서 공항재개 이후 처음 떴을 것 같은) 중동의 한 항공기를 타고 두바이에서 9시간 경유를 포함해 만 스물네시간 만에 그립고 그립던 고국에 도착했다.


메마른 이집트의 기후와는 다른 한국의 촉촉한 공기를 음미할 새도 없이, 코로나 걸리기 싫다며 밥도 안먹고 마스크 벗지 않고 잠도 안자던 큰 아들이 미열로 인한 코로나 검사를 위해 공항에 남게 되는 사건으로 시작되어 이어지는 자가 격리 어플리케이션 설치와 검사, 끝까지 엄격하던 공항 검역은 그야말로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가격리 중인 원주 시댁, 아파트 뒤편에 수목원이 있어 한결 경치가 좋다. 스페인 여행에서 보았던 너른 들판보다 아름다웠던 어느 오후


1차 미열에 이어 2차 검진인 의사의 문진을 받기 위해 아들은 줄을 서고, (엄마입장에서는)아직 어린 그리고 학령기 이후 한국에서 살아본적이 없는 아이가 혹시라도 검사 후 혼자서 격리 장소인 원주까지 와야한다는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와중에도 지원나온 경찰이며 군인들이 드문드문 말을 걸어 주었다. 지원나온 인력이냐, 감사하다, 어디서 오셨냐, 이런 대화가 오가던 중, 우리가 살고 있는 이집트의 상황을 전했고 그 병사는 그래도 잘 오셨다며 우리를 안심시키고 다독이기까지 했다. 이집트 교민 중 특별기를 타고 귀국했던 가정이 코로나로 확진된 후 달렸던 여러 악플에서, 또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짐이나 누가 될까 한국행을 망설였던 움츠렸던 맘이 그 병사의 -그래도 잘 오셨어요-라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없었다면 얼마나 더 슬프고 외로웠을까.


재외 동포의 삶은 그렇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돌아왔지만 한국의 일상을 쫓아가기에 버겁고, 오래 살았어도 여전히 그 곳에서는 철처한 이방인인 삶. 물론 내가 원해서 택한 나의 삶이라 대부분이 감사와 기쁨의 시간들이지만 간혹은 소속감의 부재로 나는 누구인가를 꽤나 자주, 심각하게 성찰하게 되는...

열흘을 넘게 창밖의 푸른 나무들, 깨끗한 공기속 산책, 아파트 앞 돈까스집, 그 옆 멋진 베이커리 까페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지금을 빌어 쌓였던 어려움과 외로움을 잠시 토로해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익숙한 언어의 tv 프로그램과 배달원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문 앞으로 배달되어오는 맛난 짜장면, 나흘만 기다리면 저 푸르른 풀밭을 기름냄새 풍기는 돈까스 집안에 내가 있을거란 기대와 희망으로도.


에필로그

걱정 한가득 안겨주었던 아들은 이튿날 음성이라는 검사결과와 함께 인천공항-원주로 혼자(물론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귀환하며 제공되었던 숙소나 식사에 대해 신이나 설명해주며 공항 어드벤처를 훈훈하게 마무리하였다.

동변상련 유학생 형과의 담화까지 아들의 변죽과 담대함에 나름 안심과 놀라움의 시간, 역시 자녀는 내놓아야 잘 큰다.


원주로 내려오던 새벽, 인적을 피해 잠시 들렀던 화장실이 있던 휴게소에서 만난 나무에 걸린 달. 소나무 내음이 너무나 강렬했던 밤.


이집트에서 코비드-19로 외출이 어려웠던 4월, 근 한달만에 나가본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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