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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루 Jan 20. 2023

영화에 담긴 1950년대 일본

라쇼몽(1950), 동경 이야기(1953), 지카마츠 이야기(1954)

라쇼몽(1950)

먼저 첫 번째 영화 <라쇼몽>은 어떤 살인 사건을 둘러싼 세 사람의 증언을 중심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조마루는 자신이 타케히로와의 남자다운 검술 대결 끝에, 타케히로를 살해했다고 진술했으며, 마사코는 도적들에게 강간당한 후, 남편에게 경멸스런 눈빛을 받아 실신하고 일어났더니 남편에게 단도가 꽂혀있다고 주장했으며, 다케히로는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껴 단도로 자결했다고 무녀에 빙의되어 진술한다. 허나 이 셋의 진술은 어딘가 전부 모순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세 명 말고도 모든 인물은 자신의 유리한 시점으로 설명하며 인간의 에고이즘의 면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의 제목인 <라쇼몽>의 라쇼몽 효과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라쇼몽 효과는 ‘한 사건을 두고 그것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 제각각 다르게 인식하고 해석하는 경우를 가리켜 일컫는다. 이 효과를 영화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사건을 진술하는 내용은 제각각 다르게 해석되어 그 사건을 더욱 모호하게, 헷갈리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냈다.4

동경 이야기(1953)

두 번째 영화도 살펴보자. <동경 이야기>는 라쇼몽의 모순된 사회를 그려낸, 부정적인 일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영화이다. 노부부는 자신의 손자들을 보기 위해 동경으로 올라왔으나, 자식들은 각자 바쁘다는 이유로 노부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며, 오히려 짐이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후 노부부가 집으로 돌아가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들이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허나 이런 상황에서도 둘째 딸과 큰 아들은 일어났어야 할 일이라고 장례만 치르고 도쿄로 돌아가는데, 둘째 며느리는 홀로 할아버지를 위로한다. 이런 줄거리는, 당시 삭막하고, 이기주의적이었던 일본의 사회 속 가족애를 강조하며 심금을 울렸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특별한 어떤 영화적 연출 없이도 담담하게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홀로 남은 할아버지의 곁을 홀로 지킨, 자식도 아닌 며느리였기에, 잔인한 사회와 그 속에서도 인간애를 버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나왔던 대사를 보며, 결국 가족애는 과거나 현재나 똑같구나라고 느꼈다.

 “이상하구나, 자식이 네 명이나 있는데 네가 가장 값지구나. 넌 피도 안 섞였는데 말이다.”

지카마츠 이야기(1953)

 마지막 영화, <지카마츠 이야기>는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빈부격차를 특히 강조시켰다. 표구상과 결혼을 했던 오상, 그리고 표구상 밑에서 노동하던 모헤가 오상과 함께 사랑을 하다, 주변의 오해를 받고 도주를 하게 된다. 사실, 그 당시 사회상을 보자면, 가히 혁명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여성이 노비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도망치는 모습이, 그때로 보자면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일 것이다. <지카마츠 이야기>의 감독, 미조구치의 경우, 신분질서에 대한 타파와, 있는 자, 그리고 없는 자 간의 벌어진 거리와, 그 갈등을 잘 드러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영화의 결말 또한 백미인데, 영화의 결말을 결국 가진 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1950년대에 제작된 영화라는 것이다. 당시 1950년대의 일본은 전란의 헤이안 시대다. 서로를 죽이고, 인간을 의심하고, 아이를 버리는게 당연하던 시대 속에서, 세 영화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허나 세 영화 각각 그 당시 일본을 바라보던 시각은 달랐다. 대표적으로 <라쇼몽>은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꼬집어 비판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면, <동경 이야기>와 <지카마츠 이야기>는 차갑고 어두운 사회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인간애를 보여주는, 어떻게 보자면 성격이 완전히 정반대인 작품들이다. 허나 라쇼몽도 인간의 비극적인 면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결국 아이를 책임지기로 하면서 단도를 훔쳐간 것에 대해 인정하고, 최종적으로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 작품 모두 힘들었던 시대 속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세 영화들에 대해서, 첫째로 영화의 내적인 면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 3개의 영화가 공통적으로 흑백 영화에, 어떤 특별한 연출 방식 없이 오직 그 안에 있는 이야기만으로 영화를 전개해 나간다. 그렇기에 현재 와서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블록버스터 작품들과는 다르게 심심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허나 나는 현재의 영화와는 달리 이런 영화들 또한 이만의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특히 <동경 이야기>는 이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인물이 어떤 자세를 취하던 카메라 앵글과 구도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또한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앵글 밖에서의 인물은 말을 하지 않는다. 추가적인 배경음악도 없고, 관객의 눈을 끌 만한 화려한 연출 방식도 없다. 이 영화는 오직 배우가 청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 전개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목적이 뚜렷했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던 소재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기에 이 영화가 현재까지도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요즘 몇몇 영화들이 처음 세웠던 제작목표가 실제 제작될수록 점점 흐지부지되고 망가져 관객들의 혹평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 그것도 무려 1950년대의 영화에서도 배울 점을 찾을 것이 많을 듯하다. 물론 몇몇 액션 연기라던지, 밋밋한 전개들에 대해서는 조금 심심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당시 일본의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을 뿐만이 아닌, 현재까지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영화로써 큰 의의가 존재한다.


영화의 전개를 자세히 분석해보기 위해, <라쇼몽>부터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라쇼몽>의 모든 등장인물의 경우 전부 자신의 관점에서 본 자신의 해석을 주장한다. 이 영화의 가장 초반부에 나온 스님이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물인데, 이 스님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의 이기심을 보고 사람의 그 존재 자체에 불신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완전히 그 시대에 대한 비극적인 감독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 나무꾼이 스님에게 다가와 직접 자신이 아기를 키우겠다고 하자, 다시 그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게 된다. 스님은 자신만의 입장을,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바꿔가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도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스님이라는 인물은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을, 태도를 대신 해주는 대변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이기적인 인물상과,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잃고 싶지 않았던 사람 간의 대조를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상의 대조를 통해, 청자에게끔 이 차가운 세계 속에서 위로를 건네기에 효율적으로 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와는 조금 달리 잔잔한 분위기였던 <동경 이야기>의 경우, <라쇼몽>과 비슷하게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건 맞지만,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들이 몇 있다. 첫째로 앞에 서술했던 정적인 카메라 구도는 일상의 모습들을 생동감있게 담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또한 대사들도 특별하게 영화에서만 나올 법한 대사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평범하게 할 만한 대사들이었으며, 이게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특성들이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라쇼몽이 진정한 ‘인간’으로써 남는 것을 강조했다면, 동경 이야기는 힘든 시대 속에서도 남아있는 가족 간 사랑을 표현했다.


마지막 <지카마츠 이야기>를 살펴보자, 지카마츠 이야기는 동경 이야기의 수수한 표현 기법과는 조금 달리, 가부키 음악이 삽입되어 감정을 고조시켰다. 다른 영화들보다도 이 지카마츠 이야기는 음악이 특히 흥미로웠다. 사실 가부키 음악은 그리 익숙치 않은 음악이었음에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장면에서 가부키음악을 사용하여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는 등 음악에서 특히 흥미로웠다. 전개, 그리고 결말 또한 지금 봐도 절대 지루하지 않을 만큼 흥미로웠던 주제였으며,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힘든 시대 속 꺼지지 않는 사랑을 보며,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는 의의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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