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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티브스피커 Apr 13. 2022

성장을 위한 여성들의 땀과 눈물을 보여주는 메이킹 필름

골때리는그녀들 시즌 1, 2

얼마 전 '여자 2022 아시아 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여자 축구대표팀이 대회 첫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상파나 주요 종편에서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고 스포츠뉴스에서도 결승전 경기조차 한 마디 언급이 없었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경기 일정을 찾아서 메모해 놓았다가 실시간 중계를 찾아봤다. 축알못 중의 축알못이었던 내가 월드컵도 아닌 축구 경기를 더구나 여자 축구 대표팀의 경기를 찾아서 보게 된 것은 순전히 '골때녀(SBS 골 때리는 그녀들)' 덕분이다. 공을 몰고 다니다가 골을 넣으면 한 점을 얻는다는 기본 정보 이외에 경기 규칙 등에 깜깜해서 축구 경기는 90분 동안 비슷한 화면이 이어지는 지루한 경기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골때녀 시즌1, 2'는 축구의 재미를 알게 해 준 너무나 훌륭한 축구 기초 교재였다.


골때녀 시즌1에 모인 배우, 가수, 모델, 개그맨 심지어 국가대표 축구 선수의 가족조차도 처음에는 축구 지식에 관해서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본다면 어이없어할 실수들을 반복하면서 점차 기초적인 규칙과 기술들을 배워 나갔다. 공이 팔에 닿는 것이 파울이라는 것도 여러 번의 핸드볼 파울을 당하면서 알게 되었고 골키퍼는 페널티 박스 밖으로 나가 공을 주워 오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깜짝 놀란 감독들이 각 팀의 골키퍼의 이름을 목이 쉬도록 불러야 했다. 쌓여 있는 실력이 없으니 경기마다 그들이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은 한 양동이의 땀과 눈물뿐이었다. 한 번의 패스 성공, 한 번의 유효 슈팅, 한 번의 슈퍼 세이브를 위해서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발톱이 다 빠지도록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기뻐서도 울고 실수하면 팀원에게 미안해서 울고 지고 나면 분해서도 울었다. 자기 분야도 아닌 한낱 TV 예능 프로그램에 왜 저렇게까지 온몸을 던질까 궁금해질 정도로 선수들은 과하게 최선을 다했다. 요즘 말로 선수들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선수들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고 연습한 기술과 세트 플레이가 경기장에서 구현되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들의 성장을 실감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졌으며 팀경기의 장점과 축구의 재미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 듯싶다. 그리고 경기가 거듭될수록 선수들은 놀랍도록 향상된 실력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수없이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워 걷게 되고 걷다가 뛰게 되는 그 과정을 부모라면 알 것이다. 성장에는 실수와 좌절과 마음과 몸을 다치게 하는 크고 작은 부상들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성장은 결과인 동시에 과정 그 자체다. 골때녀에서에도 그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다. 골때녀에는 피나는 노력, 패배와 부상 등으로 인한 좌절, 성장과 승리의 기쁨 등 희로애락이 압축된 성장의 드라마가 있다. 갑자기 격한 운동을 하게 되면서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모습도 봤고 시즌1에서 패배의 쓴맛에 익숙했던 하위 팀이 시즌2에서 강팀으로 거듭나는 모습도 지켜봤다.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감독들의 전술 구사가 다양해져서 경기를 보는 재미도 늘었다. 리그가 진행되면서 각 팀의 에이스, 대표 스트라이커, 대표 수비수가 생겼고 팀의 색깔도 뚜렷해지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방송에서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먼저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주체로서의 모습으로 전환되고 있다. 나는 최근 스우파, 슈퍼밴드 2, 골때녀를 통해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 땀과 눈물로 범벅된 무대 뒤 준비 과정도 함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스우파, 슈퍼밴드2, 골때녀 등은 여성들의 무대 밑 모습을 담은 메이킹 필름이다. 무대를 준비하는 치열한 과정 속에서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운 한복에 단정하게 쪽진 머리로 민요를 부르는 모습에 익숙했던 송소희가 풋살장의 위협적인 스트라이커로 득점왕을 차지하고 우아한 자태로 런웨이를 걸어 나오던 정상의 모델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파이팅을 외치고 개벤져스의 김민경은 킥인하는 선수가 있는 힘껏 차는 공을 매번 바로 앞에서 몸으로 막아내서 캐서터 이수근이 제발 몸 좀 사리라는 걱정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50이 넘은 나이에 골때녀 최고의 골키퍼이며 가장 파이팅이 넘치는 조혜련... 존경합니다. 이런 모든 순간들이 감동적이다. 인간은 누구도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여성들이 방송에서 이토록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싶다. 방송이 여성들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반갑다.


마지막으로 작은 풋살 경기장이 아닌 진짜 그라운드에서 매 라운드 훌륭한 경기력으로 결승전에 오른 우리 여자축구대표팀, 정말 멋졌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3년 월드컵도 응원합니다!!



여자 2022 AFC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2022 AFC, 지소연



FC 액셔니스타
FC 개벤져스


FC 구척장신



FC 원더우먼


FC 아나콘다
FC 탑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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